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4.30 17:42수정 2007.05.01 07:00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불향을 쫓아 다시 찾아간 낙산사에는 낙락장송과 어우러진 계단에 ‘길에서 길을 묻다’란 글이 화두처럼 새겨져 있었습니다. 임윤수
꽃소식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지난 28일,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원통보전이 불난(佛蘭)으로 돋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난꽃에서 피어날 불향(佛香)을 냄새 맞으려 꽃송이를 찾아드는 벌 나비의 마음으로 대관령 고개를 넘어섭니다.
낙산사 속의 낙산사, 낙산사 속의 고갱이인 원통보전이 난처럼 돋아나고, 향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정성이 난촉으로 돋아나고, 불자들의 기도가 난꽃이 되어 향기를 머금은 몽우리로 맺어갑니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불향을 따라가다 보니 거기가 낙산사였습니다. 일주문과 홍예문을 지나서 경내로 들어서니 원통보전이 불난(佛蘭)처럼 함초롬한 모습으로 삐죽삐죽 돋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봄 걸음을 따라 대관령 고개를 넘다
현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들녘도 산들도 꽃 단장을 하였습니다. 사방천지가 알록달록한 꽃무늬를 수놓은 연녹색 치마저고리입니다. 빨갛고 노란 꽃은 물론 연분홍 꽃들도 무늬로 놓였습니다. 나뭇가지에 핀 나무 꽃들도, 납작 엎드린 들풀들도 꽃 장식이나 치장이 되어 무늬를 이뤘습니다.

▲대관관령과 한계령 고개는 아직 겨울 색이었습니다. 임윤수
마음껏 뚝뚝 잘라서 옷감으로 준비하고, 듬성듬성 바늘로 꿰매 마음에 걸치니 봄옷 한 벌을 마음에 입게 됩니다. 대지의 옷감, 봄날을 머금고 있는 봄날의 색감으로 옷 한 벌을 해 입으니 몸과 마음에도 봄 색이 넘쳐납니다.
자연을 머금은 대지는 오묘하고도 위대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들판에 새싹을 돋우고, 거무튀튀하기만 했던 산세에 생명을 틔워냅니다. 요술 같기도 하고 마술 같기도 한 게 봄날에 펼쳐지는 대지 속 자연입니다.
무뚝뚝해 보이는 게 대지이지만 봄 처녀의 감성만큼이나 섬세하고 꼼꼼한 것도 대지입니다. 대지가 틔워내는 새싹의 부드러움, 봄꽃들이 가지고 있는 그 오밀조밀함은 아무리 봐도 오묘할 정도로 꼼꼼하고도 섬세합니다. 새싹의 부드러움과 꽃잎의 오밀조밀함에서만 섬세함과 오묘함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지에 그려지고, 산세에 물들어 가는 마술 같은 색감들도 들여다보고 돌이켜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합니다. 겨울빛 밑그림, 무표정했던 대지에 동서고금 어느 화가가 이처럼 조화롭게 채색을 하고, 아름답게 산세를 그려낼 수가 있겠습니까.

▲요사채도 또 하나의 불난으로 돋아있었습니다. 임윤수
개나리꽃을 물들인 노랑 물감, 진달래꽃을 그려낸 분홍색 물감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가 궁금합니다. 튤립에 물들인 빨간색과 노란색은 어디에 감췄다 꺼내는지도 궁금합니다. 열 길 물속을 들여다보고, 수백 길 땅속을 들어가 봤어도 온통 거무튀튀하거나 투명한 물들뿐이었는데 그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어디서 만들어내는지가 궁금합니다.
자연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위대함 자체입니다. 없던 새싹을 틔워내고, 보이지 않던 꽃들도 만들어내며 쉼 없이 창조하지만 사그라짐에도 머뭇거림이 없기에 더없이 위대해 보일지 모릅니다. 나올 때 나오고 사라질 때 사라지는 순리의 창조자, 그게 바로 자연입니다.
대지는 새싹과 꽃들만 피워내는 게 아니라 향기도 피워냅니다. 갖은 봄꽃이 피워내는 향기야말로 자연과 대지가 버무린 봄날의 조화이며 향연입니다. 그러기에 봄날이 되면 사람들은 콧볼 킁킁거리며 봄날의 향기를 쫓거나 만끽합니다.

