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부르는 박근혜의 '아버지 콤플렉스'

김덕룡은 왜 그를 등지고 이명박에게 갔나

등록 2007.07.27 10:59수정 2007.07.27 11:54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4월 18일 김덕룡 의원 주최 재외국민 참정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다른 국회의원들은 인사말을 마친뒤 바로 자리를 떴지만, 박근혜 의원은 인사말을 마친 뒤에도 남아 김 의원의 발제를 듣고 있다.
▲지난 4월 18일 김덕룡 의원 주최 재외국민 참정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다른 국회의원들은 인사말을 마친뒤 바로 자리를 떴지만, 박근혜 의원은 인사말을 마친 뒤에도 남아 김 의원의 발제를 듣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시간을 잠시 지난 4월 18일로 돌려보자. 이날 오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와 이혜훈·유승민 등 '친박' 계열 의원 10여 명은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으로 총 출동했다. 김덕룡 의원이 주최한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박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당내 중진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박 후보는 민주계 출신 5선 김덕룡 의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박 후보는 가운데 좌석 맨 앞줄에 홀로 앉아 김 의원의 발제를 끝까지 청취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박 후보를 앞에 두고 작심한 듯 말했다.

"우리는 1967년 대통령 선거와 1971년 총선에서 해외일시 체류자에게 투표권을 준 적이 있는데 유신체제 때 중단됐다. 유신체제가 박탈한 헌법적 권리를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박 후보가 많은 공을 들인 김 의원은 지난 23일 이 전 시장 지지를 선언했다. 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 검증청문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고, 유신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 지 나흘 만이었다.

김덕룡은 왜 박근혜를 등졌나

현재 김 의원은 이 후보 캠프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후보에게는 뼈아픈 상황이다. 게다가 김 의원이 호남에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걸 고려하면 그 아픔은 더욱 크다.

그러면 줄곧 중립을 표방해온 김 의원은 왜 박 후보에게 등을 돌렸을까. 한 측근은 "박 후보가 5·16을 구국혁명이라고 공언한 데 대해 김 의원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아마 그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 의원 본인도 25일 MBN <정치&이슈>에 출연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해서 쿠데타 자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박 전 대표의 청문회 발언을 정면 비판했다. 결국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이 김 의원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는 진단은 무리가 아니다.

이처럼 박 후보에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인식은 양날의 칼이다.


한나라당은 19일 백범기념관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대한 대선 예비후보 검증청문회를 열어 그간 제기돼온 각종 의혹을 검증했다. 박근혜 후보가 19일 오전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19일 백범기념관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대한 대선 예비후보 검증청문회를 열어 그간 제기돼온 각종 의혹을 검증했다. 박근혜 후보가 19일 오전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40대 이상의 유권자들은 박근혜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이들을 버팀목으로 박 후보는 현 정치인 중 최고의 대중 동원력을 자랑하고 있다. 박 후보가 선거 유세장에 나타나면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이런 힘이 97년 정계에 입문한 박 후보를 10년 만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만들었다.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부모님의 국정 운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국가 운영에 대한 감각을 익"히며 10대를 보냈다고 썼다.

그리고 "전자산업이야말로 무공해 산업이고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고 판단해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다. 이 시간은 더욱 아버지 중심으로 세상을 살던 시기였다. 이처럼 아버지 박정희는 박근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딸 박근혜는 박정희를 삶 깊숙이 받아들였다.

박 후보에게 박정희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다. 그에게 아버지는 "국가와 세계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해준 자상한 선배이자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다.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기억은 양날의 칼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책 <사람 vs 사람>에서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신화적 부성 원형으로서 박정희'를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또 정씨는 "박정희처럼 거의 신격화된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후엔 엄마 대신 그 아버지의 반려자 역할까지 했던 박근혜가 부성콤플렉스에서 자유롭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박 후보는 아버지에 관한 세상의 평가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긍정적인 평가 외에 다른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23일 오전 무죄를 선고하자 유가족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23일 오전 무죄를 선고하자 유가족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박 후보는 아버지 사망 후 달라진 세상의 평가를 접하며 "때로는 고문 받는 느낌이었고 피가 역류하는 듯한 울분을 느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냐'고 말하는 걸 보고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고 적었다.

