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세력의 집권과 수구정당집권의 차이
진보 일각에서 "민주세력이나 한나라당 누가 집권하든 두 집단 모두가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이며 어느 집단이 집권해도 우리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추측이며 선동일 뿐이다.
한나라당에서 후보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명박후보는 "건설경기를 부양시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개발독재의 신봉자인 동시에 그 자신이 수많은 개발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있다. 그는 “종부세를 폐지하여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의 가장 큰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 투기를 활성화시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친자본, 친재벌, 친부동산 정책을 펼칠 것이 분명하고 이것은 바로 대다수 소시민의 좌절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 중 정부가 시도한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투기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자체들이 적절한 과세를 회피하는 등 투기자본의 입장에서 정부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란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무산시킨 단체장들이 누구였는가? 모두가 한나라당 출신의 단체장들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어떤가? 그가 오랜 기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가장 중시한 것은 국가정체성 확립이었다. 얼마 전 재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생각은 지극히 단순하다.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전교조가 사학재단을 장악할 것이고, 전교조는 좌경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켜 우리 사회의 좌경화를 시도할 것"이란 것이 사립학교법재개정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가 집권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전교조는 '친북좌경집단'으로 낙인 찍혀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민주개혁세력 중 비록 속도에 대한 완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누가 효율적 분배라는 대명제에 반대했으며,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한 적이 있는가? 경직된 진보 일각에서 "여권과 한나라당 중 누가 집권해도 결과는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세력 집권 10년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뀐 데서 기인한 비판이 아니라, 수구세력의 권력 탈환을 돕는 이적행위란 것을 알아야한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아니다
그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북측이 북미간의 직접대화에만 신경을 쓰고 남한정부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참 위험하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북핵사태 이후 남북 대화는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우리가 하나를 주면 북으로부터 반드시 하나를 얻어내는 형식의 상호주의를 기조로 북에 대해 당근과 채찍 정책을 펼쳐야 했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진보가 남북 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주장했다?" 필자로서는 처음 대하는 금시초문의 궤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패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북측의 일방통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참여정부나 민노당 공히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 배경이 작은 시비를 가리다가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이라는 큰 목적을 상실하는 소탐대실을 범하지 않기 위한 통일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그 주장은 아무리 범여권이 미워도 진보로서 해서는 안 될 주장이다.
양극화의 원인규명에 대한 오해
또한 그가 참여정부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그가 평가에 앞서 현실적 요인에 대한 실질적 성찰을 가졌는지 의심을 품게 된다. 참여정부의 출범 이후에도 우리 경제는 성장을 지속해왔지만 성장의 과실은 거대 자본이나 소수의 기득권층에 의해 독점되었다. 결국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이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주장이고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현상은 정부의 정책적 책임보다 무한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된 이유가 훨씬 크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박정희 독재정권은 백지상태에서 경제개발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고, 권력의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갈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민주세력이 집권한 시점은 그런 개발독재의 모순이 외부로 폭발하기 시작한 외환위기 때이며, 참여정부가 출범한 시점은 '세계화'가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대세로 자리 잡고 나서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경제 철학을 현실화하기 위해 경제주체들을 강압적으로 압박할 수단도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선택권은 세계화의 대세에 합류하거나 세계화를 거부하고 미국의 패권주의와 거대자본의 시장주의와 대립하는 등 극단적 양자택일이나 아니면 양자사이에서 절충점을 찾거나 세 가지 중의 하나로 제한되어 있었다.
나는 오늘날 진보 측에서 주장하는 반 세계화나 반FTA정서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하지만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못한다. 인력을 제외한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세계화를 외면하고 발전을 지속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고민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북미지역이나 유럽의 단일화 시장인 EU, 향후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등 무역 강국 모두 세계화나 FTA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만 홀로 FTA의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의 자동차가 없으면 세계가 멈추어 서는가? 한국의 반도체가 없으면 세계의 정보화가 후퇴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어렵사리 개척한 시장을 대체할 나라는 얼마든지 있고 세계라는 거대시장에 우리가 설 틈은 비좁기만 하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세계화를 거부할 만한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급자족할만한 자원을 갖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생산한 상품을 우리가 소비할 만한 시장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화를 결코 거부할 수 없고 FTA 또한 무작정 외면만 할 수는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미FTA가 상당히 자주권을 상실한 협정이었고 참여정부가 임기 중 협정을 마무리하려는 욕심으로 졸속 협상을 했다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현재 협상 결과를 놓고 비준 절차를 밟기 위해 대기 중인 상태에서 대의기관인 의회가 협정문서의 문제점을 최대한 세심하게 살펴 인준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의 수혜자가 될 자본이 최대의 피해자가 될 농축산업 등 피해산업에게 어떤 합리적인 보상을 해야 할지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예상 외로 내용이 길어져 3편 <진보와 민주세력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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