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제 아줌마여, 어딜 따라 와"

곰순이가 새끼를 낳습니다

등록 2007.03.13 21:08수정 2007.03.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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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새끼 때부터 <오마이뉴스>에 줄곧 출연해 온 곰순이 녀석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BRI@새끼를 낳던 날 곰순이는 예전과 다름없이 축 처진 배를 출렁거리며 평소처럼 밭에 따라왔습니다. 늘 그랬듯이 내가 밭에서 일하는 동안 녀석은 밭 옆 산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른 오후, 새끼 밴 곰순이를 위해 생선과 쌀밥으로 만든 '특식'을 주던 아내가 소리쳤습니다.

"인효야 인상아! 얼른 밖으로 나와 봐! 곰순이가 새끼 낳았다!"

곰순이 녀석 '분만실'에 들어가 꼼짝도 않고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습니다. 본래 털이 많아 추위에 강한 녀석이었기에 그동안 개집이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사랑채 옆 처마 밑이 녀석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새끼 낳을 것에 대비해 개집을 만들고 그 입구에 버려진 천으로 커튼까지 달아줬습니다. 그걸 젖히고 대충 훑어봤더니 새끼 세 마리가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오후 내내 개집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던 특식조차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돼서 다시 안을 들여다봤더니 두 마리였습니다. 한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커먼 곰순이 다리를 새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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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모두 일곱 마리의 새끼가 꼬물거리고 있었습니다. 곰순이를 닮은 까만 녀석이 다섯 마리, 흰 털을 지닌 녀석이 두 마리였습니다. 암놈이 몇 마리고 수놈이 몇 마리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아직은 잘 모릅니다.

a 곰순이 집 앞에 금줄을 내걸었습니다.

곰순이 집 앞에 금줄을 내걸었습니다. ⓒ 송성영

녀석들 중에는 분명 암놈 수놈 다 있을 것이기에 개집 앞에서 인상이와 함께 꼰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을 끼워 넣어 금줄로 내걸었습니다.


이제 겨우 14개월 된 아직 어리기만한 천방지축 곰순이 녀석이었는데 참 신통했습니다. 홀로 탯줄을 끊고 한 마리 한 마리 혀로 핥아 가며 모두 일곱 마리를 순산한 것입니다.

본래 건강체질인 곰순이 녀석만큼이나 새끼들 모두 건강해 보였습니다. 처음 우리 집에 입양 와서 한 달이 지나기까지 밥을 먹지 않아 동물병원 신세를 진 게 전부였습니다.

그때 동물병원 의사는 이런저런 예방 주사를 더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방 주사를 맞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위협'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동물병원 의사가 너무나 권위적이었고 또한 약을 만병통치처럼 여기고 있었기에 믿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를 가까이 해왔습니다. 그 기억 속의 개들은 약을 먹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잘 크기만 했습니다. 간혹 쥐약을 먹고 죽었던 개들은 있었지만요.

곰순이는 동물병원 의사의 염려와는 달리 그 후로 주사나 약은 물론이고 병원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내 어렸을 때의 개들처럼 주변 환경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본능적으로 자연치유법을 터득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적중했습니다. 녀석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흙이나 풀을 뜯어 먹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건강을 챙겨가며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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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그 동물병원 의사 말대로 하자면 살아 있어도 지금쯤이면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주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남산만한 배를 내놓고 산으로 밭으로 싸돌아다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새끼 일곱 마리를 순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곰순이 새끼들의 애비는 누구인가? 7년 동안 주사 한방 맞지 않고 끄떡없이 우리 집을 지켜 온 진돗개 갑돌이입니다. 사실 갑돌이가 일곱 살 먹은 노총각이라서 잘못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일곱 놈 모두 건강해 보입니다.

다들 그랬습니다. 사자견 차우차우가 아주 비싼 개이니까. 같은 종으로 짝짓기를 시키라고 합니다. 솔직히 나 또한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짝짓기를 시키는데 비용이 터무니없이 들어갔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기업 회장 아들과 결혼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녀석의 첫 발정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녀석과 함께 둠벙을 관찰하기 위해 밭으로 나서는데 갑자기 갑돌이 녀석이 곰순이를 덮쳤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a 갑돌이와 곰순이는 서로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갑돌이와 곰순이는 서로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 송성영

순간 내 입에서는 "저 것들!"라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떼 놓아야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갈등이 생겼습니다. 떼놓을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어떤 새끼가 나오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갑돌이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었습니다. 곰순이 녀석도 거부하지 않았고 서로 좋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동안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딱해 이종사촌 동생이 기르던 흰둥이를 소개시켜 줬고 또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네 노랑이도 데려다 줬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던 갑돌이 녀석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녀석의 사랑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단지 본능적인 욕구로 짝짓기한 것만은 아닙니다. 갑돌이와 곰순이는 늘 함께 지내왔습니다. 갑돌이 녀석으로서는 신경질적으로 왕왕 물어뜯어도 성질 한번 내지 않는 곰순이 녀석이었으니 그 순하디 순한 성품에 홀딱 반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재물 따위를 얻기 위해 사랑없이 결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요?

사나흘 지나고부터 아이들이 새끼를 보고 싶다기에 눈도 뜨지 않는 흰둥이와 검둥이 녀석을 꺼내 보여줬습니다.

a "이제 그만 보고 돌려 줘"

"이제 그만 보고 돌려 줘" ⓒ 송성영

곰순이 녀석은 돌려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두발로 벌떡 일어서서 아이들이 감싸고 있는 새끼를 핥아 댑니다.

"곰순아, 잠깐 기다려라. 사진 한 방만 찍고."
"아빠 안 되겠어. 넣어줘야겠어. 불쌍해."
"잠깐만, 한 장만 더 찍고."

어렸을 때 가끔 개집에 들어가 놀던 인상이가 새끼를 넣어 주기 위해 개집 깊숙이 들어서자 곰순이 녀석이 인상이 등을 발로 밟습니다.

a "어딜 들어가" 인상이가 새끼가 있는 집에 들어가자 곰순이가 등을 밟습니다.

"어딜 들어가" 인상이가 새끼가 있는 집에 들어가자 곰순이가 등을 밟습니다. ⓒ 송성영

"인상아, 너, 곰순이 집에 들어가 새끼들하고 놀아라."
"진짜? 진짜 들어가 놀아도 돼?"
"그래, 근디 엄마한데 혼날 걸?"

새끼를 낳은 지 하루만에 평소처럼 밭으로 따라 나온 곰순이 녀석. 나는 오늘도 아내에게 신고하고 밭으로 나섭니다.

"밭에 갔다 올게!"

늘 그래 왔듯이 밭에 간다는 말에 곰순이 녀석의 귀가 번쩍 열립니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부스스 기어 나옵니다. 개집 앞에 대문까지 달아놓았는데 용케도 빠져나옵니다. 축 처진 젖통을 출렁거리며 쫄래쫄래 뒤따라옵니다.

"너, 이제 아줌마여, 뭐가 그리 좋다고 헤헤거려. 새끼덜 젖이나 멕이지, 어여 들어가."

몸을 밀쳐도 소용없습니다. 밭에 나설 때마다 그랬듯이 뭔가 입에 물려 달라고 벌쩍벌쩍 뛰며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주니 잽싸게 물고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서 걸어갑니다. 엉덩이가 유난히 씰룩씰룩 거려 보입니다. 영락없이 철없는 아줌마입니다. 애 낳은 지 며칠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밭일을 나서는 건강한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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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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