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 느낀 평양시민들의 숨결

[평양방문기] 변화의 기로에 선 북,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 원해

등록 2007.06.04 10:19수정 2007.06.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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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 곳곳에서는 새롭게 건설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 시내 곳곳에서는 새롭게 건설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두현
벌써 네 번째 평양행이다. 지난 2001년 8·15민족통일대축전 대표단의 일환으로 6박 7일간 평양을 찾았을 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이 지낸 1주일'이었다. 마지말날 순안공항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던 평양행이었다.

두 번째 평양행은 첫 번째 평양행으로부터 무려 4년 2개월이 지난 2005년 10월달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한 길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 1개월만인 지난 2006년 11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방북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것이 세 번째 평양행이었으니 이제 6개월 만에 평양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갈수록 평양을 찾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평양행은 예전의 평양행과는 달리 어깨가 다소 무거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역 차원의 교류협력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평양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기 전 마음속으로 다짐해보았다. 다음번에는 서울에서 마련한 행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차원의 독자적인 교류협력사업단을 구성하여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리라고.

밝아진 거리, 분주한 평양시민들

묘향산에서 남측 방문자들은 안내한 해설강사들
▲묘향산에서 남측 방문자들은 안내한 해설강사들 김두현
지난해 11월 겨울나기를 위해 '김장전투'에 한창이던 평양시민들은 '모내기전투'에 한창이었다. 평양순안공항에서 숙소인 양각도 호텔로 가는 길 주변의 논 곳곳에서는 수십 명씩 집단을 이뤄 '모내기'를 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5월초 북은 전 인민들을 동원하여 모내기 전투에 집중하기 위하여 '아리랑 공연'마저 중단하였다고 한다.

"아리랑 공연은 8월부터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김두현 선생님도 8월에 다시 오시라요."


김일성 종합대학 문학부를 나와 김형직 사범대에서 대학교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우리 버스의 안내원 오강철 선생은 지금은 모내기에 온 사회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금릉동굴을 지나 평양시내로 들어서자 평양의 거리는 몹시 분주해보였다. 건물의 보수공사는 물론 신축건물을 짓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고 평양역앞 거리는 서울역 만큼이나 오고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거리 곳곳의 간이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주로 '냉차'와 '계절과일'을 판다고 했다. 엄마에게 냉차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의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매대는 주로 식당에서 운영하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자체적으로 파는 품목을 정하지요."
그러니까 매대는 평양시내 곳곳의 식당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부업인 셈이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평양거리의 여성들의 옷차림이었다. 조선옷과 양장이 거의 반반이었던 여성들의 옷차림은 이제 거의 양장이 8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은 그 색상과 디자인이 서울명동거리에 나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어 보였다. 평양의 거리는 그렇게 밝아지고 있었다.

반가운 사람들, 반가운 거리

네 번째 평양방문이니 이제 거리의 풍경이 낯이 익었다. 개선문과 평양역, 보통문과 고려호텔의 모습은 물론 네거리의 교통안전원의 모습도 정겹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평양에서 다시 만난 사람들이 반가웠다. 서울의 남북공동행사에서 만났던 민화협 리창덕 소장도 반가웠고 지난해 평양방문 때 만났던 만경대고향집의 김진옥 강사도 반가웠다. 향산호텔의 리은실 봉사원과 민족식당의 김은경 봉사원과의 재회도 반가웠다. 재치 만점인 그들의 말대답은 평양에서의 4박 5일을 즐겁게 하였다.

지난해 미사일 발사와 북핵 실험에도 불구하고 끊어지지 않았던 남북관계가 있었기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6·15공동선언은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수많은 교류를 가져왔지만 가장 크게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구체적 만남과 인간관계의 형성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지난해 평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사진을 현상하여 전달하여 주었다. 함께 나눌 공동의 기억이 있으니 만남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지난 2001년 만남에서 남남북녀가 될 뻔 했던 필자와 전명옥 강사선생
▲지난 2001년 만남에서 남남북녀가 될 뻔 했던 필자와 전명옥 강사선생 김두현
그런데 반갑고도 아쉬운 만남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의 '전명옥 강사'와의 재회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8월 19일이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진 각국의 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방문했을 때도 전명옥 선생의 해설을 들었다. 필자는 당시 전명옥 선생이 불러내어 손을 꼭 잡고 '고향의 봄'을 함께 불렀다.

묘향산을 떠나기전 필자는 농삼아 말을 건넸다.
"남남북녀라고 우리가 결혼하면 통일부부로 통일에 기여할텐데 어떻습니까?"

