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세종대왕을 이야기하다

<세종, 실록밖으로 행차하다>를 읽고

등록 2007.05.12 10:29수정 2007.05.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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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무래도 ‘대선’이 있는 해이다보니 새삼스럽게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선장을 찾고 있는 요즘, 지금 이 시대에 걸맞는 리더십은 과연 무엇일까.

뛰어난 과단성과 과감한 결단력, 그에 비견되는 따뜻한 인간미와 도덕적 청렴성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갈망하는 리더십은 알고보면 완전무결한 초인의 이미지에 가깝다. 알고보면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리더십의 롤 모델을 갈망할 때, 우리는 흔히 역사 속 인물들에게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 이순신 장군, 퇴계 이황 등은 우리 역사 속 ‘히어로’의 간판 스타이자, 그 시대를 빛낸 선구적 리더십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 인물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마치 오늘날의 연예인처럼, 역사 속 위인들은 그 시대의 '슈퍼스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실체보다는 단지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지금 시대의 대중들에게 역사를 빛낸 영웅이자, 1만원권 지폐와 백원짜리 동전속의 고고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당대의 현실을 극복하고 업적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이나 시행착오는 오히려 간과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렴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마냥 사람만 좋다고 ‘성군’ 소리를 듣거나, 광개토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싸움박질만 잘한다고 ‘전쟁영웅’이 되었겠는가.

오늘날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성군’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러나 상투적인 수식어를 넘어 현실에 발을 딛고 역사를 바라볼 때, 세종은 성공한 정치가이자 노련한 CEO에 가깝다. 건국초기의 어려움을 넘어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만인지상을 호령하는 절대군주가 되기까지, 혹은 ‘왕’이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한 남자이자 자연인으로서의 세종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바라봐야만 할까.

<세종, 실록밖으로 행차하다>(박현모 지음/푸른역사)는 실록으로 상징되는 딱딱한 역사적 기록의 틀을 벗어나, ‘입체적 인간’으로서의 세종에 대한 다면 평가를 시도한다.

일찍부터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을 아버지 태종을 비롯하여, 황희, 허조, 박연, 정인지, 수양대군, 김종서, 신숙주 등 세종의 혈육에서 신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선들이 등장하여 ‘인간 세종’을 이야기한다.


눈에 띄는 것은 세종과 동시대 인물이 아니라 300년이나 후대의 인물인 정조까지 등장시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의 분석을 시도하는 부분이다.

9명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종의 모습은 매사 일관되고 빈틈없는 성군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달라요’에 가깝다.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4군 6진 개척을 독려하는 영웅의 모습에서부터, 며느리(세자빈)의 동성애 사건이나 관료들의 섹스 스캔들 등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왕인 태종에 의하여 억울하게 숙청되는 장인 심온의 비극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신하들이 반대한 궁궐 내 불당 건립을 강행해 성균관 유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서는, 공명정대한 군주의 풍모보다는, 오히려 국익과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노련한 정치가의 모습에 더 가깝다.

숨막히게(?) 완벽한 이미지로서의 세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세종의 다중적인 면모가 다소 실망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보다 ‘인간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한 세종 시대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유명한 황희나 박연같은 인물들 역시 당시에는 부패나 성 스캔들에 얽혀진 부정적인 면이 알려지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과오에만 얽매이지 않고 이들이 지닌 능력을 높이사는 실용주의적 인사로 인하여 자신의 인재 풀을 극대화시킨 세종의 안목 또한 돋보인다.

당대의 권력투쟁과 정치, 사회, 제도, 인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결국 조선 초기와 세종 시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가 지금 ‘태평성대’라고 평가하는 세종의 치세는 완벽한 시대적 조건이 갖추어진 시기여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사회적 격변과 혼돈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업적임을 이야기한다.

역사를 두부 자르듯이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세종 시대도 마찬가지로 양지와 음지가 나란히 존재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많은 위정자들이 그러했듯이, 세종 역시 오늘날 성군의 대명사로 손꼽히기까지는 ‘명분’과 ‘실리’ 사이의 선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거듭해야했던 과정이 있었다.

그 뒤를 쫓다보면 세종도 결코 완벽한 인물은 아니며, 때로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혼돈을 거듭해야만했던 지도자이자 한 남자로서의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있다. 결국, 영웅의 리더십은 태어날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과 선택의 결과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박현모 지음,
푸른역사, 2007


#세종, 실록밖으로 행차하다 #세종대황 #박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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