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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갈망하던 새미 소사의 '명예회복'

[MLB] 21일 경기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5번째 600홈런 달성해

07.06.21 18:29최종업데이트07.06.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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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사의 600홈런은 은퇴 기로에서 재기에 성공해 거둔 값진 결실이다.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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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미 소사(39·텍사스 레인저스)의 600호 홈런이 터졌다.

21일(한국시각)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한 홈경기에 출장한 소사는 5회 말 상대선발이던 제이슨 마키(29)의 공을 받아쳐 우중간 펜스를 넘겼다. 공교롭게도 컵스는 소사가 13시즌(1992∼2004년) 동안 뛴 상징적인 구단이다.

관중은 그라운드를 도는 소사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냈다. 유독 열정적인 텍사스의 팬들답게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커튼 콜'까지 이뤄졌다. 이젠 어느덧 40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베테랑에 대한 팬들의 애정 어린 예우였다.

빅맥과 함께 만든 홈런 레이스

야구팬들은 소사에 대한 강렬한 추억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빅맥' 마크 맥과이어(44)와의 치열한 홈런 경쟁이다.

1998년 시카고 컵스 소속이던 소사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의 맥과이어와 함께 뜨거운 홈런 경쟁을 벌였다. 매일같이 날아드는 홈런 소식은 별 상관이 없는 국내 야구팬들의 안방까지 전달되곤 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는 소사와 맥과이어의 홈런 레이스가 단연 화제였다.

시즌이 끝나고 나타난 홈런 레이스의 승자는 맥과이어였다. 맥과이어는 무려 7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1961년 로저 매리스가 세운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61개를 경신했다.

마침 맥과이어는 미국 사회의 구심점인 백인이었다.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된 백인들은 앞다투어 맥과이어 띄우기에 나섰다. 때문에 거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맥과이어를 향했고 2인자였던 소사는 66개의 홈런으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듬해인 1999년도 둘의 홈런 레이스는 여전했다. 맥과이어는 65개의 홈런을 때렸고, 소사도 이에 버금가는 63개의 홈런으로 응수했다. 70홈런이 다시 돌파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이들의 홈런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러나 홈런 레이스의 영광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이적인 홈런 기록도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야구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스테로이드'의 사용 여부가 관건이었다.

맥과이어와 소사는 스테로이드 문제로 청문회에 참석했고 명쾌한 해명을 피했다. 이들의 정정당당하지 못한 행동은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게 됐다. 그 결과 은퇴한 맥과이어는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고작 23.5%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불명예스런 말로였다.

마지막으로 띄운 승부수

맥과이어는 홈런 레이스 이후 2년간 61홈런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그러나 소사는 이후도 4년 동안 226홈런을 기록하는 등 거포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윽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소사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마침 도핑테스트도 강화되면서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2002년 49홈런 108타점을 올렸던 소사는 불과 2년 후 35홈런 80타점 0.253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이런 부진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간판타자'로서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컵스 구단은 소사의 천문학적 몸값을 몹시 부담스러워 했다. 소사는 2002년 4년 계약으로 무려 총액 720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받은 상태였다.

결국 트레이드 물망에 오른 소사는 2005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뛰게 됐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극복하기 위해 뛰었지만 성적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14홈런 45타점 0.221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소사는 옵션이 채택되지 않으면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하락세가 완연한 소사를 찾는 구단은 없었다. 과거 스타로서 팀의 조직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흘려듣기 어려웠다. 2006년은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었고 소사는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이 와중에 맥과이어의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1994년 파업으로 인기가 급감한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활력을 불었던 주역이었건만 약물로 인한 도덕성의 결점으로 저평가 받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한 마무리

 소사는 600호 홈런으로 통산 홈런 5위를 유지하고 있다.
ⓒ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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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완전히 잊힌 소사가 야구계로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입단했던 텍사스 레인저스로의 복귀였다. 소사는 1985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통해 텍사스로 입단한 선수다.

조건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신분으로 뛰는 것이었다. 대신 옵션은 화려했다. 타석수에 따른 최대 220만 달러의 플러스 옵션과 올해의 재기 선수(Comeback Player of The Year)로 선정될 경우 20만 달러를 더 받을 수 있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한 위상과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진 소사의 새로운 출발은 시작부터 화려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팀의 중심타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라는 아메리퀘스트 필드를 홈으로 써 유리한 점도 없지 않지만 11홈런 51타점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선수가 낸 성적으로는 훌륭하다.

600홈런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소사. 대기록이 그의 도덕적 결함까지 덮어주기는 어렵겠지만 야구선수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큼은 훌륭하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700홈런'을 향한 발걸음이 600홈런 달성으로 한결 가벼워졌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prealist
새미 소사 홈런 600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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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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