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서평] 심윤경의 <이현의 연애>를 읽고

등록 2007.01.31 16:31수정 2007.01.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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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좀 잔인한 말 같지만 사람을 둘로 나눈다면 영혼과 육신으로 나눠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몸에 영혼을 넣어 사람이 되었다는 말과 영혼이 몸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 일맥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무생물에 불과한 몸에 불어 넣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가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읽고 그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그렇다고 예언을 한다거나 점을 치는 게 아닌 그저 순수하게 사람의 영혼만을 끄집어내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록하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해 결혼까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현이고, 제목은 하필 <이현의 연애>다. 작가의 의도야 어떻든 난 이 소설을 관찰자 시점에서 읽었고, 따라서 화자는 이현이 되었다.

그 남자의 아내 이진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였고, 그녀의 인생은 기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영혼을 기록하는 일은 누구도 참견하거나 관여할 수 없는 이진 자신만의 고유한 일이다.

이현에게는 유년의 기억이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던 첫사랑의 기억이다. 그러고도 무려 35년 만에 똑같은 얼굴을 만났고, 다시금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란 언제나 눈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것이어서 그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결혼이라는 종속적인 제도를 협상하고 골인하기에 이른다. 두 가지 조건이란 그녀가 하는 일, 즉 영혼을 기록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3년간이라는 시한을 정한 이른바 계약결혼이었다.

@BRI@또 하나 중요한 인물은 이진의 아버지인 이세공이다. 그는 이현에게 조금도 너그럽지 못하며 시시때때로 비웃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은 자신이 장차 겪게 될 미래의 거울이었지만 이현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빠져든다.


그리고 네 편의 단편이 있다. 교수 자리를 따기 위해 마지막 재산까지 몽땅 팔아 대학에 기부금으로 내놓고 두 딸과 시골로 밀려나 어렵게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는 무능한 남편. 나는 그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들게 직장 생활을 버텨가면서 고달픈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토토로의 집.

광폭하게 삶을 즐기는 듯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내려진 고통과 주변의 시선을 끊지 못하는 오누이의 이야기, 차캄파넬라.


일반적인 교인들과는 다른 종교관으로, 이방인 또는 선지자로 내몰리면서도 우직하게 신앙을 지켜가는 부목사. 그에게 가족 몰살이라는 재앙이 닥치고 그 재앙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앙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인, 창세기.

이현을 비극으로 몰아간 부총리의 이야기는 형과 더불어 갖게 된 유년시절의 기억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정치가 부총리와 다른 내면 즉 영혼이 갖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외알 안경을 낀 사나이.

이 단편들은 이진의 영혼의 기록 중 일부분이다. 하나같이 존재하는 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뼈아픈 상처의 내면적 기록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어떤 언질이나 이음의 장치도 없이 중간 중간 삽입되었다. 언뜻 독자에게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한편 영혼의 기록이라는 이 소설의 특성상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현은 서먹한 기분을 무마하기 위해 감정을 섞어야만 할 수 있는 섹스라는 행위로 돌파구를 찾는다. 거기에 은유적으로 하얀 고양이가 등장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무대 위를 생각했다. 말없이 하얀 고양이가 나타나 무대 위를 오가다 긴 꼬리만 남기고 숨어 버리는 모습이었다.

이 작가의 소설에는 가끔 이런 은유가 등장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는 동생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으로 표현해서 좋았는데, 여기에서 하얀 고양이는 욕망을 부추겨 쾌락으로 인도하고 이진의 감정을 끌어내는 고마운 역할을 하는 고양이였다. 그리고 늪지의 고양이는 이진의 어두운 유년시절을, 또 이세공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고양이와 비교해 사랑을 베풀어도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현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그를 가로막는 건 역시 이진이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라는 사실과 이세공의 만류와 비웃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무심한 아내와 그것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쓰는 남편. 심지어 그는 아내로부터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고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상념에 젖는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에게 칭찬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양면적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진의 칭찬은 분명히 진실임에도 어쩐지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실내장식을 두고 하는 감탄 같았다. 그녀의 칭찬 앞에서 '나는 실크로 만든 벽지가 되어 벽에 발라진 것 같은 기분이다' 라고.

인간의 사랑이란 무얼까? 쉼 없이 섞이면서도 끝까지 겉도는 것. 그리고 그것은 유치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영혼에 기인한 것 같다. 서로 다른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에 완벽한 일치가 어렵고 따라서 비극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처한 냉혹한 현실 말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가 소설을 쓰는 여자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소설가 역시 인간의 영혼을 기록하는 것이고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작업이므로.

또 이야기 작업(소설 쓰기)을 할 때는 곧잘 주위의 사건이나 소요로부터 동떨어져 있게 된다. 남편이나 가족으로부터도 무미건조하게 대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쳐 외면당하기 일쑤고. 내 착각이었는지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 생각은 그랬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를 거라는 감으로 이 소설을 잡았다. 틀에 박힌 식상한 글보다는 다양한 소재나 색다른 형식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고, 신문에 난 짤막한 서평과 심윤경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반반이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에 현실의 이야기가 가미된 이야기, 새로움은 있었지만 엉성한 면도 없지 않았다. 문장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소재에 비해 내용이 튼실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요즘 와서 부쩍 우리 소설의 실종 시대가 왔다고들 떠든다. 나는 그 말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소설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작가는 문창과 출신이 아니라서 더 기대를 했고 그런대로 만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작가에게 욕심을 부리고 싶어졌다. 아직 어린 작가의 세 번째 장편이지만 작가의 기량을 믿었고, 그에 걸맞은 대단한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오래 걸리더라도 소재에 걸맞은 튼실한 내용이 실린 모두가 감탄할만한 작품을 써 달라고 당부하련다.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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