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클리셰의 전복, 싱거운 복수극의 묘미

[리뷰] 영화 <하나>

07.05.10 10:57최종업데이트07.05.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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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화사 진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플 라이프>가 죽음의 지점에서 인생을 되돌아본다면 <하나>는 삶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 나간다. 일상의 소소한 의미들이야말로 인간을 존재케 하는 행복이라 감독은 말한다.

영화는 태평천국 에도시대, 주인공 소자에몬(오카다 준이치)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외딴 마을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한에 맺힌 복수극을 꿈꾸기엔 소자란 인물은 검술에 능하지도 않으며, 정작 복수보다는 아이들에게 글과 주산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다. 또 미모의 과부 오사에(미야자와 리에)에게 마음을 뺏기거나 그녀의 아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큐멘타리적 필치로 동시대를 고찰하던 감독은 고전적 소재인 사무라이 복수극을 끌어들임에도 밝고 가벼워짐과 동시에 유쾌하고 행복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의 원제인 (花よりもなほ :More Than Flower)- '꽃 보다 더'라는 타이틀이 함축하듯, 사무라이의 죽음을 미화하는 벚꽃에 덧씌워진 허울의 이미지를 벗기고 그곳에 살아 있음의 희망을 그려 넣는다.

유약함과 희미함의 사이

ⓒ (주)영화사 진진
<하나>는 사무라이 복수극의 장르적 클리셰를 전복시킨다. 그러나 감독은 이 유약한 사무라이 상을 형상화함에 있어 표면적으로 다양한 설정을 충실히 부여하고 있지만, 인물의 움직임을 받쳐주기에 에피소드는 다소 미약하다.

소자가 지닌 뛰어난 캐릭터성에도 불구하고 행위들이 인물 속에 완전히 융화 되지는 못한 인상을 남긴다. 복수의 당위성과 무관심, 무능력 사이에서 애매하게 갈등하는 동안 교묘하게도 캐릭터는 색을 더하기 보단 차츰 흐려지고 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가 절망적인 현실과 생의 감각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조율해내는 반면, <하나>는 따뜻한 색감과 경쾌한 음악 등으로 밝아졌으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가치들의 의미를 확장시킬 개개의 신들의 응집력은 전작에 비해 조금 헐거워 보인다.

복수란 명분을 취하는 것 보다 살아 있음의 의미를 획득하게 만드는 일상에의 소소함을 확장시켜가는 연출의 밀도가 과거에 비해 아쉽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행복함

ⓒ (주)영화사 진진
후반부에 이르면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에 동화되고픈 따뜻한 감성적 힘은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하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학을 달변으로 풀어내는 기교는 없으나 그 진정성은 명확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선명함은 역으로 작품의 감동을 축소시킨다. <하나>는 살아있음으로 주어진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소박한 지점으로 되돌아가고픈 욕망을 건드리긴 하되 깊게 동화되진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하나>는 가장 행복하게 준비했던 작품이라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담론을 상당 부분 대사에 의존해 풀어가려 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박한 복수극을 통해 말하는 인생론은 우리들의 생에 존재하는 작은 가치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2007-05-10 10:57 ⓒ 2007 OhmyNews
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카다 준이치 일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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