반동보다 더 두려운 것은 패배주의다

[손석춘 칼럼] 다시 '과격하고 서툰 사랑'을 시도하며

등록 2007.01.01 11:33수정 2007.07.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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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사 현관에 전시된 창간주주들의 이름이 세겨진 동판.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7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새해이되 새해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그 까닭을 알고 있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정직하게 현실을 마주할 때입니다. 반동의 기운이 새 해를 꼭뒤 누르고 있습니다. 반동은 곳곳에서 고개를 뾰족 뾰족 내밀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패배주의에 잠기기 십상입니다. 세상을 냉소하고 싶을 법합니다. 굳이 다른 이를 보기로 들 필요가 없습니다. 고백하거니와 바로 저 자신이 지난 세밑 모든 걸 훌훌 털고 싶을 만큼 명치끝이 쓰리는 절망에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계약만료 한 달을 앞두고 한겨레신문사의 김효순 주필로부터 비정규직 해지 통보를 받을 때, 어쩔 수 없는 의문에 잠겼습니다.

'한국 언론계에서 올곧게 뜻을 지키며 직업 언론인으로 살아가기란 정녕 불가능한 걸까.'

한겨레신문 주필에게 비정규직 해지 통보를 받다

@BRI@그 의문은 '아직 오지 않은 언론인'들을 위해서라도, 한국 저널리즘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땅의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결코 사사롭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매몰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한겨레신문사 안에 참된 진보신문을 만들겠다는 젊은 기자들이 있음을 믿어서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값싼 감상이나 인간적 절망에 젖어 붓을 꺾을 만큼, 이 땅이 한가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늬만 '진보'인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생게망게하게도 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틈을 타 수구반동 세력이 살천스레 활개치고 있습니다. 핏빛 사월을 언죽번죽 모욕하고 군부 쿠데타를 '혁명'으로 교과서에 쓰겠다는 저 윤똑똑이들을 보십시오.

더구나 인터넷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만일 인터넷이 없었다면 언론인으로 살아온 옹근 22년의 경험을 어디서 살려갈 수 있을까요. 이 캄캄한 반동의 시기에 어떻게 민주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 앞에, 인터넷을 만든 '창조적 노동' 앞에 새삼 겸손해지는 까닭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저에게도 어쩌면 기득권이었을지 모를 '직업적 기자'의 '딱지'를 떼고, 모든 사회구성원이 기자인 인터넷 시대에 한 네티즌으로, 한 '뉴스 게릴라'로 동시대인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 다시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연재하며 새 출발하는 저의 소박한 다짐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지나치게 날서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듭 명토박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에 온새미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전투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라야 어찌되든 제 기득권만 지키려는 저 부라퀴들과의 화해는 그들의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뉴스게릴라'로 동시대인과 만나고 싶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엄혹한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광범위한 도시빈민과 청년실업자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중산층마저 양극화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현재 권력을 쥔 노무현 정권에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덜어질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뿌리깊은 패배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미국에 휘둘리는 분단조국은 결코 영원불변의 '질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언젠가는 벅벅이 구현될 터입니다.

반동이 부추기는 패배의식을 벗어나 새로운 사회의 꿈을 독자들과 지며리 나누고 싶습니다. 설령 그 손짓이 여전히 과격하고 서툴더라도, 그것이 동시대인에게 드리는 저의 '예의'임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손석춘 #칼럼 #한겨레 #패배주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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