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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 열쇠도 이제 부럽지 않다

장애인 체육 20년 숙원사업, 종합체육시설 착공식 하던 날

07.06.29 21:19최종업데이트07.06.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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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8일 열린 이천장애인종합체육시설 착공식. 건축 시작을 알리는 발파식을 하고 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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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던 지난 6월 28일. 경기도 이천에서는 장애인 체육인들이 감격어린 표정으로 한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간간이 국지성 폭우가 뿌려졌지만 한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행사장이 농지로 쓰이던 장소라 휠체어 바퀴에 검붉은 황토가 묻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날 열린 행사는 장애인체육 20년 역사의 숙원 사업인 '장애인종합체육시설' 착공식. 이 시설은 일반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시설인 태릉선수촌과 같은 곳인데 오는 2009년 9월 완공되면 엘리트체육만이 아니라 생활체육 시설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왜 차별받아야 하나

우리나라 장애인체육의 출발은 지난 '88서울장애인올림픽부터다.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에 부정적이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당시 정부는 장애인선수들을 복지시설에서 소집(?) 해 속성 코스로 운동을 가르쳐 대회에 출전시켰다. 그러나 이후 20년의 세월은 장애인선수들에게 시련의 시간을 주었다. 정작 선수들을 발굴했지만 이들을 국가대표에 걸맞게 지원하지 않았고, 관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같은 태극기를 달았는데 왜 차별하느냐고 외쳤지만, 번번이 주먹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장애인 국가대표선수들 이야기다. 2000년 시드니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할 때는 공항에서 참가 거부를 하다 주위의 설득에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고,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을 앞두고는 인천공항에서 출정식을 하는 일반 대표선수들 앞에서 우산을 펼쳐 보이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홍보 일을 하는 나 역시 선수들보다는 좀 '품위(?)' 있었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4년 주기로 장애인 국가대표 차별을 주제로하는 각종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악덕 행정 담당으로 모자이크, 음성변조 된 인터뷰 주인공 역할을 했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도 언저리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합숙이랍시고 김칫국에 밥 말아 먹어 가며 숙소 문지방을 기어 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4년에 한번씩 반복되다 보니 방송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의례적인 고발기사를 내보냈고 시스템으로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대책 없이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했다. 나로서는 고역일 수밖에 없었기에 선수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아, 거참 적당히 하지. 비행기 타고 외국도 가고 연금도 받고 다른 장애인들에 비하면 나은 편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100%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제와 생각하니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다. 자긍심이 '사람을 얼마나 빛나게 하는가, 얼마나 생산성(?)을 높이는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천에 들어서는 장애인종합체육시설

지난 2005년 말 대한장애인체육회 설립 이후 운동하고는 담 쌓고 지내는 장애인들조차, 장애인선수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멋진지를 슬슬 알아가고 있다. 장애인이 운동을 통해 자기 몸의 주인이 된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국가가 나서서 주요 정책으로 밀고 나간다 해도 안 되는 일이다. 장애인선수들은 태릉선수촌만 생각하면 정체 모를(아니, 정체가 명확한) 열등감에 우울했던 것이 사실이다. 태릉, 요즘은 들어가기 싫어하는 선수도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 대표선수들에게는 꿈같은 곳이다. 그야말로 국가가 인정하는 국가대표만이 들어갈 수 있는 훈련시설이기 때문이다.

국내 장애인체육 이제 20여 년. 그 20년의 숙원사업인 '장애인종합체육시설'이 드디어 착공식을 했다. 그동안 받았던 차별과 설움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모인 장애인선수는 물론이거니와 나 같은 관계자 모두 '감개무량'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만 4000제곱미터(5만6000여 평)의 부지는 지난 2003년에 매입했는데 그동안 건축 기금도 잘 안 모이고, 장애인올림픽도 끼어있고, 담당부처도 보건복지부에서 문화관광부로 바뀌고 해서 사업이 제대로 진척이 안 됐다. 이후 4년 여 세월에 대한 기회손실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으나 땅값이 그새 5배는 뛰었다 하니 일단 손해만은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누고 있다.

건축비 479억 원도 국고지원 344억 원, 삼성 지원금 100억 원, 전경련 회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모았다. 장애인체육사업을 이제 더 이상 국가만의 책임이 아닌 기업을 비롯한 민간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도 이번 사업은 큰 의미가 있다.

장애인 시설 환영받다

이날 공식 행사가 끝난 후 현장에서 도암리 현지 주민들과 조촐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도암리 주민들은 부지 선정 초기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서면 곡괭이로 저지하겠다는 식의 살벌한 반응을 보였으나, 이제는 지역에 자랑할만한 체육시설이 들어선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장애인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발전했다는 증거다. 장애인체육에 대한 이러한 일반대중의 긍정적인 받아들임은 앞으로 다른 장애인복지 사업에도 많은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선진화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현장에 있던 대다수의 장애인들 역시 '장애인시설이 이렇게 지역에서 환영 받으며 들어서는 일은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나저나 우리 선수들 이제는 태릉선수촌의 현관 열쇠를 줘도 안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시설도 오래 됐고, 편의시설도 없고. 이제는 '노 땡큐'다.

덧붙이는 글 이현옥 기자는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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