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1.31 16:03수정 2007.01.31 17:17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더아모의집이 있는 안성시 금광면 장죽리 장재동 마을에서 우리는 신명난 한판을 벌이고 있다. 송상호
"내일은 눈 올 계획이라고 하니 조심들 하셔야겠어요."
어제(29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여성 DJ의 멘트다. 그 말을 듣던 지인과 나는 한참을 허허허허 웃었다.
"눈 올 계획이라니…. 그럼 눈 오는 것도 방송국 프로그램(?)인가. 내일 눈 안 오게 하려면 방송국에 전화하면 되겠네. 어디 방송국에 전화 한번 해 볼까."

▲더아모의집 막내둥이 송바다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눈을 만들고 있다. 송상호
그런 에피소드가 있은 그 다음 날(30일) 방송국의 계획(?)대로 어김없이 눈이 왔다. 눈이 모처럼 펑펑 내리니 경기 안성시 금광면 더아모의집 아이들이 손이 근질거리고 엉덩이에 좀이 쑤시는 듯.
@BRI@드디어 한 아이가 용감하게 깃발을 세운다.
"야, 우리 눈싸움하러 가자."
"그러고 싶은데, 장갑이 없어서."
"목사님, 장갑 어디 있어요?"
드디어 나에게도 참전의 기회와 명분이 주어진다. 나는 목에 힘을 주고 고 자세로 아이들에게 장갑 있는 곳을 알려준다.
"흠흠. 그건 말이야. 바깥 싱크대 서랍 안에 있지."
"야, 찾았다. 고맙습니다."
"목사님도 같이 해요. 빨리요."
못이긴 척하며 드디어 나도 장갑을 끼고 참전의 깃발을 올린다. 장갑이라고 해야 작업할 때 사용하는 코팅 목장갑이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잽싸게 골라 끼고는 마을 앞마당으로 신나게 출정을 한다. 마지못해 참전한다던 나는 선봉장에 선다.
편을 가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하다가 보니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더아모의집 아이들이 한 편이고, 내 편은 오로지 나 혼자뿐. 이거 괜히 참전하다가 험한 꼴 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한 아이가 눈치우는 기구에 눈 폭탄을 하나 가득 담아 기습해 오고 있다. 송상호
시작하자마자 사방에서 아이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눈 포탄을 던지며 하는 멘트 또한 가관이다.
"목사님 이건 사랑의 표시예요. 목사님 사랑해요. 휙∼∼∼"
"그래, 나도 니들 사랑한다. 이 만큼씩이나 휙∼∼∼"
"누구야, 사랑한다. 휙∼∼∼"
우리는 사랑의 표시를 그런 식으로 한참을 해댄다. 뒤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사랑합니다'라고 표시하면서 눈을 던진 것은 상대방을 맞추니까 미리 사랑한다는 멘트로 아부를 떠는 거란다. 난 그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아이들을 너무 많이 사랑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이들끼리도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서로 간에 눈 싸움질이 이어진다.
세계 1차 대전에서 이젠 2차 대전이 일어난 게다. 네 편 내 편 없이 난투극이 벌어진다. 눈 오는 날 신난 강아지 마냥 우리는 마을을 접수해버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을 집마다 매어놓은 강아지들이 부럽다는 듯이 한참을 멍멍거린다. 사람들이 설치고, 강아지들이 구경을 하는 꼴이라니…. 하여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든지 말든지 우리의 전쟁은 그렇게 무르익어 간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 끝내자고 할 것도 없이 하나 둘 더아모의집으로 들어가고, 눈이 많이 오는데도 우리의 몸에는 땀 냄새가 물씬 풍긴다.

▲너무나 정성껏 사랑 포탄을 만들고 있는 본인. 아이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송상호
눈이 그치면 또 힘겹게 눈을 치워야 하든 말든 다 잊을 수 있는 신명난 한 판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눈싸움은 재미가 있다. 아이들이 했던 말처럼 '눈싸움은 사랑싸움'이 아닐까 싶다. 아직 이런 사랑싸움을 할 수 있는 지구별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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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지역에서 '더아모의집'을 열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가난한 가정, 장애인 가정, 청소년, 외국인 근로자 등을 섬기면서, 2008년 책 <문명 패러독스>를 시작으로 12권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나는 중년좌파다>를 집필 중에 있으며, 2026년 초에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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