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만큼이나 단기간에 선교강국으로까지 떠올랐던 사례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매우 드문 것이다. 하지만 더 놀랍게도 한국교회는 대체로 '예수의 역사적 삶'을 따른다기보다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고서 이를 전파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이번 아프간 인질 사건을 통해 한국교회는 비기독교 지역에 대한 선교정책을 다소 수정할 가능성만큼은 높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수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지점은 한국 교회가 극렬하게 지니고 있는 배타적 교리의 고수와 그 확장일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만일 기존 기독교가 계속적으로 배타적인 교리를 유지하면서 선교정책을 펼 경우 (그 선교정책에 인도주의 활동이라는 당근이 있든 없든 간에) 그 같은 기독교의 확장은 궁극적으로는 '배타적인 기독교 제국주의'를 고수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갈등 및 충돌이 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나로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번 아프간에서 배형규 목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에는 기존 기독교의 배타주의 입장도 한 몫 거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기존 기독교가 아무 책임도 없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기독교 선교에 있어선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리라. 물론 일차적인 책임으로는 생명을 살해한 자들에게 있겠지만, 이미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국제 분쟁 지역인 아프간으로 들어갈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잖은가.
이에 대해 강경한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선교에는 어쩔 수 없이 순교도 따른다고. 즉, 결국은 그 같은 죽음의 위험성보다는 교리의 수호와 전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체적인 기존 기독교의 입장이다. 이 입장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동안 열혈 신앙을 갖고서 세계 곳곳의 오지들이나 분쟁 지역들에도 죽음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선교사와 선교단체들을 보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같은 배타적 교리의 폐지와 선교신학의 근원적 수정이 없는 한, 앞으로도 여전히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같은 기독교야말로 사람을 살린다기보다 오히려 죽일 수도 있는 기독교다. 지구촌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이제 기독교도 공격적 선교정책과 배타주의 입장만큼은 버릴 때도 됐잖은가!
한국교회, 누가 누구를 선교하는가
전도나 선교는 교리의 주입과 확장이 아니다. 말그대로 진리로서의 도(道)를 전한다는 것은 세상 한 가운데서 예수의 삶을 본받아서 진리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겠다는 의미이다. 신앙인에게 있어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점에 대해 그것을 시인하거나 인정한다는 식의 그런 소박한 의미가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전적인 헌신이요 그것은 결국 예수의 삶을 따른다는 의미다.
내가 볼 때 선교랍시고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교회야말로 전혀 예수의 삶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은 선교의 주체라기보다 선교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한국교회만큼이나 단기간에 선교강국으로까지 떠올랐던 사례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매우 드문 것이다. 하지만 더 놀랍게도 한국교회는 대체로 '예수의 역사적 삶'을 따른다기보다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고서 이를 전파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삶을 사는 것과 기독교 교리를 전하고 주입시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신자화'와 '복음화'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 정말로 사람을 더 이상 죽이질 않고 더불어의 생명들을 살리고자 하는 기독교가 되고자 한다면, 기독교 자체부터 환골탈태할 각오로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선교정책의 수정 정도가 아니라 더 크게는 이를 넘어서 기독교의 새로운 변혁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의 폐지와 선교신학의 수정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천년 전 당시 예수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존의 유대교야말로 오히려 하나님 나라 운동의 선교 대상이었듯이 이제 앞으로는 기존 기독교를 오히려 선교 대상으로서 삼아서 보다 적극적으로 변혁할 필요가 있다. 어떻든 적어도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서 새롭게 기독운동 진용을 갖출 수 있을 때, 한국 기독교도 비로소 세계 열방에 빛과 소금이 되는 진보의 흐름에 그나마 동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언론 당당뉴스(http://dangdang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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