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톰을 지키는 바이욘의 미소

신비로운 앙코르 사원 기행 ③

등록 2007.01.31 12:35수정 2007.01.3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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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유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앙코르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190여 곳. 더구나 유적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수 km, 멀리는 10여km 떨어진 곳에 산재해 있단다. 앙코르 와트 규모 역시 세계 문화유산의 하나인 우리나라 수원성 쯤 되지 않겠느냐고 여겼던 내 수준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앙코르 톰의 남문 전경
▲앙코르 톰의 남문 전경 홍광석
앙코르 톰은 앙코르 유적의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거대한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앙코르 톰은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고 한다. 한 변의 길이가 3km나 되는 정방형의 도시에는 왕과 왕족, 귀족, 승려들만 살았고 일반 백성들은 앙코르 톰 밖에서 살았는데 당시 일대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다는 게 안내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민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신의 거처만 석재로 짓고 왕궁이나 민가는 주춧돌 외에 목재로 지었는데 그런 건물은 천년의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고 한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남문의 위용도 만만치 않다.

우뚝 솟은 탑 가운데 박힌 사면상이 인상적이다. 사면상의 주인공은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 바르만 7세의 얼굴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동일시한 아발로키테스바라(관세음보살?)의 현신이라는 설명을 메모하면서 한 번 더 쳐다보았을 뿐이다.

앙코르 톰 내의 코끼리 테라스는 왕의 사열대였다.
▲앙코르 톰 내의 코끼리 테라스는 왕의 사열대였다. 홍광석
남문을 지나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이 코끼리 테라스였다. 넓은 광장을 거느린 코끼리 테라스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국가의 중요 행사시 왕의 사열대였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너른 광장과 건너편에 클리앙이라는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은 사신들의 영접 장소로 쓰였거나 전리품을 쌓아두는 창고로 추정한다고 했다. 출정하는 군대를 격려하고 승전고를 울리고 귀환하는 군대를 환영하는 장면을 그려볼 시간이 없다. 실물 크기의 코끼리를 더듬으며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문둥이왕 테라스다.

문둥이왕 테라스는 이름도 특별했지만 구조도 다른 곳과는 달랐다. 테라스 아래쪽으로 보통 사람의 키보다는 조금 높고, 두 사람이 비켜 지날 수 있는 갱도로 이루어졌다. 갱도의 돌벽에는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부조가 벽화처럼 늘어져 있었다.

문둥이 왕이 누구였는냐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엇갈리지만 안내인은 자야 바르만 7세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재위 시 많은 병원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타 프롬의 통곡의 방과 관련해서도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나도 동의하고 싶어졌다.


강대한 영토와 막강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몸에 붙은 문둥병을 털어내지 못했을 인간의 고뇌, 그리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을 치는 소리 없는 통곡,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아발로키테스바라의 현신위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 새기도록 했으리라는 추정은 손색없는 소설의 소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뱀의 정령이 머물었다는 피미아나카스 신전의 모습
▲뱀의 정령이 머물었다는 피미아나카스 신전의 모습 홍광석
나의 상상이 혹시 엉뚱한 영혼을 억울한 문둥이로 만드는 악의적인 비방이 될까 싶어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소설 속 문둥이 왕은 자야 바르만 7세가 적격이라는 생각을 하며 뱀의 정령이 머물었다는 피미아나카스 신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9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정령이 밤에는 여자로 변해 왕과 동침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신전이라는 말을 들으며 가파른 계단을 올랐지만 지붕과 벽이 무너져가는 쇠락한 모습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 왕궁터는 볼 것 없으니 바쁘게 지나치고, 힌두교 양식으로 교각이 아름다운 바푸온 신전은 복원중이라 접근하지 못했다.

앙코르 유적은 대부분 오랫동안 방치된 결과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는데 많은 곳에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복원 공사는 주로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는 간혹 일본이나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의 벽화가 있는 회랑의 천정도 일본의 지원으로 보수 되었다고. 우리나라도 하나쯤 맡아서 복원 공사를 한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지난해는 28만명 가까운 우리나라 관광객이 앙코르 유적을 찾았는데 앙코르 관광객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욘 사원의 전경
▲바이욘 사원의 전경 홍광석
앙코르 톰의 마지막 관광지는 바이욘의 미소로 유명한 바이욘 신전이었다. 자야 바르만 7세가 내 외란을 평정하고 천년왕국의 미래를 제시하고자 앙코르 톰의 정 중앙에 세웠다는 바이욘 신전은 또 하나의 압권이었다.

중앙 탑 8면과 54개 탑의 4면에 약 200여개나 되는 자신의 얼굴을 남겨 영원불멸의 아발로키테스바라(관세음보살?)가 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욕망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아발로키테스바라가 되었을까?

현재 36개의 탑만 남은 건물의 내부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차분하게 감상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건성으로 돌아보고 나오는데 30대 후반의 아주머니 두 분이 책의 그림과 실물을 맞추어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책이었다. 사흘째 공부를 해가며 보고 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부럽다는 말만 남겼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배터리 부족으로 카메라마저 자동으로 꺼져버린다. 바이욘의 미소를 담을 수 없었다. 준비와 계획성 없이 시작한 여행의 단면을 드러내는 꼴이다.

기왕 나선 김에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겠다는 어쭙잖은 경제논리로 무장한 사람과 그런 사람을 노린 여행사의 기획이 절묘하게 시간을 맞춘 여행이었다. 때문에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쉬움이 컸던 여행이었다.

일정에 쫓기는 여행이란 피곤함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건 하나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의 크기와 허무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챙겨 담고 일행의 뒤를 쫓아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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