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4.28 19:18수정 2007.04.28 19:41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1688~1724)의 태를 안치한 경종대왕태실 전경 이완구
"아빠 산에 가자~"
"아빠 빼고 엄마랑 동생이랑 가라."
"으응… 싫어… 아빠도 같이 가자~"
모처럼 긴 잠을 자고 일어나 만사가 다 귀찮은 듯 누워있는 나에게 딸내미가 졸랐다. 어제 엄마와 같이 뒷산인 남산에 오르자고 약속했으니, 아빠도 동참하자는 얘기였다.
평소 쉬는 날에는 세수마저 귀찮아하는 아빠를 이해해 줄 2학년짜리 딸이 아니었다. 조르는 분위기는 동생인 아들도 마찬가지. 급기야 집사람까지 가세하여 같이 나가자고 졸랐다.
하는 수 없이 대강 씻고 옷을 입은 후, 책상 앞에 잠시 앉으니, 딸아이의 학교에서 보내준 '우리 고장 충주 문화재 탐사 대회 알림'이라는 제목이 붙은 가정통신문이 눈에 띄었다. 토요휴업일이나 방학을 이용해서 지역의 문화재에 대해 아이들과 같이 다녀오도록 하는 취지였다. 충주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재가 많이 존재해서 그런 행사가 진행되는 듯했다.
"대왕님 탯줄 넣어둔 곳이 태실이야"
| | | 태실(胎室) | | | |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모시는 곳으로, 이곳은 조선 경종대왕의 태를 모시고 있었다. 대개는 태항아리 안에만 두는 것이 보통이나, 왕세자나 왕세손 등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의 태는 따로 돌방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두게 한다. / 문화재청 | | | | |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싫어하고, 걷는 것 싫어하고,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기왕에 나갈 것이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경종대왕태실'을 목적지로 정했다. '경종대왕태실'은 충주에 오래 살았다는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下馬(하마)'라고 새겨진 비석 - 신성한 곳이니 말에서 내려서 걸으라는 표시로 생각된다 이완구
"다희야, 너 태어났을 때 엄마랑 연결된 게 뭐가 있었게?"
"탯줄~"
"어떻게 알았어?"
"예전에 엄마가 가르쳐줬어."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의외였다. 대답을 기특해 하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은 산에 가는데, 옛날 대왕님의 탯줄이 있었던 곳으로 간다."
"그게 어딘데?"
"저기 엄정이라는 곳에 있는 경종대왕 태실."
"아빠~ 태실이 뭔데?"
"탯줄 안다고 했지? 그 탯줄을 넣어놓았던 곳인데, 아무나 태실을 만들었던 건 아니고 왕의 가족들이 태어났을 때 만들었던 거야."
물과 간단한 필기도구를 챙긴 후 길을 재촉했다. 시 외곽으로 나가는 길은 시원했다.
주차를 위한 공터도 조성되어 있는 태실 입구에는 '下馬(하마)'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고 한 말일 거야."
"우리는 차에서 내렸으니까 저 명령을 어기지 않았지?"

▲태실로 가는 입구에는 민들레, 꽃마리, 애기똥풀, 개별꽃, 개불알풀, 제비꽃, 붓꽃 등의 봄꽃들과 여러 종류의 나비들을 볼 수 있었다. 이완구
입구 안쪽에는 쉴 수 있는 그늘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찾은 사람이 극히 적기 때문인지 풀들이 무성했다.
민들레, 꽃마리, 애기똥풀, 개별꽃, 개불알풀, 제비꽃, 붓꽃 등의 봄꽃들과 여러 종류의 나비들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태실보다 그 꽃과 나비들, 오르는 계단에 더 신나했다.
가파른 경사에 나무 계단이 잘 놓여 있어 태실로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르는 내내 주변의 커다란 소나무 그늘의 시원함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벌써 정상에 먼저 올라 엄마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거북이 모양의 돌(석귀부) 위에 '景宗大王胎室(경종대왕태실)'이라고 적힌 비석이 올려져 있었고, 그 뒤에 8각형의 받침돌 위에 육중해 보이는 둥근 돌방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의 태실이 눈에 들어왔다. 8각형의 받침돌 주위로는 8각형의 돌난간이 둘러쳐져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태실은 경종이 태어난 다음해인 1689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단명한 후 영조에 의해 웅장하게 꾸며지고 태실비가 세워졌으며, 순조 때 한번 도굴이 된 적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태실의 유지와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전국의 태실을 훼손하고 안에 들어있는 '태항아리'만을 창덕궁으로 옮길 때 이 태실도 훼손되었다. 훼손된 태실은 엄정면 사무소 내로 옮겨졌다가 1976년에서야 원래의 위치인 현재의 위치로 복원되었다.

▲태실과 태실비 이완구

▲태실의 8각형 받침돌 주위로 8각형의 돌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이완구
숙종의 맏아들로, 역사적으로 악명이 높게 묘사되고 있는 희빈 장씨를 어머니로 둔 경종은 재위 기간도 4년에 불과한, 누구보다도 불운한 왕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많은 태실이 아직 복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남은 가운데 경종대왕태실은 원위치에 원형 그대로 복원·정비된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 귀중한 자료라 하니 '측은하지만… 그나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로 된 문화재 안내자료는 없을까?
"근데, 저 큰 항아리는 어떻게 들고 왔지?"
"저 위 뚜껑은 누가 어떻게 올렸어?"
"왜 여기다가 저걸 만든 거야? 서울이 아니고…."
"……."
태실에 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이것저것 알아본다고 알아보고 입구의 현판들도 눈여겨봤지만, 태실을 보는 아이의 여러 질문에 답변을 하기 힘들었다.
다른 문화재들이 있는 곳에 가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도 예외 없이 입구에 있는 현판에는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표현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린이용 문화재 안내 자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만화도 괜찮을 텐데….
"문화재청장님!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판 좀 만들어 주세요."
화창한 봄날 거창한 역사 찾기는 아니더라도, 주말을 이용해서 가족끼리 사는 곳 근처의 문화재를 찾아보는 일로 봄나들이를 대신해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오늘 딸의 일기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쓰일지 살짝 궁금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아빠, 태실이 뭔데?"...문화재는 어려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