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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양궁 농구’의 두 얼굴

카타르전이 남긴 숙제와 교훈

07.07.03 09:05최종업데이트07.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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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농구는 3점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국제대회에서 도저히 살아남을수 없는 걸까? 7월 2일부터 대만 타이페이에서 개막된 윌리엄존스컵에 출전한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첫 베일을 벗었다.

한국은 경기 막판 터진 김동우의 3점슛과 김민수의 리바운드 팁인 슛에 힘입어 난적 카타르를 70-69로 물리치고 첫 승을 신고했다. 지난 6월 17일 대표팀 소집 이후 가진 첫 공식 A매치에서 승리했다는 것과 4쿼터 한때 10점차까지 뒤지는 열세를 극복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경기내용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오히려 이겼다는 게 놀라울 정도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리바운드 싸움은 32-49로 밀렸고, 야투 성공률은 3할대에 그쳤다.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골밑과 페인트 존은 아예 카타르에 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이 이날 유일하게 앞선 부분은 3점슛이었다. 한국은 14개를 적중시켰고, 승부처였던 4쿼터 막판에 외곽슛이 살아나며 극적인 역전승을 따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야투의 절반이 넘는 43개의 슛을 3점으로 구사했다는 점에서 한국이 얼마나 외곽슛을 난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날의 경기내용은 엄밀히 말해 '한국형 양궁농구'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지난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모습의 재방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은 세대교체를 시도했던 지난 도하아시안게임에서 5위에 그치며 사상 첫 노메달이라는 치욕적인 성적표를 감수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3점에 의존한 단조로운 공격패턴과 골밑플레이의 실종에 있었다.

한국은 도하아시안게임 전경기에서 상대팀보다 리바운드 열세를 기록했다. 당시 하승진, 서장훈, 김주성으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의 장신군단을 보유했음에도 골밑에서 한 차례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센터들은 파울트러블과 다양한 공격옵션의 부재로 골밑에서 이렇다 할 위압감을 주지 못했고,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박스 아웃에 소홀하며 상대팀에 무더기 공격 리바운드를 허용하기 일쑤였다.

반면, 한국의 최대 강점으로 불리던 외곽슛은 철저하게 침묵했다. 방성윤, 이규섭 등 대표팀 주전 슈터들이 부상으로 모두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던 가운데 포워드 라인의 무게는 현저히 떨어졌다.

한국이 도하 대회에서 유일하게 외곽슛이 폭발했던 경기가 바로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던 카타르전이었다. 당시 한국은 부상중이던 방성윤이 깜짝 출장하여 혼자서 12개의 3점슛을 포함 42점을 몰아넣는 수훈에 힘입어 카타르를 연장접전 끝에 87-81로 제압한바 있다. 그러나 카타르전을 제외하면 한국의 외곽슛은 전반적으로 계속 침묵을 거듭했다.

6개월 만의 리턴매치였던 카타르전은 지난 도하아시안게임의 재방송과 다름이 없었다. 한국은 이날 초반 이규섭과 김승현의 3점슛이 호조를 보인 데 힘입어 16-8로 리드를 잡았으나 점차 높이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동준, 김민수, 하승진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센터진은 카타르 장신 선수들의 힘과 속도에 눌려 이렇다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골대 밑에 공이 투입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골밑이 통하지 않자 초조해진 한국은 2, 3쿼터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외곽슛을 난사했다. 이규섭이 15점(3점슛 5/11 45%). 김동우가 12점(3점슛 4/13. 30%)을 기록했지만, 이 두 선수는 자신의 모든 득점을 외곽슛으로 기록했다. 골밑을 파고들어 드라이브인을 시도하거나 포스트업, 중거리 점퍼같은 다양한 공격옵션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패턴에 의하여 만들어진 슛보다는 시간에 쫓겨 던지거나 수비수를 달고 무리하게 던지는 외곽슛이 주류를 이루었다.

4쿼터 막판에 공격 리바운드가 살아난 데 힘입어 몇 차례 결정적인 외곽 슛을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이것이 한국의 기본 실력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엄밀히 말해 이날의 승리는 한국의 실력보다 막판 잇단 실책을 남발한 카타르의 자멸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외곽 슛에 의존하는 양궁농구는 필연적으로 '도박'에 가깝고, 이런 패턴이 향후 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이나 레바논 같은 강팀들에게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전술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제대회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의 정신자세의 문제다. 국내프로무대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골밑을 내주고 습관적으로 외곽에 빠지는 플레이가 몸에 배여있는 국내 포워드들은 국제무대에서 리바운드 참가나 박스 아웃같은 달라진 역할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대표팀에서 기존 베테랑들을 대거 배제하고 젊은 선수들을 보강한 것이나, 정통파 슈터보다 힘과 높이를 갖춘 장신포워드들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선배들처럼 3점만 던지는 '양궁농구'나 흉내 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는 7월 28일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있는 대표팀에게는 이번 존스컵이 전력담금질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아직 팀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는 하지만 작년 도하 대회에 비하여 선수들의 정신자세나 전술에서 전혀 변화가 없어 보여 앞으로 약 3주 정도가 남은 기간동안 얼마나 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2007-07-03 09:05 ⓒ 2007 OhmyNews
윌리엄존스컵 카타르 농구 3점슛 박스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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