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소리? 아빠의 똥배 종소리?

행복한 송년의 밤

등록 2007.01.02 08:21수정 2007.01.02 09:1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할아버지와 엄마가 아이 허리를 끌어안고 똥배를 향해 힘차게 밉니다. ‘욱!’ ‘징! 징! 징!’ ‘하- 하- 하’ ⓒ 최종수

12월 31일 밤 10시, 한 해를 돌아보는 송년미사.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만 돌렸던 순간들과 이기와 욕심으로 얼룩진 마음들, 다른 사람이 던진 말과 상처로 힘들어했던 일들과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들, 그리고 멀리 했던 사람들을 흘러간 병술년 바다에 띄어 보냅니다.

@BRI@그리고 웃고 즐거웠던 순간들, 이웃과 나누었던 순간들과 이웃의 고통을 함께 했던 일들을 정해년에도 이어가길 다짐해 봅니다.

미사를 마치고 시원한 미역국과 돼지주물럭에 소주잔을 주고받습니다. 취업하고 첫 연휴를 맞아 멀리 경기도 수원에서 내려온 딸이 아빠에게 살점 하나 넣어줍니다. 정겨운 풍경 사이로 소주잔이 부딪칩니다.

"아빠 아-"
"꿀맛이네!"
"행복한 2007년을 위하여!"
"위하여!"


a

늙은 어미 까마귀를 자식 까마귀가 먹여 살린다는 반포지효의 고사성어가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 마당에서 라면을 먹는 두 아이들. ⓒ 최종수

어른들보다 즐거운 아이들. 마당의 야외 탁자에서 김을 퐁퐁 피워 올리며 떡라면을 먹습니다.

"추우니까 비닐하우스 식당으로 가서 먹지."
"안 추워요."
"후-후……."
"호로록호로록."


면발을 불어서 식히며 입으로 넘기는 소리,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두 아이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타고 행복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밤 11시에 먹는 떡라면이니 얼마나 맛있을까요?

중고생 아이들이 떡라면을 먹는 컨테이너 회합실이 떠들썩합니다. 대접 하나씩 들고 '호로록 쪽쪽' 거리는 소리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떡살보다 쫄깃쫄깃합니다. 라면이 부르트는 줄도 모르는 장난에 시간이 훌쩍 흘러갑니다.

"예들아 많이 먹어, 조금 있다가 우리가 설거지해야 돼!"
"돌리고 돌리고 까짓것 그릇을 돌리고 돌리면 되겠지!"


a

컨테이너 회합실에서 라면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고 아이들과 임시주방에서 껄껄거리는 엄마들 ⓒ 최종수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어른들의 송년회 술자리가 끝이 나고 빈 그릇이 수돗가에 쌓입니다. 함석으로 지어진 임시주방에서 깔깔거리며 라면을 넘기던 엄마들이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애들아, 엄마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안 돼요. 그건 반칙이예요."
"어머니 저희들이 할게요."
"손 묻힌 김에 우리가 할게."
"안 돼요. 우리가 추억 만들기 해야 해요."


a

설거지를 하고 있는 중3 아이들과 ‘돌리고 돌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중2 아이들 ⓒ 최종수

따뜻한 세제 물에 그릇을 씻는 아이와 찬물에 헹구는 아이, 솥을 닦는 아이와 대형 프라이팬을 씻는 아이. 중3 언니들이 설거지를 잘하라고 중2 아이들이 '돌리고 돌리고 앗싸!', '짠짜라' 등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돌리고 돌리고' 할 때는 장갑 낀 중3 언니들도 일어나 춤을 춥니다. 설거지가 아니라 개그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수돗가 바닥에 붙은 면발까지 물로 씻어냅니다.

"우와! 엄마들보다 더 깨끗하게 마무리를 하네!"
"참 잘했어요. 박수!"
"짝! 짝! 짝!"


설거지를 마친 아이들이 수돗가에 서더니 외칩니다.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a

설거지를 마치고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중고 아이들 ⓒ 최종수

"애들아 12시 5분 전이다. 제야의 종소리 들어야지."
"어디요. 어디!"
"우리 성당에는 TV가 없잖아."
"가자! 우리 집으로!"


삼삼오오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자전거 타고 가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 자전거 바퀴처럼 한 가정의 행복이 굴러갑니다. 2007년을 향한 골목길을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밝혀줍니다. 행복한 밤 골목길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장난기가 발동을 합니다.

"잡아라! 잡아라!"
"엄마야! 아빠야!"


장난에 장난으로 응수하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수단(사제가 입는 긴 원피스) 자락만 헐떡거리며 펄럭입니다.

a

제야의 종소리에 환호하는 아이들 ⓒ 최종수

중국집 가게에 들어서자 카운트다운이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와! 와!"
"야 이제 고딩이다! 고딩!"
"이제 열일곱이다!"
"애들아 2007년도 소원을 빌어야지!"
"예, 엄마!"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비는 아이들, 천사는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애야, 할아버지가 아빠 종을 울려 줄까!"
"어떡해요?"
"네 머리로 아빠 배를 들이받는 거야."
"오! 짱이에요!"
"아빠, 준비하세요!"
"북!"(할아버지와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허리를 잡아 들고서 아빠 배에 머리를 들이받는다.)
"욱! 징! 징! 징!"
"아빠 종은 한 번 쳤는데… 왜, 세 번이나 울어요!"
"하-하-하-"


2007년 새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만 행복을 찾지 않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나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 속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읍니다.

a

얼마나 행복한가! ⓒ 최종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이 기자의 최신기사 전두환의 죽음, 40년 전의 약속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