그래서 박 후보가 청와대를 떠나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일이 부모에 대한 미화 작업이었다. 물론 자식의 처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조국의 등불'로 미화하고 월간지까지 발행하며 치적을 적극 내세우는 건 최고 권력자에 오르려는 공인의 자세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박 후보는 최근 "아버지 시대 본의 아니게 피해 당하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또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검증청문회에서는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며 변함없이 아버지 박정희를 적극 옹호했다.

안병욱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박 후보가) 그런 말하는 걸 보면 대통령 할 생각을 포기한 사람 같다"며 "5·16을 혁명이라 부르던 시절은 박 정권밖에 없었고, 그 때도 권력의 강압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는 "(5·16과 유신에 대해) 박 후보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면죄부를 받아 공직에 나서는 게 순리"라고 덧붙였다.

왜 박정희가 쌓은 원망·분노·복수심에 눈 감나

박 후보는 최근 발간한 자서전에 90년 9월 2일 쓴 자신의 일기를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 사망 후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새로운 권력을 좇아 떠난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흉상.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흉상. 오마이뉴스 권우성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클수록 그 칼은 더욱 예리하다.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사람을 크게 해칠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권력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만 정작 그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이다. 깊은 철학을 지니고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의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그 칼을 마구 휘둘러서 쌓이는 원망, 분노, 복수심 등은 되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는 게 역사학계의 평가다. 박 후보는 자신이 쓴 위의 '권력론'으로 아버지 시대를 읽지 못한다. 어쩌면 위의 글은 박 후보가 자신의 역사인식을 돌아보는 데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 때문에 '비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김덕룡 의원만이 아닐 것이다. 박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의 칼을 휘둘러 쌓은 원망, 분노, 복수심" 등을 올곧게 응시하고 평가할 수 있을 때, 그의 목을 조르는 비호감도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5.16은 4.19 계승 - 유신 없으면 공산당 밥 됐을 것"
박근혜 후보의 5.16과 유신 관련 발언록

▲5·16 쿠데타 관련 발언 - "5·16은 4·19 뜻 계승"

"4·19의거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희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89년 5월 MBC TV 인터뷰에서

"5월 16일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드디어 궐기했다, 이는 불안과 초조와 기아선상을 헤매며 안정을 갈구하던 국민의 열망을 그대로 무심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었다" - 1990년 영화 <조국의 등불>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 -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청문회

▲유신 관련 발언록 - "유신 없으면 공산당 밥 됐을 것"

"사람이 호랑이를 잡으면 건전한 스포츠이고, 호랑이가 사람을 잡으면 잔학성이라고 한다. 사람의 판단이란 자고로 이러하다. 공정하면 얼마나 공정할까?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되었을지 모른다." - 1981년 10월 28일 일기

"의식의 근대화도 경제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발전도 발전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유신을 통해 능률 극대화로 일한 것도 그 시기를 통해 급격히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 1982년 1월 5일 일기

"유신과 자주국방은 떼래야 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유신을 통해 북한보다 10년이나 뒤진 우리나라의 병기 생산을 독자적으로 생산해서 자주국방을 달성하려 했다. 그런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려면 강력한 지도체제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유신을 통해 그것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 - 89년 5월 MBC TV 인터뷰에서

"5·16 혁명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필수적인 구국의 깃발이었듯, 유신도 시대가 요구하는 국토방위를 위한 소명인 것을 후일 역사가 증언할 것이다." - 1990년 영화 <조국의 등불>

"유신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청문회 / 박상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심형래 감독 '디 워' 역주행, 외신이 내놓은 분석 심형래 감독 '디 워' 역주행, 외신이 내놓은 분석
  2. 2 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3. 3 이교옥 독립운동가의 딸이었으나 학교도 못 다닌 나의 엄마 이교옥 독립운동가의 딸이었으나 학교도 못 다닌 나의 엄마
  4. 4 누드 모델 가방 속에서 가운보다 눈에 띄는 것 누드 모델 가방 속에서 가운보다 눈에 띄는 것
  5. 5 0.09%P 모자란 김민석, 낙선 위기 김용... 마지막 관전 포인트 0.09%P 모자란 김민석, 낙선 위기 김용... 마지막 관전 포인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