그러자 전명옥 선생은 "김두현 선생은 여기에 남아야 되겠습니다"하고 농담을 했다.

김일성 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나온 전명옥 선생은 당시 27살로 북쪽으로 치면 노처녀였다. 전명옥 선생은 내가 버스에 오르자 "통일될 때까지 다른 여자 보지 마시라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됐네, 이제 꼼짝없이 여기 남아야겠군"에서부터 "허허 큰일났네, 통일될 때까지 장가못가면 완전 폭삭 늙겠구나"라는 다양한 농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아니 "통일될 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다 말입니까"라고 하니 다시 전명옥 선생은 " 아니 그만한 자신감도 없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까"라고 되받았다.

그래서 지난해 방문했을 때도 나는 애타게(?) 전명옥 선생을 찾았었다. 그러나 지난해 방문 때에는 아쉽게도 전명옥 강사는 휴가 중이었다. 당시 우리를 안내한 손혜숙 선생은 나에게 비보(?)를 전했다.

"전명옥 선생은 2년전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법률전문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김두현 선생이 다녀갔다는 말을 꼭 전하겠습니다."

지난해의 방문으로 결혼한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번 방문에서 꼭 만나고 싶었다. 다행히 전명옥 선생은 해설을 하기 위해 나왔고 우리는 6여년만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아니 선생님은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전명옥 선생은 어렴풋이 2001년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6여년만의 재회는 아쉽게도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났다.

"김두현 선생 행복하십시오."
전명옥 선생과의 만남은 이제 소중한 추억이 되어 내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느낀 평양시민들의 숨결

남측 참가자가 통일의 마음을 적어달라고 부탁하자 권지혜 안내원이 모자에 글을 써주고 있다.
▲남측 참가자가 통일의 마음을 적어달라고 부탁하자 권지혜 안내원이 모자에 글을 써주고 있다. 김두현
이번 평양방문의 백미는 방문 사흘째인 5월 27일(일) '평양-남포 통일자전거'대회에서 만난 북의 주민들이었다. 행사의 목적이기도 했던 '평양 - 남포 통일자전거대회'가 열린 이날 우리는 북의 주민들과 거의 제한 없이 접촉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오전 9시 30분경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출발한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평양-남포간 고속도로인 청년영웅고속도로의 드넓은 길에서 마음껏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의 염원을 안고 시원하게 초여름 아침바람을 가르고 달린 도로주변의 논 곳곳에는 북의 주민들이 '모내기 전투'에 한창이었다. 또한 인도에도 자전거로 도보로 볼일을 보기 위해 분주히 오고가고 있는 주민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예 반갑습니다. 통일합시다."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일손을 멈추고 남의 동포들을 대했다.
"힘내십시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북의 주민들은 지쳐 쉬는 남의 동포들에게 물도 건네주고 또 손을 마주치며 파이팅도 함께 외쳐주었다.

북의 안내원들도 이렇게 대규모로 남의 참가자와 북의 일반주민들이 아무 제한 없이 접촉한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남과 북은 살을 부대끼며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변화의 기로에 선 북,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 원해"

지난 북핵 실험 이후 핵보유국의 긍지를 강조하던 구호판들은 평양의 거리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선군정치의 위대한 생활력을 더욱 높이 발휘하자'와 같은 선군정치 관련 구호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전히 평양의 야경은 어두웠다. 아파트의 불빛은 밤 10시가 되어도 약 80% 가량 들어오고 아침 출근시간에는 경적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차량의 수도 늘어났지만 에너지난은 여전한 듯 했다.

김정숙 탁아소에서 남측 방문자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
▲김정숙 탁아소에서 남측 방문자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 김두현
어릴 때부터 유일사상에 따라 교육하는 김정숙 탁아소의 모습과 답사지 강사의 해설 첫머리에 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이야기부터 시작하는 모습에서 변화하지 않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는 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북의 주민들과의 전면 접촉허용과 늘어난 매대의 모습, 밝아진 북의 여성들의 옷차림에서 '실리'의 강조속에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북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북은 과연 변화를 통한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역사가 뒤로 가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오강철 선생의 말에서 답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과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평화뉴스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는 '민족 21'이 주최한 '평양-남포 통일자전거 대회' 참가단(152명)의 일원으로 지난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간 평양을 다녀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평화뉴스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는 '민족 21'이 주최한 '평양-남포 통일자전거 대회' 참가단(152명)의 일원으로 지난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간 평양을 다녀왔다
#북한 #평양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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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기자는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언론개혁과 지역감정 타파 냉전체제 해체에 관심이 많다.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는 평화, 통일운동 전문 시민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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