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 놀던 기암 계곡

[중국기행 34] 장가계(張家界) 금편계곡(金鞭溪谷) 답사

등록 2007.08.16 10:52수정 2007.08.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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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의 산악은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남성미를 자랑한다. 나는 장가계를 뛰어넘을만한 근육질의 산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장가계의 산에는 우리나라 산과 비교해서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 그 것은 시원한 계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시리도록 깨끗한 계곡수가 그것이다.

a 금편계곡 기암괴석. 채찍으로 잘라 세운 것 같이 날카롭다.

금편계곡 기암괴석. 채찍으로 잘라 세운 것 같이 날카롭다. ⓒ 노시경

금편계곡은 물이 부족한 장가계에서 시원스런 계곡수를 감상하며 삼림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금편이라는 이름은 계곡물이 금편암(金鞭岩)을 지나서 흐른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전투용 무기인 금편은 철로 만든 채찍을 의미하는데, 금편암은 층층이 쌓인 시루떡의 사면을 금편으로 잘라 세운 것과 같이 날카롭게 세워진 바위를 말한다. 천국에 사는 한 장수가 자신이 차고 있던 채찍을 내려쳐서 이 바위를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도 전해지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다.


오늘 마침 비가 왔기 때문인지 계곡물은 제법 불어나 있었다. 석회질이 함유되어 약간은 뿌연 물이 천 여 개 봉우리를 바라보며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전체 길이가 7.5km에 달한다는 이 금편계곡을 산책하는 데에는 약 2시간이 걸린다. 장시간의 등산은 걸을 일 많은 여행에서 큰 피로를 가져올 수 있다. 나는 금편계곡 도보여행 코스의 경사가 심할까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와 나의 일행은 물이 흘러내리는 반대 방향으로 분명히 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도 다행히 등산로는 평평했다.

등산로의 바닥을 계속 살펴보니 등산로는 모두 긴 석재가 깔려 있었다. 나는 이 산속의 긴 산책로를 돌로 모두 깔아버린 이 사람들의 무모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와 함께 이러한 석재 공사는 남아도는 중국의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비가 오는 날, 이국 땅 계곡에서 편안한 산책을 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니, 더위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하늘을 찌를 듯한 봉우리에는 구름이 계속 걸려있었다.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조금 불편하고 사진이 흔들렸지만,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으며 가다가 일행에 뒤처지기 일쑤였다. 나는 빨리 걷기 선수처럼 계속 발걸음을 서둘렀다. 대개 산의 산책로는 한가한 편인데, 이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뱀 꼬리 같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a 계곡에서 가마타기. 외국인들은 바가지를 쓰기 쉽다.

계곡에서 가마타기. 외국인들은 바가지를 쓰기 쉽다. ⓒ 노시경

금편계곡에는 가마와 이 가마를 끄는 가마꾼이 장가계의 다른 곳보다 많이 보인다. 계곡의 길이가 꽤 긴 반면, 이 계곡의 전 여정을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허술해 보이는 가마의 대나무 채를 드는 가마꾼들은 가마 앞뒤에 2명씩 있는데, 내가 걷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의 앞을 질러간다.

가마꾼들은 계속 내 옆을 지나간다. 내가 그들 진로를 막기라도 하면 소리를 질러대며 바쁘게 지나간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 가마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바가지를 써가며 금편계곡의 부드러운 산책로를 멀리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a 금편계곡의 운무. 봉우리를 둘러싼 운무가 신비롭다.

금편계곡의 운무. 봉우리를 둘러싼 운무가 신비롭다. ⓒ 노시경

관광객들을 위해 인공으로 쌓은 돌길은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산책로 옆에는 대나무 숲과 살구나무 숲, 그리고 내가 그 이름을 모르는 무성한 원시림이 계곡 위로 펼쳐지고 있다. 희귀한 나무뿐만 아니라 야생화와 향긋한 풀은 지천이다. 인간은 무릇 나무와 깨끗한 공기, 시원한 물에 둘러싸이면 본능적으로 평화로움을 느끼는데, 나는 이 순간 이 행복의 삼박자를 만끽하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계곡 수 안의 물고기와 민물 게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와와'라는 물고기가 이 금편계곡에 자란다는데, 그 모습은 궁금증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여행에서의 모든 만남은 일정부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 물고기의 모습을 오늘은 볼 수 없도록 이미 운명 지어져 있었다고 자위했다.

a 금편계곡의 원숭이. 전형적인 원숭이 같이 생겼다.

금편계곡의 원숭이. 전형적인 원숭이 같이 생겼다. ⓒ 노시경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금편계곡에서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장가계의 숲 속에 사는 원숭이들이었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까치와 싸우는 원숭이를 보고 있으려니, 길옆의 모퉁이에서 대여섯 마리의 원숭이들이 몰려 나왔다. 사람들이 주는 먹을거리를 받아먹기 위해 나온 녀석들이다.

동물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 원숭이지만, 바로 눈앞에서 원숭이들이 어슬렁거리니 원숭이에 대한 느낌이 확 달라진다. 새끼를 가슴에 안고 나온 어미 원숭이는 마치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참 원숭이 같이 생긴 이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들에 비해 외모가 너무 순하게 생겨서 더 친근감이 간다.

이 신비로운 계곡에서 영화 <서유기>가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원숭이인 손오공이 참으로 놀만한 경치이다. 아니 방금 본 원숭이들이 <서유기>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숭이들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벌써 일행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먼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수백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이 엄호하는 계곡에서 다시 빠른 걸음을 시작했다. 내 걸음이 느린 편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 앞을 빨리 지나치는지 모르겠다.

여러 줄기 물살의 계곡 수는 빗물을 머금으며 계속 달리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저 물길은 계속 갈 길을 재촉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좀 더 쉬어가고 싶었다. 깊고 고요함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쉬어가고 싶었다. 여행은 와서 쉬어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어만 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마치 빨리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산으로 사진기를 보호하며 사진을 찍고 다시 뛰다시피 걸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2007년 5월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가계 #금편계곡 #중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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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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