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들의 허망한 꿈이 묻힌 바위산 골짜기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3] 룩소르 왕가의 계곡

등록 2007.02.08 21:18수정 2007.02.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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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위협곡의 중턱에 있는 투트모시스3세의 무덤 입구

바위협곡의 중턱에 있는 투트모시스3세의 무덤 입구 ⓒ 이승철

룩소르 나일강의 서쪽지역에 있는 멤논의 거상을 돌아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왕가의 계곡을 향했다.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온통 황량한 바위산과 초라한 가옥들뿐이다. 이 지역은 어느 곳이나 옛 유적들이 산재해 있어서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이 지역의 유적을 발굴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마을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여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황량한 산자락 여기저기 파헤쳐진 곳은 모두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멤논 거상 뒤로 바라보이던 산자락을 돌아 골짜기 깊숙이 한참을 더 들어가자 왕가의 계곡이 나타났다. 옛날이라면 이 바위산 골짜기는 사람들의 접근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주변에 솟아있는 바위봉우리들과 흘러내린 바위덩어리들을 보면 살아있는 생물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다. 험하고 메마른 바위산 골짜기는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a 옛 파라오들의 공동묘지격인 왕가의 계곡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옛 파라오들의 공동묘지격인 왕가의 계곡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 이승철

사람들의 접근이 철저하게 차단된 이 험악한 지역을 이집트의 고대 파라오들은 자신들이 묻힐 장소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니 도굴당하거나 시신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었다가 언젠가 다시 부활할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로, 허황된 꿈을 묻은 것이다.

입구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나눠준 현지 가이드는 입장권을 잘 간수하라고 한다. 무덤군을 관람할 때 세 개의 무덤들을 들어가 볼 수 있는데 무덤입구에서 입장권의 모서리 한 쪽씩을 떼어내는 것으로 입장이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입장권은 계곡으로의 입장권임과 동시에 3개의 무덤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관람권이었던 셈이다.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무덤들이 있는 골짜기 입구까지는 자동차가 끄는 작은 마차 같은 무궤도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골짜기 좌우로 무덤입구들이 즐비하다. 이집트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가 지나고 신왕국 시대인 제18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 왕들의 묘소로 만든 일종의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연대로 추정해 보면 BC 1600년~ BC 1200년까지의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들이다. 이 계곡의 무덤들은 고왕국시대 카이로의 피라미드 양식과는 다른 바위산에 암굴을 파서 만든 분묘형식으로 이들은 언젠가 다시 부활을 하기위해 미이라로 만들어 무덤에 안장하였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미이라가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황량한 바위산 깊숙이 은밀한 무덤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a 왕가의 계곡을 찾은 관광객들

왕가의 계곡을 찾은 관광객들 ⓒ 이승철

영원의 안식처이자 부활의 대기 장소로 이곳을 처음으로 선택한 최초의 왕은 투트모시스1세다. 그는 자신의 묘가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가의 골짜기에 있는 많은 무덤들은 그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대부분 초기에 도굴당하고 1922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굴한 투탕카멘왕의 무덤만이 원상태로 남아있었다.

무덤들 중에는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들, 그리고 람세스 3세, 4세, 7세, 11세, 세티 1세, 2세, 아멘호텝 2세, 핫셉수트 여왕, 투탕카멘 등의 파라오들이 있으며 이중 몇 개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이 골짜기에만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 7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그들 무덤 중에서 3개의 무덤만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맨 먼저 들어간 곳은 투트모시스3세의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좁은 바위협곡을 비좁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바위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곳에 무덤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일행들이 놀라움에 혀를 찬다. 무덤입구를 지키던 사람은 가이드의 말처럼 입장권의 한쪽 귀퉁이를 조금씩 뜯어내며 입장을 시킨다. 입구로 들어서면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ㄱ자로 돌아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a 제19왕조 파라오의 무덤입구

제19왕조 파라오의 무덤입구 ⓒ 이승철

무덤에는 천정과 주변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텅 빈 석관 1개만 석주 뒤에 남아 있었다. 묘실 옆에는 함께 매장한 보물들이 쌓여있던 보물창고가 딸려 있었지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깜박 잊은 일행 중 한 명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 무덤을 지키던 사람에게 발각되어 카메라를 빼앗긴 것이었다.

당황한 일행이 손짓 발짓으로 카메라를 돌려달라고 하였지만 그는 카메라를 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후 뒤따라온 현지 가이드 이 선생이 현지말로 설명을 하자 웃으면서 돌려준다. "꼬레아 넘버원"이라며 엄지손가락까지 펼쳐 보인다.

두 번째 무덤은 19왕조의 무덤이었다. 이 무덤은 입구에서부터 거리가 멀지 않고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19왕조의 무덤에도 역시 석관이 놓여 있는데 석관 뚜껑의 안쪽에는 수많은 별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이 석관 뚜껑 안쪽에 새겨진 별들은 밤의 여신인 루트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루트가 태양을 입으로 삼키면 밤이 되고 뱉으면 아침이 된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 중에 태양신이 위대했다면 이집트에서는 루트 같은 밤의 여신이 위대했었던 모양이었다.

a 자동차가 이끄는 마차같은 크기의 무궤도 열차와 상가풍경

자동차가 이끄는 마차같은 크기의 무궤도 열차와 상가풍경 ⓒ 이승철

이 무덤을 지키는 사람은 상당히 너그러웠다. 일행들이 관 뚜껑 안쪽에 부조된 별을 보려고 몇 명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지만 관대하게 더 들어가지 말라는 손짓만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무덤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화장실은 유료화장실이어서 1달러씩을 주어야 용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뿐이 아니었다. 이집트와 중동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이런 식의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소요된 1달러 지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세 번째 무덤으로 가는 골짜기에는 이곳저곳에 무덤의 입구들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저 많은 무덤들 안에 들어가 보면 거의 비슷한 모습입니다."
가이드 이선생의 말이다. 그러자 일행들은 더 많은 무덤을 들어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가시죠? 부장품도 없는 비슷한 무덤들 자꾸 더 들어갈 필요 없겠네요."
"정말 그러네요. 그나저나 저 무덤들 다시 살아나지도 못할 파라오들이 괜히 허황된 꿈으로 힘없는 백성들만 괴롭히고 묻힌 곳이군요."
주변의 메마르고 험악한 바위산들을 둘러보던 일행 한 명이 혀를 찬다.

a 무덤이 있는 바위 협곡 풍경

무덤이 있는 바위 협곡 풍경 ⓒ 이승철

그래도 기왕에 왕가의 골짜기에 들어왔으니 들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한 개를 더 살펴보자는 다른 일행들의 제안으로 무덤 한곳을 더 들러본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다음 코스는 핫셉수트여왕의 장제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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