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앉으세요."
"저, 사장 아닌데요."
"……."
오늘(31일) 아침 머리 깎으러 미용실에 갖다가 미용사와 나눈 외마디 대화입니다.
어딜 가든 듣기 좋아하라고 '사장님'(여자의 경우에는 '사모님')으로 불리지만 그다지 탐탁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저 '손님'이라고 해도 깍듯하고 충분한데, 왜 '사장'이라는 벼슬을 빌어 치켜세우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멋쩍은 웃음 나누며 두루뭉수리 넘어갔지만, 저의 대꾸에 아무런 죄 없는(?) 미용사는 무척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신문을 뒤적여 보니 경상남도 합천군이 읍내 황강변에 조성한 공원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라고 명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합니다.
합천군수는 그 이유로 "대통령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라는 것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전두환 전 대통령 기념관'을 조성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진정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되고 나서의 치적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벼슬의 이름'에 눈이 멀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헌법을 유린했건 말았건, 학살자이건 아니건, 부정으로 축재했건 말았건, 어찌되었건 간에 '대통령이라 하면, 이 나라의 최고 어른이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수긍하고 두둔하는 모양새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벼슬의 이름'에 목을 맨 일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못해 서글픈 반역사적 코미디이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벼슬의 이름'에 목을 맨 이와 비슷한 일들이 학교 안에서조차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보통 이러한 모습들은 경쟁과 승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여기게 되지만, '매명(賣名)'에 취해 정작 중요한 교육의 본질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언제부턴가 학교의 행정 사무 관련 직급을 '과장'에서 '부장'으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업무의 내용과 양, 구성 인원 등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그저 이름만 한 단계 '자동 승진'이 된 셈입니다. 듣자니까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일반 기업체의 직급 체계에 비슷하게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여태껏 수십 년 동안 '학생과', '연구과' 등으로 부르다가 '학생부', '연구부'라고 말하려니 (비록 한 글자 차이지만) 익숙지 않아 교사들 중에 마구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어떻든 이런 노력을 통해 교사들의 사기가 높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괜한 곳에 돈 쓰고, 헛심만 쓴 꼴입니다.
사실 평교사, 부장교사, 교감, 교장 등의 구분은 승진이라는 논공행상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업무의 특성과 효율에 따른 분담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인데도, 이미 급여 수준에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세속적인 대우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커 학교 내 서로 다른 '계급'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교사가 정년 퇴임을 하거나, 명예 퇴임을 할 때 학교마다 '퇴임식'을 거행합니다. 최근 들어 많이 간소해지는 추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학생들이 강당 등에 모여 치르는, 졸업식 등에 못지않은 큰 행사였습니다.
퇴임식 행사장 앞에는 '송공(頌功)'의 현수막이 걸리고, 여러 단체에서 주는 기념패와 꽃다발이 주변에 수북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현수막이든 기념패이든, 평교사로 퇴임하면 교감으로, 교감으로 퇴임하면 교장으로, 곧 한 직급을 올려 기록하고 부르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라는 점입니다. 퇴임을 아쉬워하며 그 간의 공로를 기리는 자리이니만큼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직급을 올려주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무릇 퇴임식이란, 교사로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학생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퇴임식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학생들이 '저 선생님 언제 교감 되셨느냐'며 의아해하는 표정에서 외려 좋은 취지에서 치켜세워진 '벼슬의 이름'이 떠나가는 교사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흐리게 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친근했던 교사'로, '나이 많은 친구'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 애를 씁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이름보다도) 그 이름 뒤에 붙는 '벼슬의 이름'에 집착합니다. 그 까닭은 그것에 돈도, 권위도 함께 따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독식'에 가까울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맛에 일단 취하게 되면 독단과 독선도 서슴없이 행하고, 이내 귀와 마음이 굳게 닫히고 맙니다. 이러한 가운데 대다수의 구성원조차 자발적으로 복종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벼슬이 낮은' 사람의 건의와 비판을 쉬이 묵살하는, 물과 기름처럼 소통 자체가 힘든 상황이 벌어집니다.
'자랑스러운' 교사가 된 지 꼭 10년이 지났습니다. 퇴임을 운운하기에는 쑥스러운 경력이지만, 언젠가 학교를 떠나게 될 때 학생들이 저를 '친근했던 교사'로, '나이 많은 친구'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학생들과 저 사이에 '교사'라는 이름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껍데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람들은 나를 '서부원'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중학교 교사'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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