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4.28 17:24수정 2007.04.28 17:2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4월 장흥읍 모 장례식장 마동욱
잔칫집에서 신발을 잃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종종 주변에서 잔칫집에 갔다가 신발을 잃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내가 그런 장본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어젯밤 그런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결혼식 피로연이나 대형식당 그리고 초상집에서 종종 비닐봉지를 나눠주면서 꼭 신발을 챙기라는 것을 볼 때마다 설마 누구 신발을 가져갈까 생각하며 지나치게 서로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상가집에 들어간 지 겨우 20분도 되지 않아 밖에 나와보니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의심을 하면서도 믿고 싶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인구 5만도 채 안되는 매우 작은 소도시이며, 서로 한번쯤 스치고 지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라 그런 불상사는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10여분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옆방에서 윷놀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옆방으로 건너가 윷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 않고, 신발만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신발은 영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신고 갔던 신발은 유명메이커 신발로 거금 17만원짜리였으며, 어쩌다 누군가로부터 유명메이커 상품권을 선물 받았을 때 종종 신어보았던 꽤 비싼 구두였습니다.
한달 전 신발이 낡아 광주에 있는 모 마트에서 6만원을 주고 구두 한 켤레를 샀습니다. 그러나 채 한달도 되지 않아 발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예전에 신어 보았던 유명 메이커 신발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자주 났습니다.
보름 전 사무실 일로 서울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함께 간 친구들이 서울에 왔으니 백화점에서 신발을 사자고 제안했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친구가 백화점 앞에서 유명 메이커 상품권을 사면 25% 할인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먼저 백화점에서 자신에 맞는 신발이 있는지 골랐고, 나 역시 함께 신발을 골랐습니다. 백화점 신발코너에서는 마침 25% 세일하고 있었습니다. 신발을 고른 우리들은 다시 백화점을 나와 상품권을 팔고 있는 상점에서 10만원짜리 상품권을 25% 할인받아 샀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25%로 할인받아 신발을 구입했습니다. 정상가의 50%를 할인받고 유명메이커 신발을 샀습니다.
이전의 유명메이커가 아닌 신발과 비교해 발은 너무나 편하고 좋았습니다. 역시 메이커 값을 하는구나 하며 보름쯤 신발을 잘 신었는데, 어제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어젯밤 신발이 없어지고 난 후 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신발을 신고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의 신발을 신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슬리퍼를 신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별생각이 다 났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모처럼 비싼 신발이 아깝기만 했습니다. 아침 일찍 다시 장례식장을 찾아갔습니다. 어제 신고 왔던 슬리퍼를 들고 찾아간 상갓집에서는 상주들이 모여 어젯밤 슬리퍼가 없어졌는데 이제 나타났다고 하며 슬리퍼를 찾아갔습니다.

▲2007년 4월 내 신발을 신고 간 이가 버리고 간 듯한 낡은 구두 마동욱
어젯밤 신발을 잃었다고 하자 마지막 남은 신발이 있을 거라며, 관산에 사는 김씨 아저씨는 자신도 20만원짜리 고급 운동화를 신고 잔칫집에 갔다가 신발을 잃었다며, 잔칫집에는 좋은 신발을 신고 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출상을 준비하고 있는 상주들 3-4명의 말이 참 걸작이었습니다. 신발을 잃은 건 안됐지만 헌 신발을 신고 와야지 새 신발을 신고 오니까, 누군가 신고 갔을 거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뭐라 하겠습니까, 신발을 잃은 내가 마치 죄인이 된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도 너무 억울했습니다. 어떻게 장만한 신발인데, 그래서 다시 찾아갔습니다. 상여는 나가고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신발장에는 한 켤레 구두가 놓여있었습니다. 신발을 신어보니 마치 내 신발처럼 크기는 딱 맞았습니다. 그러나 신고 다니기에는 매우 불편한 딱딱한 구두였습니다.
밤늦게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자신의 신발인지 모르고 내 신발을 신고 갔을 거라고 생각하자며 불편한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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