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를 읽고 또 읽으시던 어머니 전희식
'어머님 전상서'에도 쓴 것처럼 어머님이 하시는 모든 말들이 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86년 전부터 그 말을 하도록 준비되어 온 것인데 난들 어쩌랴. 이것은 어설픈 위안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 말과 그 행동을 안 했으면 어머니는 저 모습으로 지금 여기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과 말은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최고이자 최선의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서 그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것이 순서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나중의 일이다.
어머니는 '어머님 전상서'를 며칠 뒤에 읽으셨다. 어머니 개인 보물 창고인 베갯잇 속에 내 편지를 넣어두고 여러 번 꺼내 읽으시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글을 써서 드렸더니 펼쳐보고는 대뜸 "체! 누가 저 글공부 마이 했다칵까이!"하고는 휙 집어던졌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성숙하지 못한 내 감정표현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머니. 자꾸 소리 지르고 화내고 그러지 마세요. 저도 힘들어요."
그날은 하루종일 어머니가 잔소리와 참견을 하시는 날이었다. 텃밭에 오이가 자라서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말뚝을 박고 줄을 치는데 마루에 있던 어머니가 "찌랄하고. 백찌 줄을 쳐 길을 막으믄 밭에는 어찌 댕길락꼬!" 하면서 혀를 끌끌 차셨다.
부엌에 불을 때려고 장작을 들고 들어가니까 "아이고오. 하는 짓은! 불살개부터 갖고 들어가야지 장작에 무슨 재주로 불을 붙일락꼬!" 하셨다. 오줌 누신 지가 서너 시간 된 듯하여 "어머니 오줌 좀 누세요" 했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는 "안 누르분데 어찌 누란 말이고! 저기 오줌 누는 거 꺼정 이래라 저래라 가이 하고 있어!"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눈에 안 보이면 어디 갔다 왔느냐고 닦달이고, 눈앞에 보이면 하나에서 열까지 잔소리였다. 그래서 쪽지를 써서 드렸던 것인데 그게 더 어머니 기분을 악화시켜버린 것이다. 쪽지에 담긴 내 성급한 감정표현을 후회할 때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몇 연도였을까? 어머니랑 단둘이 단칸방에 사는데 한 번은 밤늦게 우리 집에 삼삼오오 남녀 예닐곱 명이 모여들었다. 나는 천정의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 불을 켠 다음 창문은 두꺼운 검은 담요로 가려서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했다.
우리는 비밀 문건들을 꺼내 놓고 새벽까지 목소리를 낮춰 논쟁을 하였다. 어머니는 방구석에 주무시지도 못하고 새우처럼 등을 웅크리고 있는데 우리는 어머니에게 어서 주무시라고 건조한 말마디만 던지고 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음날 조직원들은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길을 두리번대며 한 사람씩 빠져나갔다. 어머니가 나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옛날 뿔갱이들이 다 너긋들처럼 그랬다. 니 에비도 그 지랄하다가 오래 몬 살았다. 너 자꾸 그라믄 내가 죽어삘란다."
어머니보다 조직이 더 중한 나는 건성으로 어머니를 달래고 다음 과업(?)을 위해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그날 철도에 몸을 던지시러 보따리 하나 들고 백운역 언덕길을 오르셨다.
이번에 쓴 '어머님 전상서'를 어머니가 집어던지지 않고 몇 번씩이나 꺼내 읽으시는 것은 글이 이전에 쓴 쪽지랑 다른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잔소리하고 참견하는 것이 어머님 본래의 모습이 아닌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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