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모습을 새 디카에 담다

등록 2007.01.27 09:04수정 2007.01.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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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에 쓰던 구형 디카

전에 쓰던 구형 디카 ⓒ 홍용석

드디어 기다리던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를 받았다. <오마이뉴스>에서 디카를 준다고 해서 그동안 어떤 사양일까 몹시 궁금했다. 그전에 420만 화소짜리 구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신형이 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집으로 배달된 디카는 디자인도 세련되고 무게도 훨씬 가벼운 내가 바라던 그대로의 신형이었다.

며칠 전부터 새로 받은 디카에다 어떤 모습을 가장 먼저 담을까 생각해왔다. 많은 생각 끝에 지난해 가을 여수에서 제주까지 오셔서 막내 손녀를 돌보시고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먼저 담기로 했다.


@BRI@어머님은 막내아들 사정 때문에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제주로 오셔서 매일매일 손녀딸과 씨름하고 계신다. 손녀 딸 돌보시느라 팔순 생일도 제주에서 보내시고, 작년 추석도 제주에서 보내시고, 이번 설 명절도 막내아들과 함께 제주에서 보내실 예정이다. 막내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시고 참으시고 수고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맨 먼저 디카에 담기로 했다.

디카를 들고 나서자 아들놈이 "아빠, 나 사진 찍워 줘" 한다. "할머니 먼저 찍어드리고 강민이는 나중에 찍어 줄게"했더니 삐쳐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금은 다 풀어져서 엄마와 한글 공부중이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어머님께서는 먼저 옷부터 챙겨 입으신다. 평소 집에서 입으시는 몸빼 바지에 재킷을 걸치신다. 재킷을 입으시면서 어머님이 한 말씀 하신다.

"이번에도 일본에 나갈라. 옷이라도 하나 입어야지…."

지난 번에 어머님 팔순 생일을 주제로 쓴 글이 <오마이뉴스> 일본어판에 소개되었는데, 어머님이 그 걸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다. 못난 아들이 모처럼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린 것 같아 나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하다.


a 재킷을 벗고 새로 사진을 찍으시는 어머님.

재킷을 벗고 새로 사진을 찍으시는 어머님. ⓒ 홍용석

몸빼 바지에 재킷이 어울리는 코디는 아니지만 어머님께서 선택하신 것이기에 일단 그대로 찍었는데,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재킷을 벗고 다시 찍었다.

요 며칠 어머님께서 몸이 편찮으셨다. 처음에는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제는 안색이 너무 않좋으셨다.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여쭈었더니 귀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셨다.


게다가 음식을 씹으면 귀에서 '사그락 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려서 음식 먹기가 불편하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도 귀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며칠간 입원하신 적이 있으신 터라 걱정이 되어 그제 오후 병원에 모시고 갔다.

다행히 귀에 큰 염증이나 이상은 없었다. 단지 귀에 귀지가 가득 차서 귀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 같았다. 귀지를 빼고 나니 두통과 어지럼움이 가시고 이제는 예전처럼 편안해지셨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마지막에 건넨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귀에 큰 염증이나 이상은 없지만 서서히 청력이 떨어질 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만 하시면서 살아오신 어머님, 특히 막내아들 때문에 마음도 몸도 다 낡아버린 어머님이 귀가 어두워진다고 하니 마음이 참 아프다.

누구에게나 다 오는 노환이라고 쉽게 생각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그동안 내가 어머님께 안겨드린 근심과 고생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막내아들 집에 와서 고생하시는 동안 이미 노쇠한 육신이 더 빨리 낡고 약해져 간다는 걸 어머님도 아시면서도 그 걸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어머님. 어머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다.

오늘 새로 받은 디카를 사연으로 해서 쓴 이 글이 기사로 소개된다면 어머님도 보시게 될 것이다. 어머님 자신의 사진과 글을 보시면서 또 한 번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님에게 또 하나의 작은 효도를 하는 게 될 것이다. 반가운 디카를 통해 어머님께 효도도 하고 앞으로 다른 좋은 일도 많이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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