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을이야? 오로라야?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6] 중앙아시아 하늘에서 잡은 노을

등록 2007.02.12 14:32수정 2007.02.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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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행의 참 맛은 꼭 목적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오가는 길에서 만난 경치나 느낌이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좋은 경치라고해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보고 있으면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사물이다. 특히 어느 특정 순간에 지나치는 경치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기회를 포착했을 때에만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이륙한 이집트국적 여객기는 우리 한반도 상공을 지나 중국대륙을 횡단하여 서쪽을 향하여 항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룩소르 공항 착륙예정시간은 현지 시간 밤 9시 50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비행하고 있는 시간에 태양은 질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노을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천산산맥의 만년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심 때문에 비행 중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좌석은 창문 옆이었다. 인솔가이드에게 미리 부탁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비행 상황판을 바라보니 고도는 1000m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중국대륙을 횡단한 비행기는 티벳 고원을 왼쪽으로 끼고 북상하다가 다시 서쪽을 향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곳까지 비행 중 가끔 내다본 그동안의 풍경은 하얀 구름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래쪽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하얀 눈에 덮인 거대한 산맥이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석양이서 약간 흐릿하긴 했지만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씩 거대한 바위봉우리도 바라보인다. 태양은 지평선이 아닌 멀리 바라보이는 구름 위 두 뼘쯤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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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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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옆자리의 일본인 아가씨에게 창밖을 내다보라고 했다. 우리일행들은 대부분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고, 혼자만 바라보고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상냥하기로 소문난 일본 여성이 아니던가. 통로 건너편 앞쪽에 앉은 일본 여성들 몇 명은 웃고 떠들며 우리일행 나이든 남성들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의 아가씨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사교성 없고 무뚝뚝한 아가씨는 처음 보았다. 처음 옆자리에 앉았을 때 자신의 일행이 8명이라고 한 이 아가씨는 어디를 여행할 것이냐는 나의 물음에 "온리 이지프트" 딱 그 한 마디 뿐이었으니까.

나이든 내게만 그러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일행들 하고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아가씨는 그저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뿐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인지 마스크까지 하고 있는 이 여성은 무엇인가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었다.


그래도 그 아름답고 멋진 경치를 혼자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아가씨에게 그 경치를 좀 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아가씨 창밖을 내다보고 난 후 별 표정도 없이 그저 "뷰티풀" 또 딱 한 마디다. 그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겨우 한 마디라니 정말 못 말리는 무뚝뚝한 아가씨다.

비행기가 높고 거대한 산맥을 다 지나는 데는 한참이나 걸렸다. 계기판의 비행기는 타림분지 위쪽을 지나 드디어 우즈베키스탄의 알마티와 타쉬겐트 위쪽 중앙아시아 대륙의 상공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그 높이다. 태양이 지는 속도가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보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하늘 위에 떠서 달리는 비행기가 서쪽으로 항진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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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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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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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하늘에서 보고 싶었던 노을은 정말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1시간여가 지나서야 태양이 하늘 끝 구름바다 위의 반 뼘쯤에 걸렸다.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새빨간 태양광 때문에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다시 20여분을 기다린 다음에야 지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구름 위에 걸린 태양빛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빛깔이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환상적인 빛깔이었다. 마침 그때 일행들 몇 명이 눈을 떴다. 무뚝뚝한 옆자리의 일본 아가씨는 포기하고 일행들에게 노을을 바라보라고 했다.

"어머! 정말 아름다운 빛깔이네. 저거 한 번 봐요!"
창밖을 내다본 우리일행 여성 한 명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다.
"히야! 저거 노을이야? 오로라야?"
또 다른 일행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그래 바로 이거야, 멋지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으면 이런 정도의 감정 표현은 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 일본여성들이 상냥하다고 했단 말인가. 내 옆자리의 아가씨를 보면 정말 아닌데. 역시 우리 아줌마들이 최고다, 저런 감정 표현, 얼마나 솔직하고 정겨운 말인가.
"정말 그러네, 오로라가 저런 빛깔 아닐까?"
불행하게도 북극이나 남극지방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맞아, 언젠가 티브이에서 보았는데 바로 저런 빛깔과 비슷했던 것 같아."
중앙아시아 상공을 나는 비행기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풍경은 정말 기막힌 빛깔과 모습으로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 황홀한 풍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정말 느리게 지는 태양은 구름바다 아래로 사라지는 시간만 20여분은 소요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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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태양이 가라앉은 구름바다는 붉은 구름의 산맥으로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 붉은 수평선 아닌 운평선(雲平線)에는 잠시 후 구름무리가 멋진 형상으로 떠오르며 마지막 황홀경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한동안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집트로 향하는 여객기 창문을 통해 바라본 중앙아시아 상공의 기막히게 아름답고 황홀한 노을풍경은 정말 다시 보기 힘든 경치였다. 역시 여행은 꼭 목적지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광경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디에선가 찾고, 보고, 느끼려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정말 멋진, 어쩌면 거저주운 경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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