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군수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편지] '일해공원' 명칭 논란을 지켜보며

등록 2007.01.31 18:47수정 2007.01.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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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님, 안녕하십니까?

합천은 제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으로 어린 시절의 아름답고도 아스라한 추억이 알알이 베여 중년이 된 지금도 삶의 원동력이 되고 윤활유가 되는 고향입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황홀한 계곡을 따라 흐르는 황강이 연출해내는 멋진 풍광과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끝없이 펼쳐진 눈부신 모래밭, 조용히 눈을 감으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강입니다.

여름이면 임금님께 진상을 바쳤다던 은어가 떼 지어 강을 거슬러 오르고, 겨울이면 천연기념물 고니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고저늑한 고향의 겨울 정취를 더해주던 곳, 차마 그 곳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가야산, 매화산, 황매산, 황계폭포, 함벽루 등등, 내 고향 합천은 자연풍광만이 뛰어난 곳이 아니지요. 신라 선덕여왕 당시(642) 대야성(현재 합천)이 백제군에 함락될 때 대나무와 같은 절개로 끝까지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전사한 신라충신 죽죽(竹竹), 국태민안을 위해 빚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합천군의 결정을 철회해 주십시오

@BRI@또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함은 알지 못함보다 나쁘다"며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실천적인 삶의 표상이 되고 있는 영원한 처사 남명 조식 선생님이 태어나시고, 제자들을 기른 삼가의 뇌룡정,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의 역사인물 가운데 세 명의 걸출한 인물로 꼽았던 남명 제자인 정인홍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이런 남명 선생의 가르침과 정신은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와 이 세상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는 정의를 향한 불굴의 저항정신을 잉태한 정의의 샘이 합천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내 고장 합천이 자랑스럽습니다.


군수님, 명절이나 성묫길에 고향을 찾았을 때 군수님께서 아름다운 황강변에 예쁘게 공들여 조성하신 시민의 쉼터인 '새천년 생명의 숲'을 보고서는 군민을 위한 군수님의 배려와 노고에 감사했습니다.

'고향 젊은이들이 죄다 도시로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남은 텅텅 빈 고향에서 군수님께서 군정을 펼치시려면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세원조차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군민을 위한 저런 아름다운 휴식공간을 조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군수님의 군민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새삼 놀랍다'며 혼자 되뇌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까? 어느 날 언론보도를 통해 군수님께서 조성하신 시민의 쉼터인 '새천년 생명의 숲' 명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접했습니다. 그 후에도 군수님과 군민들이 슬기와 지혜를 모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물론 밉든 곱든 내 고장에서 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이의 호를 따 그분의 공덕을 기리고 기념하고자 하는 일군의 군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직접 피해 당사자인 광주 시민들이나 다수의 일반 국민이 느끼는 감정과,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멀리 비켜나 있었으며 사건 당시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언론매체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내 고향 합천 군민들이 갖는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수의 군민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리자는 여론이 있다 하더라도 앞장서서 설득하고 말려야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자,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인륜에 대한 도발인 것입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은어와 고니의 강 황강으로, 정의를 향한 저항정신의 샘으로 기억되던 내 고향 합천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군사 독재자 전두환을 기리고 숭상하며 민주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배반의 고장으로 기억될까 두렵습니다. 제발 내 고향 합천이, 그리고 합천 사람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시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로 우리 헌법을 유린하고, 광주에서 수많은 민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총칼로써 무자비하게 살해한 인간백정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게 잡은 권력으로 수 천 억원을 축재하여 재판까지 받아 추징금을 내라고 하였으나 남은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국민을 향해 대사기극을 벌인 장본인입니다.

하루 빨리 합천군의 결정을 철회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을 경우 자랑스러운 내 고향 합천군과 합천이 고향인 사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심의조 군수님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인륜을 배반한 당사자로 영원히 역사의 낙인이 찍히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에 대해 이 땅의 민주시민과 광주시민, 그리고 민주 영령들에게 사과하고 참회하십시오. 그리고 군수님과 공무원, 군 의원, 지역 인사들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진정으로 참회하십시오.

그 길만이 지금까지 내 고향 합천과 합천 사람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군수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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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미래재단이사장,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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