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포인트 짚어 김정일 '귀' 잡아라"
임동원 "북한은 남북경협·군축을 원한다"

[남북정상회담 D-12] 6·15 정상회담 주역의 '조언'을 듣는다

등록 2007.08.16 06:12수정 2007.08.17 07: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두 주역인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해 이들로부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소감'과 '조언'을 청취했다. 주로 두 사람이 1차 정상회담에서 수행했던 역할에 비추어 각각 제2차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정서적 접근'과 '전략적 접근'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이는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과 준비기획단에게 주는 유용한 '팁'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문제는 박지원 실장·임동원 특보와 상의해서 준비하기 바랍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1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과 준비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듣기 위해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이재정 통일부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이 장관에게 "(제2차)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제1차) 정상회담의 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성공적인 회담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과 농담하는 박지원, 김정일과 귓속말하는 임동원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임동원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각각 문광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으로서 대통령 특사의 자격을 갖고 대북 비밀접촉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고 회담 의제 전반을 조율했던 6·15공동선언의 주역이다.

두 사람은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지근거리에서 대화한 몇 안 되는 사람에 든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하 박 실장)이 김 위원장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할 수 있을 만큼 호감을 주는 유일한 남측 인사라면, 임동원 전 특보는 김 위원장이 공식석상에서 귀엣말을 나눌 만큼 신뢰감을 보여준 유일한 남측 인사이다.


그럴 만도 하다. 박 실장은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김 위원장의 특사와 만나 6·15 정상회담을 이끌어냈고, 6·15 정상회담 공식수행원으로 참여해서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8·15 남북 공동행사의 일환으로 남한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을 이끌어냈다.

임동원 전 특보는 국정원의 대북채널을 가동해 박 실장의 비밀접촉을 막후에서 지원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이 성사된 뒤에는 두 차례의 비밀 방북을 통해 회담 의제를 사전 조율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인 회담으로 이끌었다.


[박지원의 조언]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라"

a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왼쪽은 이날 행사에 동석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해 9일 오후 성공회대성당 마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왼쪽은 이날 행사에 동석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 실장에게는 주로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공에 필요한 '정서적인 접근'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특히 회담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정권의 유일한 결정권자'임을 들어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이 대화의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가며 김 위원장의 '귀'를 붙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는 대화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14일 2박3일간의 금강산 방문을 마치고 막 돌아온 그는 "전직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처지에 현직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 제2차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팁'을 알려달라.
"알다시피 북한은 '과정'이 필요 없는 나라다. 우리는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는 데 국회 동의의 절차와 논의를 거치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유일한 결정권자이다. 그러므로 북한 체제를 움직이려면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의 '귀'를 붙잡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화의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가며 김 위원장의 '귀'를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박 실장은 이어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과 충분히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보다 굉장히 영특한 사람이다. 고립된 폐쇄된 사회에서 살아온 '은둔의 지도자'라고 거칠게 알려져 있지만, 만나 보니 국제정세나 남측의 사정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을 만난 뒤 이런 평가를 했다. 그후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페르손 전 스웨덴 총리, 고이즈미 일본 총리 등이 모두 김 위원장을 만난 뒤에 '김 전 대통령의 평가가 맞다'고 동의했다. 노 대통령께서 준비를 잘 하시겠지만 김 위원장을 결코 쉽게 봐선 안 된다."

박 실장은 이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면서 "제1차 정상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커밍아웃'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주역으로서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 같다.
"2000년 6·15 정상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 사회에 처음으로 '커밍아웃' 하는 자리였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김 위원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그후 8·15 남측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도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번 제2차 정상회담은 세 번째로 자신의 진면목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 사회는 북한 사회를 더 잘 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측과 남측 모두 이번 정상회담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며 6자회담이 바람직하게 진전되고 있는 만큼 꼭 큰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김대중과 손 잡았을 때, 김정일의 손바닥 상태는?

a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일 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일 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제2차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간의 7년만의 접촉이다. 두 정상간의 만남은 우리에게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인물됨과 북한의 체제를 연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선거로 집권당이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 국가는 장기집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냉전시대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국가수반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다. 냉전은 끝났지만 그런 접근 틀이 남북관계에서는 여전히 유용하다.

