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04회

등록 2007.01.02 08:56수정 2007.01.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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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자네가 철담어른이나 쇄금도를 살해한 흉수와 내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네."

"함부로 아무 말이나 입에 담으면 어떻게 되는지 경험해 보시겠소?"

백도는 여전히 재미있는 표정을 풀지 않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어조는 낮고 차가워서 섬뜩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러나 철호 역시 백도의 말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세 번째는 자네가 혹시 팔숙(八宿)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팔숙…?"

"모른 체 할 텐가?"

광나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백도를 주시했다. 백도의 표정 변화에 따라 뭔가 알아내고자 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백도는 여전히 광나한의 말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진 채 변화가 없었다.

"흥미로운 말이구려. 보주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여덟 명 중 하나가 나라?"

광나한은 불시에 기습해 뭔가 알아내려다 아무 소득이 없자 잠시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의 얼굴에는 의혹스런 기색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세 가지 이유 전부가 아니라면 다행이네. 그렇다면 우리와 이번 일에 대해 신중하고 솔직하게 상의할 대상은 되는 것이지. 하지만 만약 자네가 팔숙 중 하나라면 조심하게. 앞으로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그 대가로 내놔야 하니까…."

말과 함께 잠시 더 백도를 응시하던 광나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주위의 교두들에게 고개 짓을 하며 몸을 돌렸다. 가자는 의미였다. 나머지 세 명의 교두도 싸늘한 시선으로 백도를 주시하고는 광나한을 따라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본 백도는 금방 처음과 같은 자세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팔숙이라…?"

오랜 만에 듣는 명호였다. 운중보주에게 보이지 않는 여덟 명의 그림자가 있다는 말이 언제부터 돌아다닌 것인지는 모른다. 또한 보주가 왜 팔숙이란 존재가 필요한지, 그리고 지금까지 팔숙이라는 인물 중 어느 한 사람도 나타난 인물은 없었다.

진정 팔숙이란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여하튼 백도는 그들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재미있다는 표정을 풀지 않고 중얼거렸다.

"저들이 나서서 설친다면 일이 쉽지는 않겠군. 거추장스런 장애물이야…."

무슨 뜻일까? 흉수를 잡는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일을 도모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의미일까? 그것은 오직 중얼거린 백도만이 알 일이었다.

54

진삼은 가슴이 마구 뛰고 호흡이 가빠짐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이 삐지 않았다면 분명 그놈들이었다. 아무리 수면에 뜬 배 위에서 캄캄한 밤이었고,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떳떳하게 내밀고 보지는 못했지만 저 두 놈이 분명하였다.

어떻게 저 놈들이 이곳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정말 셋째 주인은 영명하기 짝이 없었다. 저 놈들이 운중보 내에 있다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하시지 않았던가? 그 말이 끝난 지 겨우 반시진도 되지 않았는데 저 두 놈이 나타난 것이다.

"……!"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휘장을 걷고 나가려고 했다. 빨리 소리쳐 저 두 놈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머리가 따끔하더니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면 속이 메스껍더니 무언가 올라오는 듯했다.

정신이 아득해왔다. 그리고는 그는 앉은 채로 천천히 꼬꾸라졌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것은 이미 목구멍을 뚫고 올라온 자신의 피 때문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자신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미 느끼지 못했다. 죽어가면서 그는 자신의 피로 바닥에 글자를 남기려 애썼다. 그것이 자신을 인정한 혈간 어른에 대한 보답일 것 같았다.

'他們… 十….'

마지막 글씨는 뚜렷하지 않았다. 열십자(十字)를 쓴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글씨를 쓰다가 만 것이었다. 여하튼 그는 '그들… 열'이란 글씨를 남겨 놓았다.

55

용봉쌍비의 위력은 운중보 내 어디에서든지 통했다. 혈간의 시신을 샅샅이 살펴본 외인들은 함곡 일행이 유일할 터였다. 혈간의 사인에 대해서 함곡과 풍철한의 결론은 운중보주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혈간의 시신을 살피고는 곧바로 그들의 거처인 현무각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신시가 지나고 있었다.

"정말 억수로 쏟아 붓는군."

우장을 걸쳤다고는 하지만 이미 일행 모두 물에 바진 생쥐 꼴이었다. 잠시 잠잠해지던 빗줄기는 오후가 되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주위도 초저녁처럼 어두워져 급한 일이 아니면 움직이기 싫은 날이었다.

풍철한이 툴툴거리며 말을 했지만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혈간의 시신을 조사한 이후로 분위기는 왠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일행을 이끄는 함곡과 풍철한의 어정쩡한 태도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일행이 들어서자마자 눈치 빠른 홍교와 당화는 이미 준비했다는 듯 따뜻한 차를 내왔다. 홍교는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 두려운 표정이었다.

"자네… 아직 장문위를 만나지 못했지?"

"만나봐야지. 그러는 자네도 추교학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나?"

무거운 분위기를 떨어버리려는 듯 풍철한이 가볍게 말하자 함곡 역시 지나가는 투로 대답했다. 오전에 조사할 대상을 나누었지만 각기 한 사람씩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풍철한과 함곡 두 사람은 지금 자신들에게 급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빌어먹을…."

불쑥 찻잔을 내려놓은 풍철한이 뭐가 못마땅한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시선을 돌려 능효봉과 설중행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 잠시 나하고 이야기 하지. 자네도 같이…."

풍철한의 성격으로는 더 이상 미적거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함곡이 나서지는 않을 것 같아 직접 나선 것이다. 그는 세 사람에게 고개로 같이 가자는 눈짓을 하며 안쪽 침실로 향했다.

다른 일행들은 자세한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백호각에 조문을 간 이후로 흐르는 어색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지 눈치를 차리지 못할 멍청이는 없었다. 아직까지 묘한 적대감이 감돌고 있는 선화와 소유향 사이에 끼어 있는 반효만이 속으로 풍철한을 원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

침실로 들어간 네 사람의 분위기는 더욱 묘했다. 어느 것부터 물어야 풍철한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돌려서 묻는 것도 지겹다. 그는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불쑥 물었다.

"이제 모두 털어놔 보는 게 어때?"

설중행과 능효봉을 번갈아 보며 던진 그 다운 질문이었다.

"뭐를 말이오?"

뻔히 무엇을 묻는지 알면서도 능효봉은 시침을 떼고 능글거리며 되물었다.

"이제 말장난하는 것도 지겹지 않나? 최소한 우리에게는 털어놔야 하지 않아?"

풍철한이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능효봉의 얼굴에 능글거리던 웃음이 지워졌다.

덧붙이는 글 | 새해에는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안고 바라는 소원 모두 성취하는 복된 해가 되기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새해에는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안고 바라는 소원 모두 성취하는 복된 해가 되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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