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이란 희망을 발견하다

다시 보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흑백과 컬러 영상의 치밀한 결합

07.07.10 21:16최종업데이트07.07.11 14:28
원고료로 응원
▲ 영화 포스터
ⓒ 대우시네마
퍼스트 시퀀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0년대의 어느 날이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대형 깃발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짓과 몸짓은 엉성한 듯하면서도 치밀하고 깔밋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거리마다 연도의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대학 앞을 지날 때였다.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 만세'라는 플래카드가 붉은 글씨로 그들을 환영했다. 그때,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그저 감동이 밀려왔을 뿐이다. 그리고 퍼스트 시퀀스의 파이널 신은 어느 노동자의 분신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이중의 이야기 구조가 흑백과 컬러로 교묘하게 결합한 영화였다. 컬러 영상이 현재의 장면이라면 흑백 영상은 과거의 장면이었다. 컬러 영상이 지식인 영수(문성근 분)의 이야기라면, 흑백 영상은 노동자 전태일(홍경인 분)의 삶이었다.

두 시퀀스는 변증법적으로 결합하였다가 변증법적으로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의 이중 구조가 때론 관객들을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편집 기법의 부드러움으로 인해 충분한 메시지를 던진 영화이기도 했다.

컬러 영상의 시작은 지식인 영수와 노동자 정순의 생활로 시작된다. 영수는 항상 전태일에 대해 원죄 의식을 가진 인텔리겐차였다. 그는 늘 전태일의 생활을 제대로 닮지도 못했고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원죄의식을 노동자인 아내 정순을 통해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한다. 아내는 현재 임신 중이지만 노동조합 운동에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래서 컬러 영상의 제1 구성점은 정순의 노조 설립투쟁이 된다.

흑백 영상, 과거의 기록이자 전태일에 관한 이야기

ⓒ 대우시네마
흑백 영상은 과거의 기록이자 전태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흑백 영상의 시작점은 전태일이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만 하던 전태일이 어느 날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 흑백 영상의 제1 구성점이 된다. 흑백 영상의 제1 구성점은 전태일의 사유방식이 서서히 변화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다시 영상은 컬러로 전환하여 영수가 전태일에 대한 기록을 심도 있게 다루는 장면을 비추게 된다. 그는 전태일 어머니의 회상을 듣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의 증언도 수집한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바로 1975년에 일어난 서울대생 김상진의 할복 사건이다. 이 장면을 통해 연출자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관객들은 이런 장치에 의해 당시의 시대상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흑백으로 치환된 화면. 바보회, 삼동회 등을 조직한 전태일은 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전개한다. 이제 그의 사유는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는 열심히 일만 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이런 낙천적인 사고는 현실에 번번이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컬러 영상처럼 하나의 에피소드가 잔잔하게 등장한다. 공장에서 쫓겨나 광산으로 밀려난 전태일의 고뇌와 결단이 비라는 장치를 통해 가슴 깊숙이 전달된다. 그가 구덩이 안에 드러누워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는 장면은 그의 고뇌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소도구였다.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전태일. 그는 광산을 뒤로 한 채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제 영화는 결말을 향해 치닫게 된다. 컬러 영상의 제 2구성점이 시작된다. 영수가 수배를 받아 쫓기게 되고, 그의 아내 정순은 노조 설립 투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예정된 출산일. 영수는 쫓기는 과정에서 전태일의 분신을 치밀하게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흑백 영상의 결말도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전태일이 중심이 된 삼동회가 시장바닥에서 시위를 하는 장면은 흑백 영상의 제2 구성점이자 절정에 해당되는 시퀀스이다. 이 절정의 마무리는 전태일의 분신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손에 들고 처절하게 외치는 그의 모습이 불꽃과 함께 타오르는 장면은 전율과 소름, 그리고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수는 이제 결말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는 전태일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아내 정순의 임신한 모습을 지켜본다. 그 처연한 모습에서 그는 죽음을 넘어선 생명이라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전태일의 죽음을 남겨두고 나는 정순을 보고 싶어했다. 뱃속의 아이. 나는 전태일과 함께 죽음의 그 깊은 어둠을 통과하기 위해서 나 자신 정순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희망을. 새 생명은 분명 그 어둠 너머에 있을 것이다.'

변증법적 결합, 지금 봐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 대우시네마
영화의 라스트신은 다음과 같다. 아이를 밴 정순의 모습과 전태일의 분신장면이 디졸브 되면서 시장골목을 지나가는 또 다른 전태일이 등장하는 것이다. 라스트신의 의도는 생명과 죽음의 결합이었다. 영수가 정순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것은 새 생명의 잉태였다. 전태일은 그 새 생명처럼 늘 살아 있는 희망의 모습인 것이다.

청계천이 복원되는 날, 전태일 동상 설치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단다. 집값이 올라가는 것을 기대한 주민들이 동상 설치를 반대했다지. 이유는 단 하나. 천박한 노동자의 동상이 세워지면 동네 이미지가 나빠진 대나 어쩐다나. 허허.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편견이랄 밖에.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는 풍조, 기술직을 하대하고 사무직을 중시하는 풍조는 이렇게 무섭도록 백성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편집기법이 너무 돋보였던 영화였다. 빙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상시키는 흑백 영상과 컬러 영상의 변증법적인 결합은 지금 봐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아름다운 고전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오래도록 말이다.

ⓒ 대우시네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7-10 21:1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변증법적 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