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진정 사태 파국을 원하는가?

동맹국 인질 석방 뒷짐... 전투병 파병까지 해줘야 하나

등록 2007.07.30 14:48수정 2007.07.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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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납치된 지 10여일이 지났다. 협상시한이 무기한 연기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탈레반이 30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을 새 협상시한으로 제시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방향이 각기 다른 보도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지만, 시일이 지나도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는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아프가니스탄 현지로 파견해서 이른바 '총력 외교'로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지에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까지 만났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지켜보는 이들은 갈수록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만 들 뿐이다.

정부의 '총력 외교'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사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고리에 해당하는 아프간인 포로 석방 문제가 전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간인 포로 석방 문제는 누가 열쇠를 쥐고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미국이다.

미국의 대리인에 불과한 아프간 정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한국 군대의 즉각 철수와 인질 교환이었다. 한국군 철수는 한국 정부에 요구한 사항이며 인질 교환은 아프간 정부가 직접적인 당사자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다 아프간을 점령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다.

우선 노무현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대상인 '아프간 정부'는 자주적으로 무엇을 결정할 처지가 못 된다. 현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이후 미국의 절대적 지원으로 2004년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미국은 해외원조에 의존하는 아프간에 140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까지 지원했다.(<한겨레> 26일자, '잠잠한 미국' 뒷짐 풀까) 그럼에도 아프간 정부의 권력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수도인 카불까지만 통치하는 정부라는 말도 있다.

더구나 7월 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최성 의원이 < CBS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대로, 현재 한국인들이 피랍되어 있는 가즈니 지역은 미군 중부사령부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만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어디까지나 미국의 정치적 결단이 관건이 된다.


조기철군론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

필요할 때마다 '동맹국'임을 강조하던 한국의 국민이 23명이나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미국의 대응은 어떠했을까. 미국 정부는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한국을 지지하고, 인질들을 석방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내놓았을 뿐, 실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23일자 <동아일보>가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한 대로, "한국 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동의 다산부대의 조기 철군론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미국의 진짜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이미 연말에 철군할 계획이며 물리적으로도 즉각 철군은 불가능하다"며 즉각 철군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데 이어, 1명이 피살되고 철군 요구가 높아지던 지난 26일에도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즉각 철군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알아서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격이다.

그러면 백 번 양보해서, 미국의 비위를 잘 맞추면 인질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간 미국은 기본적으로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 는 원칙 하에, 인질이 잡혀도 협상을 하거나 다른 나라가 협상하는 것을 용인한 적이 없었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 3월 이탈리아 정부가 피랍된 이탈리아 기자를 구하려고 아프간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여 탈레반 수감자 5명을 석방해 준 것이 유일한 예외이다.

당시 미국은 인질 무사귀환을 환영하기는커녕 불쾌한 심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테러를 보상하고 추가 납치를 부추기는 것"이라며, 자국 기자를 구하기 위해 탈레반 석방을 요구한 이탈리아와 그 요구를 받아들인 아프간 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번 역시 한국인이 23명이나 인질로 잡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한 인질 교환을 승인, 아니 묵인도 해 주지 않을 태세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빌미로 탈레반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협상 도중에 공격을 강행하는 다국적군

피랍 소식에 다급해진 한국 정부가 무장단체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던 지난 22일 오후였다. 별안간 아프간 정부군과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다국적군이 구출작전을 실시한다는 섬뜩한 소식이 전해졌다. 외국군까지 나서서 군사작전을 감행한다면 자칫 사태가 피에 젖은 복수극으로 변하면서 인질의 목숨은 더욱 위험해질 터였다.

깜짝 놀란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나서서 구출작전은 사실이 아니며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군사작전이 벌어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알자지라 등을 통해 다국적군 병력의 이동 장면이 다 공개된 후였다.

한국인 피랍지점인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에서는 아프간 정부군, 나토 연합군 등이 인질 억류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봉쇄하기도 했다. < NHK > 등의 외신에 따르면 지난 25일 밤(한국시간) 탈레반 측이 한국인 인질 8명을 넘겨 주려고 했다가 되돌아가 버린 이유도, 약속된 인도 장소였던 산 아래에 나토군과 아프간 군대의 장갑차와 무장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질로 잡힌 한국인을 진정으로 살리려 했다면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될 조치였다.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과 아프간군은 무력을 동원하여 탈레반을 계속 자극했다. 그들은 23일 남부 헬만드 주에 있는 탈레반 은거지를 공격해 탈레반 조직원 36명 이상을 사살하고, 우르즈칸 주에서도 칸다하르 주와 연결된 도로를 봉쇄하고 공습을 단행해 39명을 살해하는 등 23일 하루에만 75명의 탈레반을 사살했다.

25일에도 헬만드 주와 칸다하르 주에서 공습과 교전이 이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27일에도 헬만드 주 소재 쿰바라크 마을에서 양 세력간 교전이 발생, 탈레반 50여명과 민간인 28명이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사망했다. 동부 누리스탄 주에서도 24명의 탈레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미국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기를 원하는가?

사람의 목숨이 달린 것도 아랑곳않고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 마구잡이로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미국. 우리 국민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 고위 관리의 입에서 무력 진압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어 실제 상황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엄중하다. 미국이 한국군의 전투병 파병을 이끌어 내려는 목적에서 무리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지난 2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 미국은 한국 측에 아프간에 전투병을 파병해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칼자루를 쥔 것이 무장세력이나 아프간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만에 하나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경우 미국은 응당한 책임을 면치 못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조장원 기자는 <파병철회네트워크>(http://antipb.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장원 기자는 <파병철회네트워크>(http://antipb.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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