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훈 편집국장 시절의 저 깐깐한 기사 문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제899호 '짝퉁 시사저널'의 지면에는 '증오 바이스러스'를 확산하려는 위험한 정치공학적 도상 실험과 함께 말의 타락 현상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을 따름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사 문장을 보라. "자신의 정치적 정자(精子), 즉 노무현 세력과 철학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12쪽)"
김행 편집위원이 쓴 커버스토리 '노무현, '2012년 혁명'을 꿈꾼다' 제하의 기사에서 '정치적 정자'와 같이 질낮은 표현을 보면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씻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의 문구는 이 기자의 상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응당 기자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인 비판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특정 세력을 향한 증오와 적대감 외에는 여타의 이성적 자각 능력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유령 잡지를 발행한 뒤 발행인 겸 편집인이라는 분이 자못 만족감을 표시했다는 어느 누리꾼의 말이 정녕 사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문제는 문장의 격조만이 아니라, 취재의 깊이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인 류근일 씨를 다룬 '스페셜 인터뷰'에서 <시사저널> 특유의 비판적 안목과 인터뷰어로서의 문제의식을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홍선희 편집위원의 질문은 좌·우의 시각을 아우르면서 우리 사회의 상식의 회복과 강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사저널> 편집국의 균형감각을 기대한 독자로서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를 비롯해 <시사저널>을 보는 독자들은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외롭지 않다(32쪽)"는 식의 류근일 씨의 회고 타령이나 '뉴라이트 특강'을 듣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이 잡지를 사보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시사저널>의 명예를 죽이지 말라
쌓는 것은 힘들어도 한순간에 까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예'이다.
제899호 '짝퉁 시사저널'은 지난 십수년 동안 온갖 상처와 모욕을 견디며 자립경영과 편집권 보장을 위한 전통을 스스로 쌓아온 <시사저널>만의 명예를 암장(暗葬)한 일종의 '명예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시사저널>이 쌓아온 명예는 권력·금력·종교 등 그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불굴의 탐사보도 정신을 스스로 목숨처럼 사수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책 전체를 '삼성 대해부' 기사로 파격적으로 편집한 <시사저널>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JMS교 등 이른바 성역없는 종교 문제를 과감히 추적 보도한 사례 또한 잊을 수 없다.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으려는 기자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노조 집행부가 회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현 경영진은 오기와 배짱으로 제2, 제3의 '짝퉁 시사저널'을 만들어 <시사저널>의 아름다운 명예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 그런 무개념·무원칙·반(反)독자 지향의 해적판 잡지 따위가 시장에 유통되는 것은 무엇보다 참 언론을 바라는 뭇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헤치는 도발 행위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맹목적인 '증오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논조와 편집 그리고 빈약한 취재의 철학으로는 이 경영진이 기대하는 경제적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적어도 <시사저널>이라는 제호를 달고서는, 이 경영진이 어떠한 형태의 판갈이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왜 자각하지 못하는가.
현 경영진은 문화적 반달리즘 행태를 그만두고, 노조 측의 주장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파국을 향한 '삽질'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 경영진이 자신의 강한 힘이 아니라 신뢰의 강한 힘을 믿는 인식의 전환이 있기를 바란다.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는 <시사저널> 노조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를 단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그날이 우리 사회의 상식의 회복에 기여하는 날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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