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에 들어있는 '절대주의 논리 지도'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과연 언제까지 어글리 코리안이란 비난을 들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런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에 의하면 그 해답은 바로 '상대주의'에 있다. 잘 알다시피 상대주의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흔히 암흑기로 일컫는 중세의 사상적 토대가 절대주의라면 중세와 대별되는 현대의 특징은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도 상대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다.
상대주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릴레오의 지동설, 인본주의가 싹튼 르네상스, '국왕은 지배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아낸 영국의 명예혁명, 자유ㆍ평등ㆍ박애의 기치 아래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출범시킨 프랑스 혁명, 노예 해방을 이루어낸 미국의 시민전쟁(남북전쟁),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선언한 천부인권설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맥이 닿아 있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의 상대주의는 수없이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조금씩 발전해온 것이다. 독일의 합리주의,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상대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단지 절대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 노력했을 뿐. 지금 진보 진영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따라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성숙, 발전하기 위해선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이행하려는 노력에 좀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정기효의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은 바로 그에 관한 책이다. 파리 유학을 경험한 저자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복잡하게 얽힌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는 동안 독자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나 시집처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논리적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은 듯한 포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를 접하고 가장 먼저 손이 갔던 책도 바로 이 책이었다. 이번 사태를 기독교인들만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우월의식, 민족주의 같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상대주의 정신의 결여는 언제 어디서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되겠다. 그렇다고 이번에 피랍된 기독교인들에게 상대주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얘긴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인도주의 정신에 충실했을 뿐이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미국과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권력을 행사하는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김진호, 백찬홍, 최형묵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 참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몇 걸음 더 나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하루빨리 피랍된 인질들이 무사귀환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정기효,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에코리브르, 2006, 341쪽. 가격 13500원.
한국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정기효 지음,
에코리브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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