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선거하는데 병실에 누워 있을 수만 있나요?"

한센요양시설 산청성심원의 마을 이장선거풍경

등록 2007.07.28 19:20수정 2007.07.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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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시작 전부터 길게 줄을 선 마을주민들이 투표시작과 동시에 한꺼번에 입장해 길게 줄을 서 본인확인을 하고 있다.
▲투표시작 전부터 길게 줄을 선 마을주민들이 투표시작과 동시에 한꺼번에 입장해 길게 줄을 서 본인확인을 하고 있다. 김종신
"우리 마을의 어른을 뽑는데 병실에 누워만 있을 수 있나요?"

27일 마을 이장 선거투표소를 나온 대구에서 입원 중이던 67세의 지체 장애인 구○○ 할머니.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병원에서 1박2일의 외박을 허락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연일 불덩이처럼 토해 내는 땡볕 더위 속에 지친 국민들에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서로 죽자 살자 싸우는 모습을 강요하며 짜증 곱빼기로 불쾌지수가 높은 요즘. 당선자도 낙선자도 서로 손을 맞잡고 열심히 마을을 위해 노력하자고 다독여 주는 곳이 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위치한 한센인 요양시설인 성심원(원장 김기덕 고르넬리오 수사) 마을에 27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투표권을 가진 한센인 169명 중 멀리 병원입원 중이거나 딸네에 가서 참여 못한 7명을 제외한 전부가 참여한 가운데 선거가 열렸다.

3년 전 마을 이장 선거에서 불과 2표차로 낙선한 비교적 젊은 후보인 57살의 김○○후보와 반장만 내리 8년을 맡아 오다 이번 출마를 위해 얼마 전 사직한 72살의 황○○ 후보가 그 흔한 사자후의 연설도 없는 선거에 출마해 3년 임기의 이장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었다.

두 후보는 마을 내 노인전문빌라 같은 동에서 아래층 위층에 산다. 성심원의 생활인 평균 연령은 75세로 우리나라 고령화 사회의 전형 그대로다. 반백년의 시간 동안 한때 한센이란 아픔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육지 속의 섬과 같았던 성심원에 터전을 잡아 살아온 마을주민들에게는 이장 선거는 때로는 한 맺힌 자신의 처지를 대변할 그래서 더 간절히 원하는 자리인지 모른다.

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입후보 등록을 마감하고 기호추첨을 통해 다음날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짧지만 긴 선거운동을 마친 두 후보. 비록 대통령 선거처럼 뜨거운 유세도, 텔레비전 토론도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서로의 속내를 잘 알고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는 처지라 선거운동을 위한 가가호호 방문을 금지했다.


이번 선거를 위해 마을 이장 선거관리위윈회도 구성하고 선거명부도 새로 작성하며 마을 곳곳에 입후보자 공고가 나붙었다. 산청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함과 기표대도 빌려 어느 선거 못지않은 투표소를 꾸몄다.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마을주민들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마을주민들 김종신
12시 정각, 투표를 마무리하고 개표작업에 들어간 마을 선관위는 마을 선거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심원 직원들로 구성된 선거진행요원들이 후보별로 여러 번 표를 세고 검표도 진행하며 완료했다. 두 후보를 개표소로 부른 선관위원장을 맡은 김 원장이 두 후보에게 선거결과에 승복하느냐는 다짐을 재차 확인한 뒤 개표결과를 발표했다.


전화와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만나 인사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한 이날 선거에서 기호 2번의 김○○후보가 유효 투표 162표 중 77표를 얻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개표결과를 듣기 위해 앉아있던 두 후보는 당선자와 낙선자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고 축하와 위로의 악수를 나눴다.

3년 전 2표차이로 당선의 영광을 안은 현직 이장이 당선자와 낙선자 그리고 선거관리 종사자들에게 점심을 한턱 쏘며 다음달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신임 이장과 마을의 발전을 빌었다.

이날 개표가 끝난 뒤 마을 전체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김 원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 마을 동민 여러분 이번 마을 대표선거에 기호 2번 김○○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개표결과를 기다리는 두 후보.
▲개표결과를 기다리는 두 후보. 김종신
#성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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