▲낙산사 속의 낙산사, 낙산사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는 원통보전에 불난으로 돋았습니다. 임윤수
마파람에서 시작된 봄은 이미 녹음방초로 들어서는 초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관령 준령은 아직도 겨울빛입니다. 이미 완연한 봄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찾아오는 봄날, 태백준령에 올라서는 봄날은 노련한 등산객처럼 서두르지 않고 계곡에 머물고, 산등성이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거북이처럼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 봄은 어느 곳도 빠트리거나 건네 뛰지 않고 골고루 보듬으며 느릿느릿 산 정상을 향해 연록 빛깔을 물들여가며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봄날이 지나가지 않은 대관령과 한계령 고개는 겨울빛 쓸쓸함입니다.
대관령고개를 넘어서니 동해에도 봄이 지나간 자리엔 새싹이 돋았고, 봄이 머물던 자리엔 꽃들이 피었습니다. 동해안 역시 거무튀튀했던 겨울 대지는 일찌감치 연녹색을 바탕으로 알록달록한 무늬 옷들을 입었습니다.
1년 365일, 사시사철에 걸쳐 살피고 둘러보아도 자연은 위대하고 섬세합니다. 산통도 없이 매일 매일 해를 낳는 동해라 그런지 찾아오는 봄날이 더없이 산뜻합니다. 파도가 야들야들한 물결을 이루고, 바닷바람이 솜사탕처럼 부드럽습니다. 봄 걸음에 맞춰 찾아나선 동해의 봄은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쑥빛 부드러움입니다. 쑥빛 자연과 4월의 봄날에 취해가면서도 자연의 위대함, 삼라만상을 포용하고 있는 자연의 능숙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너무나 아름답던 돌담도 꼼꼼하게 보수되고 있었습니다. 임윤수

▲귀 옆에 연필을 쿡 찔러 넣은 목수는 이미 다듬어진 나무도 청승맞도록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임윤수
겨울과 봄이 계절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관령고개를 넘어 7번 국도를 따라 낙산사에 도착하니 거기엔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성이 있었습니다. 자연만 위대하고 자연만 섬세한 줄 알았더니 재건되는 원통보전의 웅대함과 섬세함에서 사람들의 정성, 불자들의 기도도 이에 못지않게 위대하고 섬세하다는 걸 보게 됩니다.
불난 낙산사, 불가의 불난(佛亂), 돋아 오른 불난(佛蘭)
불란(佛亂)이라고 했었습니다. 2년여 전, 화마에 휩싸인 낙산사, 불난 낙산사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끔찍한 불란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낙산사의 모습, 화마에 휩싸여 잿불로 사라지던 낙산사의 모습은 분명 불란이었고, 그런 불란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사부대중의 마음은 불란의 전장에 방치된 포로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불란으로 사그라져야 했던 낙산사의 전각들이 하나 둘 복원되고, 낙산사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는 원통보전이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아준 정성과 기도의 결정체, 한 촉의 불난(佛蘭)으로 낙산사에 돋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취를 감춰야 했던 원통보전의 염불 소리와 향내를 한 촉의 불난이 되어 불향(佛香)으로 피워 내려 난으로 돋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다시금 돌이켜보건대 자연의 힘도 대단하지만 사람들의 정성과 불자들의 기도도 대단합니다.

▲정성과 기도로 이루어나가는 결정체이니 다듬질에도 정성이 배었습니다. 임윤수
2년여 전, 낙산사가 화마에 휩싸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추억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에 울었고, 귀의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울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움켜잡았고, 움켜잡아야 하는 그 안타까움에 발들을 굴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겐 지혜가 있었고, 스님들에겐 원력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움과 동동 구르던 발걸음은 사람들의 마음에 정성으로 피어났고, 불자들의 가슴에는 신심으로 메아리쳤습니다. 스님들의 원력은 정성과 기도를 모으는 구심점이 되고, 구동력이 되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숯 더미가 되었고, 자연을 노래하던 풀벌레 소리 대신 숯검댕이가 풀풀 날린 것만큼 사람들의 마음엔 정성의 싹이 돋았습니다. 만사에 무덤덤한 대지, 온갖 표정과 물감을 다 담고 있으면서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대지마저 시커멓게 죽음의 색깔로 변해 있을 때 사람들은 정성을 모았고 불자들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주춧돌이 되었고, 사람들의 정성은 석축돌이 되었습니다. 만 사람의 기도는 기왓장이 되었고, 불자들의 염원은 서까래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은 기둥나무가 되었고, 도반들의 염불은 대들보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의 마음과 불자들의 정성이 어우러지니 쌍무지개 뜨고 꽃비 나리는 홍예문으로 우뚝 돋았고, 해우소와 요사채로 돋았습니다. 모든 이들의 기도와 염불은 이렇듯 불난의 싹으로 자랐습니다.
아비지의 마음과 아사달의 정성으로 촉 틔운 불난(佛蘭), 원통보전

