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 볼 것 같아, 자기만 보고 와"

[사진] 전남 광양 가야산 일출

등록 2007.01.01 14:20수정 2007.01.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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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의 일출. ⓒ 조도춘

@BRI@2007년 정해년(丁亥年)이 시작됐다. 전날 미리 맞추어 둔 알람이 새벽 6시 잠을 깨운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가야산(광양 중동 497m)으로 출발했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가야산 주차장에는 이미 차량이 만원이다. 갓길까지 차량들이 점령된 지 오래인 듯싶다. 아직도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사람이 많다. 산길에는 가로등이 군데군데 있지만 손전등 없이 오르기는 캄캄하다.

새해 해돋이를 꼭 보자고 아들 민주(12)와 약속한 터라 어두운 산길을 사람들의 행렬 꽁무니만 보고 열심히 산을 올랐다. 아이들은 지쳤는지 길가에 앉아 더 이상 오르기를 거부하며 투정을 한다. 엄마는 지친 아이의 팔을 끌어당겨 보지만 지친 아이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한참 잠 잘 시간인데 엄마의 욕심에 해돋이를 보러가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중간쯤 오르자 민주는 지쳤는지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7시가 지나자 마음이 급해진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중간쯤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각기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나는 못 볼 것 같아, 자기만 보고와." 길모퉁이에 앉아 아쉬움에 전화 통화를 하는 아가씨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연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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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야산 정상'.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 조도춘

민주와 헤어진 지 20여 분 만에 정상에 이르렀다. 새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오른 사람들로 정상은 '사람의산'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조금씩 들어가 겨우 해맞이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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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 조도춘

동쪽 하늘은 회색빛 뿌연 구름으로 덮여 있다. 땀 흘려 오른 산행이 허사로 끝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새벽 3시부터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추위도 잊은 채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기다림의 눈초리가 동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7시 35분이 되자 일부 사람들은 구름 속에 해가 이미 떠올랐다고 포기하고 가려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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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위하여 해는 그의 온전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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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중 잠시 다시 구름 속으로 숨은 해. ⓒ 조도춘

7시 40분이 되자 구름 사이로 둥근 해의 모습이 레이스에 가려진 수줍은 새색시 얼굴처럼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카메라가 셔터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붉고 둥근 해는 곱다. 분명 어제 졌던 그 해가 아닌 듯싶다. 새해가 저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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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모 회사 사람들의 일출 산행.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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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에서 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 조도춘

감동도 잠시, 붉은 해는 광채를 내는가 싶더니 구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한해의 소원의 빌기 위해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 나간다. 모 회사는 단체로 산행을 해 회사의 번영과 사원의 친목을 도모한다. 산악회에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정상 빈자리를 이용해서 산제를 지낸다. 돼지 입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하다. 한해의 복을 비는 회원들의 어깨에는 소원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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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두개, 큰 나무주걱 "500그릇의 떡국통입니다." ⓒ 조도춘

새벽 3시에 나와 떡국을 준비한 단체도 있다. 70년생으로 똘똘 뭉친 '가람회'. 회원인 이건재(37)씨는 "새해 복을 빌러 오는 사람들에게 떡국 먹고 더 힘내시라고" 새해가 되면 실시하여 오던 게 벌써 4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50명의 회원이 참석해 500그릇의 떡국을 준비했는데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작년에 말썽 부렸던 조그만 주걱 대신 올해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준비했다. 내년에는 찜통도 3개로 더 늘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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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다시 상봉한 민주. ⓒ 조도춘

"아빠~"

민주가 왔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얼굴에 땀자국이 많이 났다. 등산하는 데 많이 힘이 든 모양이다. 산 중턱에서 새 해는 보았고 소원은 5가지나 빌었단다. 2가지는 가족을 위한 소원이고 3가지는 자신을 위한 소원이란다. 같이 손잡고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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