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구불구불 옛길을 따라 천천히 가고 싶었다. 동해바다를 처음 본 것은 82년 여름이었다. 한계령이나 미시령에 서면 날씨가 좋은 날엔 동해바다가 보였다.
"와, 저기 바다가 있다!"
그리고 몇차례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대관령을 넘어 숨이 막힐 것 같은 일상의 탈출구로 동해바다를 찾아가곤 했었다. 어느 해 겨울, 미시령에서 폭설을 만나기도 했다. 더이상 오를 수 없어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나무마다 피어있던 눈꽃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김민수
현리에서 한계령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초입에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는 지난 해 수해로 인해 파손된 도로였다. 그러나 이미 차를 돌릴 수 없을 상황까지 이르렀을 때에는 포장도로보다 비포장도로가 더 많았다. 이번 장마철에 폭우라도 쏟아졌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무너져 내린 산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로를 볼 때마다 뇌리에 스친다.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양희은씨가 여기에 오면 통곡을 하겠다."
지난해 폭우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 곳을 볼 때마다 그 말은 고장 난 레코드판이 튀면서 같은 구역을 리플레이 하듯 튀어나왔다.

김민수
은근히 부아도 났다. 이미 물 건너 간 이야기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들도 이렇게 거의 무방비상태로 방치하게 된 원인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평창의 속내는 볼 수 없었지만 70년대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한 차례 불고 지나간 듯 번듯한 건물들과 깨끗한 지붕들은 지난해 수해로 무너진 그 곳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비포장도로와 공사구간을 지나 한계령휴게소에 다다랐다. 인제를 지나 한계령으로 올라왔다면 그 길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한계령휴게소근처도 수해복구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악산은 그 옛날 바라보던 산과 다르지 않았다.

김민수
간간히 내리는 비와 바람은 온 산을 하얀 구름으로 감추어버렸다. 바람의 흐름에 따라 간간히 드러나는 산, 그들은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다가왔다. 흑백과 컬러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들은 담백했다.
얼마 전 프린터 카트리지가 다 되어 교환을 했다. 생생한 컬러사진을 출력할 일이 있었는데 컬러카트리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런데 카트리지를 갈아도 여전히 사진이 선명하게 나오질 않는다. 이유는 검정색 카트리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검정색 카트리지도 교환 하고나서야 선명한 컬러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검은색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검은 색이 단지 검은 색만이 아니라 다른 색깔들을 선명하게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검은 색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마라'고 하는 듯했다. 수묵화, 흰색 화선지에 검은 먹물 하나만으로 풍광을 담아내는 기법이야말로 가장 진보된 화법이 아닐까?

김민수
그날, 한계령은 빛바랜 사진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이제 동해바다를 찾아갈 때에는 구불구불 옛 길을 돌고 돌아 찾아가리라고 다짐을 한다. 미시령도 좋고 한계령도 좋고, 진부령도 좋고 대관령도 좋다. 구비 구비 언덕을 넘고 재를 넘고 령을 넘으며 그 옛날 그 곳에 함께 있었던 벗들도 생각하고, 추억도 생각하며 조금 더딘 여행길을 갈 것이다. 여행이란 단지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담아오는 걸음걸이가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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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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