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기능성 섬유 분야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화섬기업(효성,코오롱,새한, 휴비스)들이 섬유분야의 연구소 인력과 연구비를 줄이면서 선진국들의 첨단 고기능 제품을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술력이 뒤쳐진 데는 업체들이 연구개발을 소홀히 한 탓도 있지만 법적·제도적 환경이 선진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고기능성 고부가가치 섬유로 각광받고 있는 난연섬유 한 분야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 EU 등은 소방법규 및 환경관련 법규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난연섬유의 수요가 촉진 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하철 등 다중시설물에 대해 난연 섬유 사용을 법제화 해 놓았다. 도레이 등 일본 화섬사들이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 내에 소비되는 침대 메트리스의 경우 모두 난연 제품으로 만들어야 허가가 난다. 유아용은 더욱 엄격하다. 최근에는 의류도 유아용은 난연 소재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화재시 유아들이 어른들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다중시설에 대한 소방법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EU 지역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EU 국가들은 환경관련 법규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에코라벨'을 달지 않고는 시장에 진입할 수 없을 만큼 까다롭게 해 놓았다. 일부에서는 신무역 장벽이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그런 추세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기업들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소방법 개정안을 지난해 5월 30일 실행하려다 다중업소 업주들의 반발과 여론 때문에 1년간 미뤄졌다. 올해 5월30일경 이 개정안이 적용돼 실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소방당국에서 독려를 하고 있으나 시설을 고치느니 차라리 벌금을 내겠다는 업주가 있는 등 개정 소방법규를 종이호랑이로 간주하고 있는 분위기다. 개정된 소방법이 제대로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개정된 소방법에서 섬유관련 법규를 보면 다중이용 시설에 난연, 방염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제외 됐다. 건축비 상승을 우려한 정부와 건설업체들의 힘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다중시설에는 난연 소재를 사용토록 해야 하는데 개정 소방법은 이마저도 느슨하게 해 놓았다는 지적이다. 후 방염 시설은 사실상 불허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후 방염은 화재 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후 방염 생산업체와 저렴한 비용을 들이려는 다중업소 업주들은 반대하겠지만 원사 자체를 난연 소재로 된 난연 제품을 사용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에서부터 최근 여수출입국 사무소 화재 사건을 보면서도 우리나라는 너무 안이한 소방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다중이용 업소 업주들이야 당연히 비싼 소재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난연 소재든 방염 소재든 규제만 피해 나갈 수 있다면 값싼 제품을 쓰겠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오는 5월 30일부터 개정된 소방법이 발효되더라도 이런 분위기로는 고급 난연 소재의 수요 촉진은 거북이걸음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난연 소재는 이미 수년 전에 새한, 효성, 휴비스 등 국내 화섬사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 개발 시판하고 있는 상태지만 국내 소비는 좀처럼 크게 증가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생산기업들은 생산량의 7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그나마 최근 소방법 개정 등에 따라 난연 소재의 국내 수요가 조금씩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 소방법이 난연 섬유 사용을 강제 규정으로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다중시설에 대해 후방염이나 난연소재를 선택해 사용토록 함에 따라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는 증거다.
국내 난연섬유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새한과 효성은 2006년도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국내기준)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속도로는 고기능성 섬유 분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침대 제작 시 모두 난연 섬유를 사용해 만들도록 하고 다중시설에 대해 후방염처리가 아닌 난연 소재 사용을 의무화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화섬업계의 주장이다. 다중시설 뿐만 아니라 일반 자동차나 버스, 선박 등에도 필히 난연섬유가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중시설에 대한 난연 섬유 사용이 의무화 된다면 섬유산업 전체에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카페트나 커튼,시트커버 등이 모두 교체될 것이고 여기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관련 산업의 파급효과도 커질 수 있다.
이런 법 제도만 구축 된다면 섬유산업을 살려달라고 업계가 소리 칠 필요도 없고 정부에 산업 촉진 자금을 지원해 달라며 손을 내밀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도 다중시설에 대한 난연 섬유 소재 사용은 필히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화섬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류용 소재 중심에서 탈피해 산업용 섬유 소재 중심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회 전반에 산업용 소재 사용을 촉진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 없이 이런 목소리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도 법제도를 바꿔 수요를 촉진해 기업들이 앞 다투어 연구개발에 전력을 쏟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현재 선진국들이 양산하고 있는 고기능성 섬유 분야를 우리나라 기업들이 개발해 양산체제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이런 제도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텍스타일라이프(www.wtn21.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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