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필자는 세종대 79학번 졸업생이다. 세종대 졸업생들은 가슴속에 해묵은 상처가 있다. 그것은 20대의 푸른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재단의 부정과 비리로 그 풋풋한 꿈이 짓밟힌 과거의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깊어진 데는 수구언론도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서야 이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다. 지난 2005년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뒤 대학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총장이 선임되고 장기적인 발전계획들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월간조선>과 <조선일보> <시사저널>을 위시한 일련의 수구언론이 만든 허위의 기사들이 또다시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었다. <월간조선>과 <조선일보>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종대는 소위 민주화 인사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로 인해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밝히건대, 결코 세종대는 민주화 인사들에 의해 '점령'된 것이 아니고 '혼란'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세종대의 역사는 재단을 운영하던 주명건 전 이사장과 그 가족들에 의해 계속된 부정과 비리를 청산하고 민주적인 대학을 만들고자 노력한 피눈물의 역사인 것이다.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던 이사장
일반인들은 과거 세종대의 실정이 어떠했는지를 잘 모르겠기에 주명건 전 이사장 집안의 전횡이 어떠했는가 먼저 이야기해보자.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9년에 주명건 전 이사장의 가족은 이사장·이사·학장·대학원장·학과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재단 이사장의 사택(관저)은 대학캠퍼스 한가운데 있었는데, 방학 중에도 가끔씩 무용과 교수이 사택에 불려갔다고 한다. 주 전 이사장의 아이들에게 발레 레슨을 시키라는 명령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전횡은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이 대학은 내가 반지팔아 만든 학교다,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너희들이 나가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쯤이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이들도 대학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교수든 직원이든 학생이든 그 어느 누구도 '소유자'의 잘못에 대해 그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없었다.
그즈음 80년 서울의 봄은 왔고, 그 서울의 봄과 함께 학내민주화 운동은 일어났다. 세종대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한 마음이 되어 민주적인 대학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5·17과 함께 민주화의 노력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좌절의 아픔은 가슴에 상처로 남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80년 4월에도 <조선일보>는 학생들과 대화를 원한다면서 농성장에 남았었던 이사장과 학장일행을 '연금'했다고 대서특필한 것은 물론이다.
일반인들이 기억하고 있을 '90년 전원유급사건'만 하더라도 세종인들은 언론의 왜곡에 의해 상처가 깊어졌고 그 깊은 상처는 회복되기가 쉽지 않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당시 세종대는 재단과 대학 구성원이 직선총장을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사건은 재단측이 직선으로 선출된 대학총장을 교수직에서 해임하고 대학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부인하자 확대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언론은 학생들을 '과격 시위대' '폭도'라고 매도했다.
그 이후에도 주명건 전 이사장의 가족들에 의한 전횡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음은 물론이다. 교수협의회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교직원을 대학에서 내보냈으며,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수많은 학생들을 거리로, 감옥으로 내몰았다.
'팔등신' 사건, 그리고 달라진 학교
이제 여기쯤에서 2001년에 일어난 소위 '팔등신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사건의 발단은 주명건 전 이사장이 김동우 교수의 조각 작품을 "팔등신으로 고치라"고 지시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김동우 교수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감히(?) 주명건 전 이사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그 결과는 '재임용 탈락'이었다. 어떻게 예술가의 작품을 마음대로 고치라고 요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사장이라면 그래도 되는 것인가?
물론 그 '팔등신'의 주인공은 물러서지 않았다. 복직투쟁을 벌이자 학생들과 동문, 시민단체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재단의 비리와 부정을 사회에 폭로하고 감사를 요청했다.
여기에서부터 세종대의 역사는 바뀌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교육부는 세종대에 대해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2005년 2월 그 감사결과를 발표했으니, 주명건 전 이사장이 공금횡령과 부정, 토지 및 건물 매입 비리 등을 위법행위를 자행했으므로 113억 원을 회수 또는 변상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주 전 이사장은 그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임원취임승인 취소'가 되고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이것을 '점령'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점령'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비리를 찬양하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임시이사 파견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또다시 세종인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세종대는 지난해 4월 교육부가 발표한 것처럼 임시이사가 파견된 19개 대학 중 가장 모범적인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임시이사가 파견되어 10여 년 이상이 경과한 다른 대학과는 달리 불과 2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정상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이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하여 법인 정관을 개정하고 대학평의원회 구성 등을 위해 이사회와 학내 구성원들 간에 의견 조율 중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혼란'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누가 혼란을 만드는가
<조선일보>가 말하는 것처럼 세종대에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주 전 이사장을 추종하는 일부 교수들에 의한 분란일 뿐이고, 대학구성원인 교수협의회·총학생회·직원노조· 총동문회가 이사회와 함께 논의하며 정상화의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을 회피하는 구재단 쪽 이사진들의 무책임한 행동들만 있을 뿐이다.
<월간 조선>은 이러한 내용을 최승구 전 사무총장과 A이사, B교수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최 전 사무총장은 교육부 감사 결과 부정과 비리에 대한 징계로 해임된 사람이며, A이사와 B교수도 바로 그 부정과 비리의 공범들인 구재단 인물인 것이다. 이들과 함께 주 전 이사장은 창학 이념을 망각하고 대학을 1인 체제로 운영하여 여러 가지 부정과 독선을 일삼았던 것이다.
주 전 이사장은 부모이자 재단의 설립자인 최옥자 목사의 부부가 그 비리와 부정의 시정을 요구하자 공공연히 "부모님이 노망이 들어 헛소리를 한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자 최옥자 목사와 그의 가족들은 주명건 전 이사장을 '패륜'이라고 표현하며 검찰에 고발까지 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설립자가 학교 소유권을 빼앗긴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대학이 특정인에 의해 소유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주 전 이사장은 설립자가 아니다. 설립자들은 따로 있다.
그리고 설립자들은 '세종대는 대학의 주인인 대학구성원들에게 환원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23일에도 졸업식장에 참석하여 세종대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닌, 사랑하는 세종인 공동체의 영원한 보금자리"라고 사회 환원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혔다.
최 목사 부부는 주 전 이사장에 대해 "설립자들의 창학 이념을 망각하고 대학을 1인 체제로 운영하여 여러 가지 부정과 독선이 있었다"며 "다시는 주명건 전 이사장이 이 학원에 간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임시이사체제가 정규이사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정이사체제로의 전환은 세종인 모두의 바람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정규이사 체제로의 전환'을 바란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으며 임무를 방기한 구재단 이사와 정상화를 가로막은 부적격 구재단측 잔류이사, 정상화를 위한 정관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구재단 측 대변 이사들에게 세종대의 정상화를 위해 물러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 이 자리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월간조선>과 <조선일보>의 내용이 주명건 전 이사장 측이 교육부와 감사원에 투서한 내용과 그 구성이 어쩌면 그렇게 동일할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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