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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는 정말 변절했나

영화 <황후화>의 비판적 접근에 대한 반론

07.02.06 12:25최종업데이트07.07.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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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후화>와 우리의 반응

 영화를 이끌어 가는 두 배우
ⓒ CJ엔터테인먼트
<묵공>에 관한 글에서도 밝힌 바 있듯 지난달 25일 개봉한 <황후화>는 한 번쯤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재미에 대한 기대보다는 <붉은 수수밭>, <귀주이야기>, <인생> 등과 같은 장이머우의 초기작을 좋아했던 관객으로서,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게 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한 그의 생각이 어떻게 중국을 대변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46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는 영화 <황후화>. 역시 그 명성만큼이나 영화는 거대함과 화려함의 극치였다. 오색찬란한 궁궐세트부터 시작해서 장신구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궐내 인물들의 화려한 의상들. 그리고 영화 후반부의 인해전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병사들의 하나같은 등장.

그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영화를 구원했던 건 영화 중심에서 무게를 잡고 있는 걸출한 두 배우 주윤발과 공리의 존재감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들의 카리스마는 단순히 가족 치정사로 변해버릴 수 있었던 영화에 생명력과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황궁과 별채라는 두 군데가 촬영장소의 전부였던 그 영화가 긴 시간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두 배우의 공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 또한 개인적인 취향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터무니없지도 않은 영화의 줄거리.

그러나 영화 <황후화>에 대한 대부분의 평은 차갑다. 그리고 그 비판적인 평은 대부분 똑같은 전제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장이머우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장이머우가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장이머우가 변절했기 때문이다.

장이머우 감독에 관한 추억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 <황후화>
ⓒ CJ엔터테인먼트

대학시절 처음 접했던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중국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던 그의 영화가 중국에서 심한 탄압을 받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비록 70년대 덩샤오핑의 등장 이후 개방화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중국이지만, 89년 천안문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중국은 아직까지 공산당의 무오류를 주장하며 사상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그의 체제 비판은 많은 부분 60년대 문화대혁명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직접 겪으며 하방 등 그 실상을 체험할 수 있었던 장이머우는 중국 5세대 감독으로서 문혁과 그 문혁을 잉태했던 이전 극좌주의 노선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했다.

따라서 그의 사회주의 비판은 문혁 이전 세대와 결별하고자 했던 당시 집권층에게 어렵지 않게 용인될 수 있었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공산당의 무오류를 주장하지만 새롭게 자본주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개혁을 꾀하던 집권층에게 장이머우의 영화는 무조건 거부해야 할 만큼 적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 밖의 사회에서 장이머우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예술인으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탄압은 없었어도 장이머우는 사사건건 중국 정부와 부딪혔으며, 특히 리얼리즘에 입각해 중국 인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의 영화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반체제 예술인 장이머우. 아직도 그의 초기작을 아쉬워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그의 반체적인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이머우 감독의 변절?

 논란의 중심 장이머우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장이머우 감독의 변신은 2002년 영화 <영웅>을 계기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비주얼을 강조한 것은 그의 기존 영화와 마찬가지였지만 영화 <영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그의 이전 작품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소시민 중심으로 풀어내던 기존의 사회비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대신 중앙 권력에 대한 찬미와 1990년대 이후 중국이 고민하던 중화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어쩌면 장이머우의 변신은 1989년 이후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인민군의 북경시민에 대한 발포는 중국 공산당이 기존의 헤게모니로는 더 이상 사회를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중국인민군은 더 이상 인민의 군대가 아니었으며, 1978년 이후 진행되어 온 '중국식 사회주의'는 정치적 민주와 경제적 민주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사회주의를 대체 혹은 사회주의와 병립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찾아야만 했다. 자본주의 도입으로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를 잊게 만들고 사람들을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분명 다른 이데올로기가 필요해진 것이다.

답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 중화주의로 대변되는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 치하에서 저항적 민족주의를 경험했던 중국인들이 과거 화려했던 중화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족주의는 중국 발전의 또 다른 이유가 되었으며, 불평등하게 재편되는 사회적 부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중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강조되어진 민족주의는 분명 기존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던 중국식 사회주의와 다른 모습이었다. 어쨌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상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단계로서 세계주의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지만, 중화주의의 부활은 더 이상 그와 같은 모순에 대한 고민을 불허했다.

 강렬한 색의 대비는 <황후화>의 또다른 묘미입니다.
ⓒ CJ엔터테인먼트

장이머우의 영화는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더 이상 사회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은 그 역시 영화를 통해 확인해 왔던 바, 그는 대안으로서 중화주의에 입각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중화주의를 재구성하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다. 비록 과거는 화려했을지라도 근 100년 동안 그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화려한 색감과 규모를 선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감독 스스로도 할리우드 영화에게 중국시장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소시민의 생활을 근거로 한 리얼리즘으로 현실을 비판하던 그가, 굳이 과거의 영웅들에 천착하며 판타지 적으로 중화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은 장이머우의 변신은 중국 밖 관객들에게는 배신일지 몰라도 그 자신이나 중국인에게는 시대적 대세인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란 현실을 비판하다가 종국에는 민족주의에 투신하고 마는 장이머우의 이야기는, 배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해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하는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이머우의 이야기는 결코 옆 나라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민주화 투사라며 거들먹거리던 386세대 정치인이 대추리에 군부대를 파견하고, 국론통합을 위해 이질적인 목소리를 경찰력으로 막는 작금의 웃지 못할 우리의 세태 역시 같은 맥락을 갖는다.

장이머우가 사회주의를 비판한양 그들도 독재를 비판하며 민주를 부르짖었지만 거리에서 국가와 민족을 외쳤을 뿐 우리 사회 역시 그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대응하기 위해 권위적으로 조직을 이끌었던 그 상상력의 부재가 현실로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잠을 못 자며 고민을 하고 있지만, 국익이란 이름으로 황우석을 잉태했던 우리 사회 역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이머우에 대한 기대

 기계적인 동작의 궁녀들
ⓒ CJ엔터테인먼트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그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장이머우의 <황후화>는 지겹지 않았다. 물론 화려한 볼거리도 볼거리였지만, 무엇보다 그 단순한 플롯만으로도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재능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황후화>는 이전의 <영웅>과 다르게 권력에 대한 감독의 냉소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지 않은가.

혹자들은 <황후화>를 단순히 '가족 치정사'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감독은 영화를 통해 권력의 무상함을, 그리고 권력의 집중화가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많은 피를 요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중화주의라는 시대적 대세는 거스르지 못 하더라도 권력의 집중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 감독은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 초반 사회주의의 집단체조 마냥 기계적으로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움직이는 궁녀들의 모습은 감독이 두려워하는 관료제의 투영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장이머우의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중화주의의 강조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영화가 어느 방식으로 진화할 것인가는 좀 더 지켜봐야지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안문 '사태'란 용어를 곱씹고 있다 보면 우리의 '광주사태'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용어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는 중국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황후화 장이머우 중국 광주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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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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