▲불난의 꽃술과도 같은 건칠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면 원통보전에선 불향이 피어날 것입니다. 임윤수
기왓장 하나, 서까래 하나가 된 사람들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돌 하나, 나뭇조각 하나를 다듬을 때도 지성을 드렸습니다. 백제인이면서도 신라의 땅에 황룡사를 짓던 아비지의 불심과 다보탑을 다듬던 아사달의 정성으로 다듬고 깎았을 겁니다.
양양지역에서 자랐으니 낙산사와 불이(不二), 둘이 될 수 없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깎아내고, 야무진 바윗덩이를 석수장이의 땀방울로 다듬어 주춧돌로 만들어내니 원통보전의 외형이 갖춰집니다. 불심에 정성이 더해지니 지극합니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나무, 소리꾼에게 넣어주는 고수의 추임새처럼 날렵하게 치켜 올라간 곡선미가 유혹적입니다. 부드러운가 하면 묵직함이 있고, 고고한가 하면 조화가 있습니다. 뼈대뿐인 원통보전이지만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면 불성이 이루어질 성불의 자리가 될 듯합니다.
주춧돌을 놓고, 아름드리 고주와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둥 위에 공포를 얹고, 공포 위로 서까래도 얹었습니다. 부드러운 나뭇결이 부처님 미소이고, 드러나는 나무색이 부처님 피부색입니다. 아름드리 기둥이나 공포할 것 없이 끝 부분마다 포대기를 둘렀습니다.
행여 운반을 하거나 맞추기를 할 때 나뭇결 하나, 대패 자욱 하나라도 상처 날까봐 그랬는지 나무마다 끝 부분에 얇은 한지를 덧대 뽀얗게 감쌌습니다. 하얀 싸개 위로 대패질을 하고 자귀질을 하느라 뚝뚝 흘렸을 목수들의 땀방울이 흐를 듯합니다. 짜 맞추기를 할 때는 바늘귀에 실을 집어넣듯 숨소리까지 멈추었을 것 같은 정성이 배어납니다. 길이를 재고, 기울기를 맞출 때는 청승맞은 정도로 정성을 들였을 게 분명합니다.

▲아직은 좀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만 이런 꽃길, 정성과 기도를 느낄 있는 이런 길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 다시금 찾을 겁니다. 임윤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정성과 불자들의 기도가 배어 있음을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목공들의 정성과 땀방울을 느끼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런 정성과 기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성의 씨앗이 되고, 기도의 구심점이 되어 일구월심으로 불사의 월력을 놓지 않았을 스님들의 서원을 느끼기에도 충분합니다.
벌 나비가 되어 다시 한 번 불향을 쫓아가리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정성, 그렇게 올려진 사람들의 기도가 원통보전의 불난으로 촉을 틔웠으니 머지않아 불향을 머금은 불화로 피어날 것입니다. 5월 10일,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에 이어 기와를 올리고 벽면이 완성되며 원통보전이 완성되면 원통보전의 꽃술이라 할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불난 속에서도 스님들의 등에 업혀 천 년의 불씨처럼, 난(蘭)의 구근처럼 오롯하게 모셔져 있던 건칠관세음보살상이 모셔지면 새롭게 불난으로 돋아난 원통보전에서는 관음의 향, 관음의 자비가 온 누리로 퍼질 것입니다.
자연이 피워내는 대지의 꽃향기야 코끝에서만 머물지만 관음의 향, 관음의 자비로 피어오를 낙산사 불향은 모든 이의 가슴과 삼라만상의 마음으로 스며들 겁니다. 불향을 좇아 찾아간 낙산사에는 불난의 촉으로 원통보전이 솟고 있었고, 불향을 머금으려는 불화가 되어 몽우리로 맺었습니다.

▲동쪽 바다는 매일매일 산통도 없이 해를 낳지만 저물어 가는 서산은 붉게 물듭니다. 임윤수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식이 끝나고, 꽃술과도 같은 건칠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면 다시금 낙산사를 찾으렵니다. 꽃을 찾는 벌 나비의 마음이 되어, 천 년에 걸쳐 피어날 낙산사의 불향에 취하기 위해 기꺼이 찾으렵니다.
불난(佛蘭)에서 퍼지는 그 불향 속에는 사람들의 정성과 애절한 기도가 들어 있고, 그렇게 느끼는 정성과 기도야말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행복의 열쇠가 되니 꽃을 찾아드는 벌 나비의 마음으로 불향을 취하기 위해 찾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는 5월 10일, 낙산사 속의 낙산사, 낙산사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재건 불사 원통보전의 상량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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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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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나비의 마음 되어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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