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먹고 살기도 빠듯하당게요"

[빗속여행 3일의 기록 3] 해남 남창5일장에서 만난 장돌뱅이 김씨

등록 2007.08.15 16:54수정 2007.08.15 17:4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남창시장 전경

남창시장 전경 ⓒ 이승철

"이건 목포 갈친데요 물이 좋습니다."
"이 세발낙지도 목포에서 가져온 건데 한 번 보세요? 아직 팔팔하잖아요?"


지난 주 여행길에서 길가의 장터에 들어서자 상인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반긴다. 그러나 장터는 상인들만 많을 뿐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해남에서 완도로 건너가는 바닷가 끝자락 길가에 자리잡은 남창장터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장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바닥에 펼쳐놓은 상품들은 대부분 해산물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생선을 파는 상인 한사람은 우리 일행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순한 표정이 정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오늘 많이 팔았느냐고 물으니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손님이 있어야지라? 아직까지 겨우 한 손 팔았구만이라"한다. 이 남창장터가 오늘 장날인 것을 안 것도 그가 말해줘서 알게 됐다.

"5일 장이구만이라, 2일 7일, 12일, 이렇게요."

이런 장사 몇 년째냐고 물으니 12년째라고 한다.


"이제 이런 장돌뱅이도 못해먹겠구만이라, 도통 장사가 돼야지라…."

그는 이곳 남창장 외에도 역시 5일장으로 장이 서는 해남장과 강진, 그리고 영암장터를 찾아다니며 장돌뱅이 상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골에는 지금 노인들 밖에 없당게요, 그러니 물건이 팔리겠는기라? 노인들만 있으니 이런 생선도 그저 조금 사다 놓으면 오래오래 두고 드시니, 노인들이라 먹고 입는 것이 아주 적고 소박하당게요."

그는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농촌 인구 감소와 노인들만 거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라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시장 좋아 안 하거덩요, 보세요? 지나가다가 여기 들른 사람들도 나이든 분들이나 조금씩이라도 물건 사가지 젊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줄라고 들르는 거지 물건 살라고 오는 것이 아니랑게요."

a 목포갈치

목포갈치 ⓒ 이승철

a 시장풍경

시장풍경 ⓒ 이승철

그는 오랫동안의 장돌뱅이 생활로 손님들의 성향을 확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정다워 보였던지 일행들이 다가와 전에 알고 지냈던 옛 친구를 만났느냐고 묻는다.

내가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가 멋쩍게 웃는다. 친구가 되었으니 나이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가 김00라고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가르쳐 주는데 나보다 얼추 10년은 적은 나이다. 나도 썩 젊어 보이는 얼굴이 아닌데 그는 나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제 생활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떠돌아다니는 장돌뱅이라 더 늙어 보이는 모양이구만이라."

그가 공연스레 미안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긁적인다. 그의 집은 해남이라고 했다. 자녀들은 고등학생이 하나에 둘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당장 다음 달에 7백만원이 필요한데 큰일 났구만이라."

김씨는 자녀들의 등록금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장사가 잘 안 되면 농사를 하지 왜 안 되는 장사에 매달리느냐고 물어보았다.

"농사도 어디 그냥 하는 것이당가요? 부쳐 먹을 땅이 있어야지라…."

그래서 장사를 하기 전에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농사지어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었는데, 그나마 그 땅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바람에 장사 길로 나섰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손님이 한 사람 찾아왔다. 50대의 아주머니였는데 갈치를 사려는 것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중인 아주머니는 오늘 저녁 찬거리로 갈치조림을 해먹을 요량이라고 했다. 생선을 파는 김씨는 손님들에게도 무척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 사이 일행 중 한 명은 근처의 고추가게에서 마른고추 20근을 샀다. 서울에 비해 값이 무척 싸다고 했다. 품질도 좋아 보여서 더 많이 사고 싶지만 차에 실을 공간이 부족해 조금밖에 살수 없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a 대부분 농산물과 생선들이다.

대부분 농산물과 생선들이다. ⓒ 이승철

a 마른고추는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았다

마른고추는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았다 ⓒ 이승철

완도로 내려가는 도로 건너편은 바다였다. 마침 썰물이어서 넓은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그 도로변에는 '한미FTA 반대'라고 쓰인 깃발들이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그 깃발 아래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장터로 들어왔다.

남창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옛날 5일장의 그 투박하고 정겨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질펀한 사투리 속에 막걸리 잔을 주고받는 풍경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정다움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손님들은 대부분 오다가다 여행길에 들르는 외지인들이었다. 그나마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장돌뱅이 김씨의 말처럼 나이든 사람들이었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구경만 하고 갔다.

젊은 사람들은 어쩌다 찐 옥수수를 파는 곳에 들러 물건을 샀다. 아이들이 즐겨 먹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역시 몇 가지 생선을 담은 커다란 그릇들을 앞에 놓고 앉아 있던 할머니들도 요즘 장사가 통 안 된다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요즘은 장사해서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하당게요."

상인들은 하나 같이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그래도 마침 휴가철이어서 오늘은 오후쯤에 저녁 찬거리를 살 사람들이 좀 많이 사가지고 가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하는 상인도 있었다. 장터를 돌아보고 다시 김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김씨는 또 다른 나이든 손님에게 역시나 갈치를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목포 갈치가 인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부터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구만이라. 선생님이 댕겨가셔서 그란지."

아이들 등록금 걱정을 하던 그전의 어두운 모습과는 달리 김씨의 얼굴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잠깐 사이 찾아와 갈치를 사간 몇 사람의 손님들 때문이리라.

a 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

시장을 둘러보는 사람들 ⓒ 이승철

a 한미FTA반대 깃발너어 갯벌풍경

한미FTA반대 깃발너어 갯벌풍경 ⓒ 이승철

이제 시골 5일장에서 옛날의 그 정겨운 모습은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장 저 시장으로 옮겨 다니는 5일장 장돌뱅이들의 삶은 어떻게 하면 넉넉해질 수 있을까?

"자! 여기 목포 갈치, 세발낙지 싸게 팔아요!"

우리일행들이 발길을 돌릴 즈음 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산했던 남창5일장의 장터는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창장 #장돌뱅이 #목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