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란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7.02.10 10:27수정 2007.02.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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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현아
오랜만에 네게 메일을 써 본다.

네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국민학교(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고 비슷한 환경에서 컸는데 어찌 너하고 나는 세상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 다를까?

지난 번 언제던가 '박정희가 영웅' 이라는 네 메일을 보고 참담한 심정이 되어 답장도 안 하고 있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그걸 삭히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모양이다.

@BRI@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박정희가 영웅' 이라는 그 생각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오히려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젊은 세대들처럼 박정희 시대를 책이나 방송, 신문을 통해서 아니면 어른들 말씀을 전해 들었다면 몰라도 우리는 그 시대를 직접 살아 온 사람들 아니냐?

우리가 국민학교 4학년 때 5.16이 나고 대학 졸업하고 한창 직장생활 하던 때 그가 죽었으니 18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철권통치를 겪었으면서도 어찌 네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수 조영남이 김 시스터즈 귀국공연에 출연해 "신고산이 와르르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라고 와우 아파트 무너진 걸 풍자해 노래했다 방송출연 금지 당하고 군대 끌려가는 나라,

'아침이슬' 이라는 노래 기억하고 있겠지? 그 노래가 74년에는 건전가요로 뽑혔는데 그 이듬해에는 방송금지 곡 된 것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건전가요가 저항가요로 변하게 되는 그런 사회 분위기, 그걸 뭐라고 설명할까?


술집에서 정권 비판했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정보부에 끌려가 떡이 되게 얻어터지고 징역 살고 나오는 나라, 노무현 대통령을 네가 부르는 식으로 '놈현' 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그뿐이냐? 머리 길다고 길거리에서 경찰이 '바리깡' 들고 머리 깎아주는 나라, 여학생 하고 데이트 하는데 경찰이 여학생 불러 핀잔 섞인 욕설하며 치마 길이 재보는 그런 수모를 직접 겪어봤지 않으냐?


너는 그가 경제를 살리고 배고픈 것 해결했으니 민족의 영웅이다고 말하고 싶겠지? 성장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것들, 예를 들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싱을 돌리던 나이 어린 여공이 명절에 고향을 못 가는 걸 비관하고 연탄 불 피워놓고 자살한 일, 그런 어두운 면을 차지하고라도 물론 경제성장의 동력에는 그런 여공들의 공로가 높이 평가돼야 하지만.

'한강의 기적'보다 먼저 '라인강의 기적'을 경험한 같은 분단국 신분이던 독일 사람들은 독일 경제성장의 첫 조건으로 미국의 협조를 들더구나. 공산주의 세력을 동독으로 묶어두고 서독이 공산화 되는 걸 막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달러를 퍼부어 경제성장을 이뤘다.

두번째 조건으로는 막대한 돈을 경제성장에 그대로 쓸 수 있었던 정치구조의 투명성. 지금도 기억나는데 언젠가 이후락이 TV에 나와 손을 들어 보이면서 "떡을 만지면서 어떻게 떡고물이 손에 묻지 않겠냐?"고 하던 일, 그 후로 떡고물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지. 독일 정치인들은 기술이 우리보다 좋은지 떡고물 손에 안 묻히고 떡 만지는 기술이 있더군.

세번째 조건으로는 독일 국민들의 합리성, 근면, 절약을 들었어. 그런데 합리성은 몰라도 근면, 절약이라면 우리 국민들도 독일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생각한다. 독일 국민들이 전후 한참 어려울 때 세 사람이 모여야 성냥불을 켜서 담배 피운다는 이야기 들었지? 우리는 '불 좀 빌립시다' 하면 3명 아니라 30명도 성냥 한 개비로 담배 피운단다.

내가 싱가포르 있을 때 레플스 펠리스(Raffle's Place)를 쌍용건설에서 세우는데 하루 한 층씩 올라가 싱가포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날림공사라고? 지금도 끄떡없는 걸? 우리가 욕 잘하고 성급한 게 흠이지 근면이라면 세계 어디 갖다 놔도 빠지지 않는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룰 때 독일 수상이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인데 "수상의 위대한 영도력에 힘입어 독일부흥의 기적을 이뤘다"고 말하는 독일 사람들은 아직 못 만나봤다. 그게 우리와 독일의 합리성의 차이일까? 우리도 경제성장의 원인을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위대하신 영도력" 말고 다각적으로 생각해 볼 수 없을까? 문화 배경이 다르고 사회분위기가 다른데 우리하고 독일을 단순 비교하는 게 무리가 있다는 건 잘 안다만.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생업이 있으니 생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들의 한 표 한 표가 정치문화를 결정하는 것이지. 나는 선거권, 피선거권도 없다만.

입춘이 지났는데 캐나다는 아직도 추위가 한창이고 눈도 많이 왔지만 이번 추위 지나면 앞으로야 얼마나 더 춥겠냐? 언제 또 만나면 그 때 그 동네 치킨 집에서 소주 한 잔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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