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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 베어벡' 감독은 잘못이 없다

핌 베어벡 감독의 자진사퇴 소식을 듣고

07.07.29 11:02최종업데이트07.07.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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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6시도 되지 않아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뻑적지근하고 무겁다. 그러고 보니 열대야 현상 때문에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머리도 개운하지 못하다. 몸은 땀으로 끈적끈적하다.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낸다. 거푸 2잔을 들이켰다. 그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다. 나는 버릇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베어벡 감독이 자진사퇴를 했다는 기사가 떴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승부차기로 3위를 한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가? 5경기에서 3골 밖에 득점하지 못한 것이 그만의 책임인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일본 등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3골 밖에 실점하지 않은 부분은 왜 칭찬하지 않는가?어제 일본과의 경기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10명으로 싸웠다. 선수만 퇴장을 당한 게 아니다. 감독과 코치 두 명마저 퇴장 당했다. 한 경기에서 4명이 무더기로 퇴장을 당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홍명보 코치는 관중석에 앉아서 무전기로 작전지시를 해야만 했다. 정몽준 회장도 주심 판정이 못마땅했던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부터 나는 극도의 긴장감에 빠져들었다. 졸인 가슴을 내내 움켜쥐어야 했다. 한국은 체력이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 있었다. 이란과 이라크 전에서 체력을 너무 소진했다. 한국 선수들은 일본의 파상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이운재, 오범석, 김치우의 육탄방어에 일본의 공격은 매번 무위로 끝났다. 한국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이역만리 떨어진 내 귀에까지 들렸다. 축구장은 말 그대로 처절한 전투였다.후반전이 끝났다. 이제 연장전이다. 아, 한국선수들은 30분을 더 뛰어야 한다. 나는 갑자기 선수들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감독도 코치도 없는 선수들은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기습 한 방으로 일본을 꺾어야 한다. 홍명보 코치가 주심과 아시아협회축구관계자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격려한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아프던지 나는 눈시울을 붉혔다.이천수도 몸의 좋지 않은 모양이다. 자꾸만 허리를 만진다. 공격수 조재진이 좀 더 열심히 뛰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근호가 악착같이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빠른 스피드와 일본 문전에서의 볼 배급이 한국선수들에게 결정적인 슈팅찬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오범석의 멋진 태클과 일본선수의 결정적인 슛을 막아낸 김치우의 투혼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연장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한국선수들이여, 조금만 버텨다오. 골을 넣지 않아도 좋다. 승부차기까지만 가면 한국이 승리한다. 일본의 오심 감독은 승부차기에 유독 약하다. 오죽했으면 일본이 호주와 8강전을 승부차기로 가릴 때 오심감독은 심장이 약하다며 보지 않았을까. 감독이 이러할진대 선수들은 말해 뭐하겠는가.드디어 연장전이 끝났다. 이제 승부차기다. 골라인과 페널티 지점과의 거리는 불과 10.97m다. 공이 골라인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0.4초다.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읽고 몸을 날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0.6초다. 0.4초 대 0.6초의 숨 막히는 접전, 그 접전의 순간이 펼쳐진다.승부차기는 잔인하다. 고문과도 같은 것이다. 아니 고문보다도 더욱 혹독하다. 구경하는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선수들은 오죽하겠는가. 선수들이 페널티지점에 서 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저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그 걸 읽을 수 있었다. 골을 성공시킨 선수는 하나같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역시 이운재는 강했다. 그는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가 찬 볼을 보기 좋게 막아냈다. 그는 날렵하게 몸을 날리면서 두 손으로 일본 선수가 찬 공을 쳐냈다. 그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공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자 두 손으로 잽싸게 공을 잡는가 싶더니 일본진영을 향해 힘차게 차내는 것이었다. 한국선수들이 일제히 그에게 몰려들고 이운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지금 내 앞에는 벽안의 외국인이 있다. 헝클어진 머리, 파란 눈, 꽉 다문 입술…. 한국대표팀 '핌 베어벡' 감독이다. 그가 경기가 끝난 직후 자진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는 한국 생활이 행복했고, 한국 선수들을 사랑했고, 한국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지도자 생활 중 한국이 가장 좋았다고도 했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걸까? 가장 친한 친구를 멀리 보내는 것만 같다. 그가 한국 선수를 그렇게 사랑했듯 나 또한 그를 사랑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겸손했고 성실했다. 국가대표팀의 부진을 그는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오범석, 이근호, 김치우 같은 걸출한 인재를 발굴했다. 한국축구는 지금 세대교체기에 있다. 그가 세대교체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가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쉽다. 아직도 그가 남긴 사퇴의 변이 아스라이 귓전을 스친다. "한국에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한국 팬들은 훌륭하고 좋은 팬들이다. 아시안 게임과 아시안 컵, 2002-2006 월드컵을 거치며 정말 좋은 기억을 남기고 떠나게 됐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때다."

핌베어백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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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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