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대에는 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서평] 김태완의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등록 2007.07.05 20:39수정 2007.07.0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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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패.' 말과 귀를 조심하라. 군주가 자기를 향한 직언을 외면하기 위하여 환관과 신하의 목에 걸게 한 패이다.

말은 하기 위하여, 귀는 듣기 위하여 존재한다. 말하는 자는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자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못하게 했으니 그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는 밝음으로 인하여 모든 이가 주인 되는 세상이 아니라 어두움이 지배하여 오로지 군주 그만 존재하는 시대였다. 그럼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군주는 군주가 아니다.


a <책문, 시대 물음에 답하라>

<책문, 시대 물음에 답하라> ⓒ 소나무출판사

백성 없는 군주가 있을 수 있으며, 신하 없는 군주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런 군주가 있었으니, 연산군이다. 직언과 간언을 폐한 그는 결국 반정에 의하여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연산군만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직언과 간언을 허한 군주, 등용 직전의 일군들에게 글로서 자신이 섬길 나라와 백성을 표하기를 허한 나라였다. 이를 허한 조선을 527년 긴 시간의 왕조가 되게 하였다.

나라의 일군의 직언과 간언을 듣기를 싫어한 군주도 있었지만 조선은 나라의 일군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말을 글로서 듣고, 읽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를 '책문'이라 했다. '나라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사사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했다.

나랏일을 하는 이가 사사로운 사람이 된다면 그의 지식이 출중할지라도 그는 매국의 길을 가는 자이다. 매국은 나라를 팔아먹는 자에게만 씌어주는 '관'이 아니다. 사사로이 나랏일을 하는 이가 매국의 길을 가는 이다. 조선은 이런 매국의 길을 가는 자들을 '책문'을 통하여 걸러 내고자 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의 임금의 물음에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 나랏일을 시작도 하지 않은 이가 말했다. 진정 죽음을 각오한 간언이다.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대는 임금과 신하로 존재하지 않기에 이 묻고 물음이 필요 없는가? 아니다 우리도 묻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에는 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물론 사사로운 말, 나의 이익을 위한 말은 많다. 대학 시절에 배운 공의와 정의, 민주주의의 거창한 명분은 아니더라도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면접관 앞에서 합격을 위하여 소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말해야 한다. '소음' 소리가 아니라, 나라와 이웃을 위하고 이롭게 하는 말을 말이다. 이 말은 '데시벨'이 100 이상이 넘어도 좋다. 좋은 말로 이루어진 '소리'는 '소음'으로 규제받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리는 100데시벨이 넘는 소리일지라도 나라와 이웃과 다른 이를 위한 참된 소리가 흘러 넘쳐야 한다.

술의 폐해를 논하라 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 답했다. 흉년으로 농사 지은 농민마저 먹을 쌀이 없는데 어찌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 술을 빚는단 말인가? 이는 썩은 것이다.

그럼 과연 우리의 시대는 무엇인가? 이 시대 농민을 술 때문에 핍절의 삶을 살지 않는다. 오히려 쌀을 지을 논을 없애라 하기 때문에 죽는다. 조선의 양반보다 더 한 경제논리가 우리의 농민을 죽이고 있다. 사람은 경제논리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쌀로 산다.

'정암'이 시대를 포용하지 못했을까? 시대가 거대한 '정암'을 받아드릴 수 없을까? 훈구는 후자이리라, 아니 중종이 그를 안을 수 없었다. 정암이 너무나 거산이었기에. 하늘과 군주가 하나가 아니라. 하늘과 백성이 하나임을 설파한 정암을 중종이, 훈구세력이 안을 수 있었다고 말하려면 '달'이 '해'보다 더 밝다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암은 사사로이 너의 이익을 위하여 차지한 것에서 내려오라 했다. 누가 이에 동의하여 내려온다는 말인가? 내가 어림없는 소리이다.

이 시대 수구도 중종과 훈구와 같다. 자기 이익에 사로잡힌 일명 '기득권'이다. 그러나 정암 살던 시대의 훈구는 그래도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 시대의 수구는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묻고 싶은 물음이다.

나라의 권력을 군대의 힘을 찬탈한 이를 구국의 영도자로 숭상하는 이들이 바로 수구이다. 이런 이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라 자칭하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 요즘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을 '국가안위'라는 이름으로 정죄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음에 답할 마음의 준비와 그것을 실행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

'교육'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대 이래 이 진리를 부인한 이가 있었을까? 온전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이라면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그저 '글자'를 외우는 일에만 몰두한다. 잘 외운 '글자' 하나 '열 가지 지혜 부럽지 않다'이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하여 '글자', '단어', '공식' 외우기에 몰두한다.

명종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없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 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것 외에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을 '학문'을 이룩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과 결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생각한다.

휴대전화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어처구니! 맷돌을 돌려야 두부와 도토리묵을 해먹을 수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 두부와 도토리묵을 해먹을 수 없다. 우리 이제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 주어서는 안 된다.

이름 있는 대학들은 똑똑한 아이들만을 뽑겠노라 혈안이다. 교육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나라를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보편 인류를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생각이다. 똑똑한 아이 잘 뽑아 대학에 이름 내고, 머리 좋은 애들 뽑아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똑똑한 아이들 뽑아 머리 나쁜 학생으로 만든 장본인들이 그들 아닌가?

2007년 12월 19일 우리는 선택한다. 5년 동안 나랏일을 맡을 자를. 누구를 택할 것인가? 나라를 이끌겠노라 나선 이들에게 <책문>을 통하여 읽고 답해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름 있는 대학과 그 교수들, 그들은 지지하는 수구언론들은 잘도 이런 책을 소개한다.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그들은 똑똑한 아이들 뽑기에 혈안이 되지 말아야 하며, 논조를 바꾸어야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책문>은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왕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 이 시대 왕은 누구인가? 이 물음까지 답하면서 우리는 모두 시대의 물음에 답해야 하며, 답을 얻을 때만이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저 | 소나무 |

덧붙이는 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저 | 소나무 |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소나무, 2004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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