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이 검정고무신을 가져간 친구야!

소아마비로 걸음이 온전치 못했던 일학년 입학시절의 추억

등록 2007.02.28 08:46수정 2007.02.28 10: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옆 집 민지는 설레는 마음에 책가방까지 메고 잔다는데… 그렇게 부풀어 있는 민지와는 달리 두렵고 떨리고 걱정스러웠던 제 초등학교 입학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저는 입학을 불과 1년 정도 앞두고서야 걸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백일이 지나면서 앓게 된 소아마비로 인해 한 쪽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서지를 못한 저는 마루와 방으로만 기어다니며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땅을 밟아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학교 갈 무렵이 되어서야 오동나무 지팡이 두 개를 만들어 걸음 연습을 시켜주셨습니다.


@BRI@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일어서려는데 힘없는 다리는 자꾸만 휘청거리며 넘어졌습니다. 마당 앞 우물가에서 마루까지만 걸어 보자며 옆에서 부축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 발자국씩을 떼다 또 넘어졌습니다. 무릎에 피가 마를 날 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쁨으로 땅을 딛고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취학 통지서를 받고 다행히 집 앞에 학교가 있어서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만약 하북고개를 넘어야 하는 오부실에 살았다면 입학을 못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손에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저를 위해 특별히 사주신, 1학년 국어 책에나 볼 수 있는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하얀 손수건과 명찰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미운오리 새끼 같았던 일학년 입학생

선생님이 "하나, 둘" 하고 구령을 붙이면 "셋, 넷" 하며 발걸음을 맞추어 따라가는 아이들은 종종거리며 어미닭을 쫒아가는 노란 병아리 같은데 친구들과의 보폭을 맞추지 못 하는 저는 미운오리 새끼만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운동장 끝에 붙어 있는 묘목 실습장으로 데리고 가 구경을 시키고, 또 반대쪽 운동장 끝에 있는 화장실에도 데리고 가 "화장실은 여기예요" 알려주고, 세종대왕 동상 앞에도, 풍랑계, 첨성대, 해시계 등을 설치해 놓은 과학실습장에도 구령에 맞추어 데리고 다니며 학교 구석구석에 있는 시설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따라가 무리에 섞일 만하면 선생님은 또 다른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며 천천히 따라 오라고 했지만 저만 따로 행동해야 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자꾸만 스스로 주눅이 들어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나온 전교생들이 수근 거리며 동물원 원숭이 바라보듯 하는 그 시선까지…. 저는 일주일 동안의 운동장 수업이 정말 싫었습니다. 일주일 후, 드디어 교실 수업에 들어가고 정미애라는 아이와 짝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미애, 짝꿍은 정미애, 참 공교롭게도 출석부까지도 정미애 다음 번호가 서미애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미애라는 친구는 툭 하면 제 필통에 있는 연필, 칼, 지우개 등을 자꾸만 가져가는 겁니다. 본디 숫기도 없고 다리 때문에 주눅까지 잔뜩 들어 의사 표시를 전혀 하지 못 했던 저는 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서도 달라는 소리를 못하고 다음 날 새 연필과 새 지우개를 우리 집 점방에서 채워 가면 또 가져가고….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아이들에게 밀려 제일 늦게 교실을 빠져 나와 보니 제 검정 고무신이 없어진 겁니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옆에 있던 춘화가 "니 고무신 정미애가 가방에 넣어갔어"라고 합니다.

짝짝이 검정고무신을 가져간 짝꿍아 어디서 뭐하노!

신발이 없어 난감해진 저는 집에도 못 가고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급사 언니가 "니는 와 집에도 안가고 거 앉아 있노?"하기에 "내 고무신을 정미애가 가져갔어예" 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급사 언니는 급히 학교 교문 앞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우리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알려 주었고, 엄마는 동구 밖을 벗어나고 있는 정미애를 쫒아가 신발을 빼앗아 왔습니다.

정미애가 가져 간 줄 알았으면 맨발로라도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해야지.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엄마에게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무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더 혼날까봐 집에 가지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제 고무신을 사 오실 때마다 "아이고 미애 고무신 사오는 날은 내가 또 죄를 짓는다카이" 라는 탄식으로 고무신 장수 아저씨에게 미안해 하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검정 고무신은 짝짝이 고무신이었습니다. 양쪽발의 크기가 달라서 힘없는 발에 똑 같은 크기의 신발을 신으면 자꾸만 훌러덩 훌러덩 벗겨지기 때문에 한 문수가 차이 나는 짝짝이 고무신을 신어야만 했습니다.

원칙으로 한다면야 두 켤레를 사서 각각 맞는 고무신으로 신고 나머지 필요 없는 고무신은 버려야 했겠지만 올망졸망한 오남매를 키우는 가난한 우리 집 형편으로서는 그렇게 할 여유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눈속임으로 짝짝이 고무신을 들고 와서는 양심의 가책이 되어 "아이고 아이고" 한숨을 내 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사연이 있는 제 짝짝이 검정 고무신을 신지도 못 할 텐데 왜 가져갔는지?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운동장 수업의 난처함과 이 검정 고무신 사건인데 매년 4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동창회에서라도 만나면 "이 가시나야! 니 그때 내 고무신 왜 훔쳐갔더노?"라고 물으며 어깨라도 한 번 툭 치고 싶은데 어쩐 일인지 정미애는 동창회에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3월에 입학하는 모든 신입생들은 저 같이 어두운 그늘 없이 새 학교, 새 학년, 새 교실, 새 선생님, 새 친구, 새 교복… 모든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다부진 포부로 힘찬 새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라디오 방송에도 올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라디오 방송에도 올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쓰고 버리기 아까운 지퍼백, 남편이 낸 재활용 아이디어 쓰고 버리기 아까운 지퍼백, 남편이 낸 재활용 아이디어
  2. 2 유럽 여행 간 아들네 강아지를 18일 맡아주고 깨달은 것 유럽 여행 간 아들네 강아지를 18일 맡아주고 깨달은 것
  3. 3 여권 빼앗고, 밥과 오이만 주고...전국 방방곡곡에 도는 '괴담' 여권 빼앗고, 밥과 오이만 주고...전국 방방곡곡에 도는 '괴담'
  4. 4 "내가 죽으면 철거를" 왕의 유언에도 매년 130만 명이 찾는 성 "내가 죽으면 철거를" 왕의 유언에도 매년 130만 명이 찾는 성
  5. 5 사직구장 관중 '69명'...그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어디 있었을까 사직구장 관중 '69명'...그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어디 있었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