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속의 할머니를 꺼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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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backnine)등록 2007.08.08 08:56

2006년 7월 10일 김군자, 이옥선 할머니(가운데 왼쪽과 오른쪽)와 함께 손금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김동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동체인 경기도 퇴촌의 “나눔의 집”에 가면 할머니들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종종 그곳을 찾아온 자원봉사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2006년 7월 8일 나는 나눔의 집에서 매달 그곳에 봉사활동을 나오고 있던 예정은이란 학생과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우선 어떻게 나눔의 집에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작년에 SK 텔레콤에서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행사를 마련했어요. 그 행사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를 방문하는 행사였죠. 그때 여기 방문하고 그 뒤로 학교에서 자원봉사 단체를 만들어 여기를 드나들게 되었어요. 자원봉사팀은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서 만들었어요.”

그리고 두번째로는 할머니들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들 만났을 때 처음에는 느낌이 상당히 딱딱했어요. 지금은 많이 드나들다 보니 얼굴을 알아보고 왜 지난 달에는 안왔냐고 말씀해 주세요. 사실 여기 처음 올 때는 약간의 두려운 마음이 얼추 있었어요. 아무래도 상처받은 분들이니까요. 가서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하는지, 그것도 걱정이 되구요. 이제는 낯이 많이 익어서 다정하게 앉아서 맘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특히 문필기 할머니랑 많은 얘기를 나눠요. 문필기 할머니가 그중 반갑게 맞아주시고, 또 박옥련 할머니도 정이 아주 많으세요. 김군자 할머니가 제일로 무서워요. 하지만 지금은 김군자 할머니도 얼굴을 알아 봐주고 반갑게 맞아주세요.”

“친하니까 아주 좋아요. 사실 처음에는 그냥 멀뚱멀뚱 있다가 갔어요. 뭘 사와도 이거 왜 사왔냐는 타박을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와서 할머니께 매니큐어를 발라드리기도 해요. 김순옥 할머니가 바르자고 가지고 나오시면 저희가 발라드리죠. 김순옥 할머니는 고운 색을 좋아하셔서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계신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우리에겐 하얀 색을 발라 주셨죠.”

지금은 할머니들에 대한 느낌이 어떻냐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냥 우리 할머니 같아요. 농담도 하고.”

7월 12일에는 자주 자원봉사를 나와 할머니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남상천 한의원의 정철 원장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냥 어린 학생들이 찾아와 할머니들 얘기 들어주는 것만으로 상처의 치료가 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 와서 침을 놔주고 아픈 데를 봐주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치료하는 시간에 할머니들 얘기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치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가끔 저희 집사람하고 같이 오는데 그때 그냥 저희가 사는 얘기도 같이 나누고 그럽니다. 의사의 봉사라는게 병을 고쳐주는 것 같지만 여기선 그것보다는 말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봉사가 됩니다.”

“할머니들은 그냥 누가 찾아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어요. 이곳의 할머니들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인간의 따뜻한 정이 필요합니다. 할머니들이 속에 엄청난 화가 쌓여있어서 그 화를 어디론가 분출해서 풀어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요. 그럴 때 젊은 학생들이 와서 할머니 얘기를 들어주면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화를 바깥으로 내뱉는 효과를 가집니다.”

“여기선 낯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기적으로 찾게 되면 거리감이 없어지죠. 할머니들에겐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조금 오다가 말겠지 하는 마음도 많습니다. 그런 마음을 없앨 수 있는게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신뢰를 쌓는 일이죠.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는 박두리 할머니 같은 경우 거의 2년 동안 저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지금은 조금씩 알아봅니다. 이곳처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곳도 없습니다.”

예정은 학생은 맨처음에는 무서운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은 나눔의 할머니들이 모두 그냥 할머니 같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상처는 할머니를 할머니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할머니는 할머니다운 삶을 사는게 가장 행복한데 일제가 할머니에게 남긴 처녀적의 상처는 그 행복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처음에 찾아가면 어색하지만 두번, 세번 가다보면 낯섬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그러다 보면 처음의 어색하던 얼굴이 반가운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눔의 집 할머니는 그냥 우리의 할머니가 됩니다.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니와 같이 보내는 자원봉사의 시간은 그곳의 일을 돕는 것이라기 보다 어찌보면 할머니 속의 할머니를 꺼내는 일이며, 할머니에게 할머니를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서서 진상규명과 사죄배상을 외치며 싸우는 일도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 할머니 속에서 할머니를 꺼내 할머니께 돌려드리는 일도 값진 일입니다.

2006년 7월 12일 정기적으로 나눔의 집을 찾아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는 남상천 한의원 정철 원장의 부인이 김군자 할머니랑 아이키우며 살아가는 얘기는 나누고 있다 ⓒ 김동원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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