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가 더 아름답다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6] 경북 의성 '고운사' 이야기

등록 2007.06.19 08:08수정 2008.04.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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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이라고 하는 고운사,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해요. ⓒ 손현희

들머리 숲길이 아름다운 고운사

 

지난 5월 26일 경북 의성에 다녀온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고운사는 의성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곳이라 가는 길도 매우 멀었어요. 안동 쪽으로 가까이 가면서 산마다 바위 모양이 구미에서 보던 것과는 매우 달랐어요. 층층이 깎아지른 듯 높은 바위가 퍽 아름다웠지요. 이윽고 고운사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다다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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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들머리엔 시원하고 울창한 나무 숲길이 매우 아름다워요. ⓒ 손현희

고운사 들머리에는 시원한 소나무 숲길이 참 좋더군요. 둘레에 있는 절을 여러 곳 다녀봤지만, 들어가는 길이 저마다 매우 아름다워요. 여기도 그랬어요. 시원하고 높게 솟은 소나무들이 나무 그늘을 만들어 때 이른 여름 날씨를 싹 잊게 하네요. 너른 잔디밭에는 젊은이 여럿이 모여 앉아 무슨 놀이를 하는 듯 정겨워 보였습니다. 누런 흙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차는 천천히 다니시오'라는 안내판이 친절하게 붙어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쌩∼ 하고 달려가니, 먼지가 날리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네요.

 

이렇게 공기 맑고 좋은 곳에는 차를 들머리에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가는 맛도 남다를 텐데, 굳이 먼지를 날리며 문턱까지 차를 몰고 가야하는 건지 조금 얄밉기까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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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지었다는 누각 '가운루'(지방유형문화재 151호)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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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안에 들어서면, 종각이 있어요. 목어, 범종, 큰 법고 ⓒ 손현희

이윽고 일주문을 지나 절 안에 들어서니, 한눈에도 꽤 크고 너른 절 건물이 여러 채 보여요.신라시대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는 '가운루'(지방유형문화재 151호)가 꽤 멋스럽습니다. 지난날에는 가운루 아래로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렀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물이 닿지 않도록 높게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세워 누각을 지었답니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이 고운사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식량을 쌓아두고 전쟁에서 다친 병사들을 돌보며 뒷바라지를 했던 곳이기도 해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나라를 지키던 의로운 이들이 머물던 곳이 벌써 1300년 남짓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요.대웅보전과 극락전, 연수전을 비롯해 스무 개가 넘는 전각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의성' 하면 바로 '고운사'를 떠올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건물이 너무 반듯하고 깨끗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보니, 연수전과 나한전 따위를 뺀 나머지 전각들은 거의 새로 짓거나 고친 게 많았어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면 더욱 좋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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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지은 '대웅보전' 전각이 꽤 크고 아름다워요. 그런데 왜 나는... ⓒ 손현희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했던 연수전

 

그나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연수전이 있어 이곳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달랬답니다.조선 영조 20년(1774),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따로 보관하려고 지은 전각이 바로 연수전이에요. '만세문'을 거쳐 들어가는데 이 문부터 예사롭지 않아요. 지난날 흔적이 엿보여서 참 좋았답니다. 문이나 벽에 그려놓은 탱화나 벽화들이 저마다 빛깔이 바래고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을 견디고 제 모습을 지키는 걸 보니, 마음이 저절로 환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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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왕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하려고 만든 연수전, 임금님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던 곳이기도 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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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전에는 벽화도 아주 남달라요. 오랜 시간 탓에 빛깔이 바라고 낡았지만 꽤 멋스러워요. 난 왜 이런 모습이 더 좋을까요? ⓒ 손현희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떠먹고 그 곁으로 난 돌계단 위에 올라섰어요.아! 드디어 우리가 바라던 옛 모습을 지닌 전각을 찾았어요. 계단 아래로 보이는 '대웅보전'처럼 화려하고 크지는 않지만 빛깔이 바랜 예스런 모습이 더욱 정겹고,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대견스러움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곁에 안내판을 보니, 본디 이 전각은 지금 '대웅보전'이 있는 자리에서 '대웅전'으로 쓰였는데, 새로 대웅전을 지으면서 이 계단 위로 옮겨놓고 지금은 '나한전'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거래요.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어요. 한낱 전각이라 하지만, 지난날 이 고운사를 대표하는 대웅전이었는데 이렇게 따로 옮겨 놓고 이름표까지 바꾸어 달았으니….'나한전' 밑으로는 '고운사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28호)이 있어요. 이 석탑을 만든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끝 무렵 즈음에 '도선국사'가 만들었다고 해요. 이것도 지난날 대웅전 앞뜰에 있던 것을 '나한전'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래요. 석탑 아랫부분에는 귀퉁이가 조금씩 떨어져 나간 것도 보여요.

 

본디부터 있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것 또한 나름대로 멋스러워요. 차라리 이런 모습이라도 크고 화려하며 번듯하게 다시 고치는 것보다 이 모습 이대로 오랫동안 보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IMG7@@IMG8@이 밖에도 고운사에는 여러 가지 이름난 볼거리가 많아요. 보물 246호인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과 보는 이에 따라 저마다 자기를 보는듯한 '우화루' 바깥벽에 그린 호랑이 그림도 있어요.

 

그 안에 담긴 본뜻이 더욱 소중하다

 

여러 절에 다녀봤지만, 어디를 가든 둘러보고 나올 때에는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요. 아마 그건 가는 곳마다 절 건물이 날이 갈수록 크고 화려하게 바뀌기 때문인 듯해요. 또 너무나 반듯한 것도 안타까워요. 화려하고 보기에 좋게 자꾸만 새롭게 다듬고 다시 짓는 것보다는 조금 흠집이 있거나 모자란 듯 보여도 옛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보존하는 것도 꽤 뜻 깊은 일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절 뿐 아니라, 교회도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뾰족한 십자가 탑이 자꾸만 높아지는 게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절이나 교회들 가운데 건물이 큰 걸 보면, 난 왜 자꾸만 '돈'이 떠오를까요? 글쎄요….

 

건물 크기와 높이만큼 그 안에 담고 있는 뜻과 아름다운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어 오랫동안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좋은 걸 볼 때엔, 보는 이들도 아름다운 정신을 자기 삶에 채우며 살아간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7.06.19 08:0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운사 #의성 #절 #교회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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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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