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는 콘크리트 아닌 땅에서만 존재를 알린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등록 2007.07.10 09:47수정 2007.07.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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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 문명의 중심에는 콘크리트가 있다. 콘크리트 없는 도시문명은 설명할 수 없다. 편리함과 견고함, 속도감이다. 콘크리트는 오늘도 현대 문명의 이기로서 열심히 그 탑을 쌓고 있다. 문제는 콘크리트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다고? 그렇다. 60년 이상 농사를 지은 농부라 할지라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씨 뿌리고, 거름 주고, 김을 매도 생명은 잉태되지 않는다. 땅은 그렇지 않다. 땅은 생명이다. 볍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땅에 씨를 뿌림으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땅은 생명의 보고이다. 그러기에 땅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

‘냉이, 제비꽃, 괭이밥, 씀바귀, 마디풀, 방가지똥, 지칭개, 개쑥갓, 황새냉이, 벼룩나물, 명아주, 쑥, 사철쑥, 상치, 꽃마리, 나팔꽃, 사과나무, 함박꽃 나무, 강아지 풀, 녹두’ 따위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땅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잡스러운 풀’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찮음과 밟힘을 당하지만 꿋꿋이 창조 이래로 자기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잡스러운 풀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을 증명한다. 비바람과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자기를 들어낸다. 인간의 숱한 개입이 있을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간다. 얼마나 존재 가치가 없으면 잡스러운 풀이라는 본명을 인간으로부터 하사받았을까?


그러나 화려한, 고귀한 자태의 꽃들은 이제 사람의 손길이 아니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설파하기 위하여 살아나고자 하지만 스스로 생명을 찾거나 유지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자기 생명도 잉태할 수 없는 존재가 어떻게 타인의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가? 그들도 그 옛날에는 생명을 얻고, 주고, 함께 나누는 자들이었지만 인간의 눈으로 즐겁게 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의 노예가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병으로 고통당하는 그들에게 더 예뻐져라 외치고 있다. 그들 삶이 얼마나 힘들까? 언제쯤 그들도 잡스러운 풀처럼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으로 해방될 수 있을까?

고귀한 꽃들이 아름답다는 이유-물론 사람의 눈에 아름다울 뿐-만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잡초는 인간에게 아무 필요 없는, 피해만 끼치는 존재일지라도 그들도 생명이며, 인간에게 생명을 선물한다. 황대권은 공간적 닫힌 공간에서 타인에게 생명을 선물하는 잡초를 경험함으로써 공간적 열린 공간에 사는 이들이 콘크리트라는 올무에 걸려 신음하고 있을 때에 그는 생명을 경험한다. 곧 자유이다. 육체의 억압을 넘어선 정신과 마음과 인간 자체의 자유를 말이다. 복된 일이다. 마음대로 바깥세상을 다닐 수 있는 신세들이지만 이 시대 우리는 어쩌면 가장 불행한 사람들 아닌가? 자유가 없다.

<야생초 편지>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자유와 진정한 가치를 상실한 우리네 인생을 말한다. 자본의 노예, 성공의 노예, 건강의 노예, 공부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이다. 육체만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고 참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잡스러운 풀이라 교도소 내에서조차 귀찮은 존재인 ‘잡초.’ 아니다. 이해인 수녀님 말씀처럼 ‘들에서 생명을 뿜는 풀.’ 왜 사람들은 야생초를 귀찮은 천덕구니로 생각할까? 그냥 뽑아 내면 다 끝나는 것,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더럽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돈이 된다면, 이익이 된다면 잡초 인생에서 벗어나 고귀한 꽃으로 신분 상승을 얻을 수 있다. 신분 상승의 주체가 잡초 자신이 아니라 인간임이 또한 불행의 씨앗이다. 황대권이 건강한 정신을 가졌기에 세속 인간이 범한 오만함의 극치를 범하지 않고 야생초들에게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우리보다 나은 이유이다.

야생초와 황대권은 옥중동지가 된다. 동지란 이념과 신념, 사상, 종교인 목적을 위하여 생명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잡스러운 풀이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과 동지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이 비난할지라도 그들은 동지가 되었다. 생명을 서로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명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 나은 세상이다. 살기에 바빠, 이기적 삶이 바빠 다른 이들과 생명을 공유하지 못하는 세상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사람들을 말한다. 교도소에 갇힌 놈이 무슨 생명을 논하고, 인간을 논할 수 있느냐고, 이미 버림받은 인생이 고상한 척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나쁜 놈으로 감옥에 갇힌 자가 아니라 고상하고 의로운 인간이지만 정말 그럴까? 자본에 사로잡힌 인생들이 잡스러운 풀이기에 아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뽑고, 타오르는 태양 앞에 말라가는 잡스러운 풀을 보면서 웃음 짓는 인생들 아닌가? 이글거리는 땅바닥에 던져버린 잡초를 본 적이 있는가? 타들어가는 그네들을 보면서 사실 기분 좋은 일들이 더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익을 가져다는 곡식에 더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황대권은 닫힌 곳에 살았다. 열린 공간에 사는 여동생과 닫힌 공간에 사는 자신 사이에 오간 편지를 통하여 자신은 닫힌 공간에 살았지만 결코 죽임의 자리에 있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생명을 논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전쟁을 하는 이들도 생명을 말한다. 생명을 죽이는 폭격을 하면서도 생명을 말한다.


죽임의 잔치가 벌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우리는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전쟁의 포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건지고 연장하는 일에 거부되고 있으며, 같은 땅과 같은 핏줄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가치를 달리 취급받고 있다. 이것이 죽임의 잔치가 아닌가? 생명의 가치가 한없이 타락했다. 타락한 생명의 가치를 우리는 무엇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잡스러움으로 비난받는 잡초, 아니 야생초를 통하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죽임의 잔치에 참가하면서 우리는 살림의 잔치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황대권은 닫힌 공간에서 살면서 야생초를 통하여 죽임이 아니라 생명, 살림의 공간에 살았다. 그가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수많은 들풀을 그냥 우리의 이익에 규정하여 필요 없는 것으로 정죄하였다.

국가 권력은 그들의 권력에 도전한 황대권을 닫힌 공간으로 인도하였지만 그는 생명과 살림의 공간에서 진정한 삶의 목적을 알고 살았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생명을 얻었고 자유를 누렸다.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자유한 자라 말하고 있지만 진정한 자유를 우리는 자본과 건강과 성공과 학벌과 이기심에 사로잡혔다. 가장 억압의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갇힌 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범죄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말하는 것이 자유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야생초 편지는 공간과 육체의 갇힘이 결코 정신을 갇히게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갇힌 자들이다. 정신과 문명이 이미 인간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를 통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황대권이 감옥에서 코카콜라 병에서 청개구리를 키웠다. 컵라면 용기에 잡초를 심었다. 코카콜라 병과 컵라면 용기는 문명의 이기이며, 또한 자연을 해하는 일선에 자리 잡은 자들이다. 그들이 황대권에게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우리 생명의 잔치를 한 번 꿈꾸어 보자! 살리는 일은 한 번 해 보자! 인간의 이익에 눈멀지 말고 우리 한 번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보자! 황대권이 잡스러운 풀과 생명을 나누는 동지가 되었다는 데 왜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생명을 함께 나누는 동지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덧붙이는 글 | 5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좋은 책이라 소개합니다.

덧붙이는 글 5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좋은 책이라 소개합니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 2012


#야생초 편지 #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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