박 실장은 이런 얘기를 예화로 들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을 때 미국 정보기관이 흐루시초프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 그가 묵은 숙소 호텔 변기의 대소변을 별도의 배관을 통해 뽑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렇게 해서 대소변으로 건강상태를 체크한 것이다. 건강 이상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수반의 유고 같은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우리가 평양에 갔기 때문에 그럴 기회는 없었지만, 제1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또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정보를 지근거리에서 직접 확보할 수 있었다.

"6·15 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손을 잡고 번쩍 들었을 때 우리 국민은 그 마주잡은 두 손에서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읽고 감동했다. 그러나 그 순간 정보기관 사람들의 눈은 김정일 위원장의 손바닥을 향했다. 손바닥의 색깔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이 첩보위성으로 북한 전역을 손금 보듯 구석구석 훑지만 막상 김정일 위원장의 손바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제2차 정상회담도 1차 때처럼 김 위원장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특히 7년 전과 비교하면 좀더 면밀하게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 등을 체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이고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최고지도자를 통해서 북한 체제의 변화와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정상회담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남북한, 14일 정상회담 준비접촉 전에 이미 '육로 방북' 합의

박 실장은 가장 최근에 북한측 인사를 만나고 온 유력 인사이다. 지난 12~14일에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금강산을 방문한 박 실장은 거기에서 북한의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서기장 등 정상회담을 전담하는 통일전선부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는 이번 금강산 방문에서 북측 인사로부터 정상회담에 대해 들은 얘기가 없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북쪽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상회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또 제2차 정상회담·금강산관광 등 남북관계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 6·15 회담의 결과이고 우리는 이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모두가 이번 회담에 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a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이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만찬에서 만난 송호경 아태부위원장과 만났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이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만찬에서 만난 송호경 아태부위원장과 만났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그는 중요한 '팁'을 하나 제시했다.

"12일 저녁에 금강산에 온 북측 관계자로부터 '노 대통령이 육로로 평양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14일에 서울로 돌아오니까 여기서 육로 방북 발표를 하더라. 그래서 북측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에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북은 14일 개성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을 갖고 우리측이 제안한 노 대통령의 육로 방북에 합의했다. 그런데 박 실장에 따르면, 북측 통전부 관계자들은 적어도 준비접촉 회담 이틀 전인 12일에 이미 육로 방북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대개의 남북회담이 그렇듯 미리 '선수들(국정원-통전부)'이 합의해 놓고서 공식 준비접촉 회담에서는 '얼굴마담(통일부)'이 나서서 북측과 서명한 것일 뿐이지만, 북측의 적극성은 조심스럽게 성공적인 회담을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임동원의 조언] "평화체제 구축과 군사문제 진전 이룰 단계 되었다"

남북 관계 및 통일 전략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고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임동원 전 통일외교안보특보(이하 임 특보)는 15일 기자와의 두 번째 전화 인터뷰에서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임 특보는 특히 이날 오전에 노 대통령이 밝힌 8·15 경축사에서 밝힌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와 회담 방향에 대해 '대만족'을 표시했다.

- 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남북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보셨나.
"대만족이다. 노 대통령이 회담의 방향을 잘 잡았고 회담에 임하는 자세도 좋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좋은 협상상대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8·15 경축사를 듣고 서로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a 9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등과 함께 서울 성산동 식당 개성면옥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9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등과 함께 서울 성산동 식당 개성면옥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가 제2차 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한 지난 8일 임 특보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얘기했다.

-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소식을 들었나.
"들었다. 아주 잘 되었다. 매우 환영한다. 8월을 넘기면 (2차 남북정상회담이) 어렵다고 봤는데 8월 말에 성사되어 다행이다. 북측도 정상회담을 원했던 것 같다."

- 그런데 1차 정상회담에 비하면 정상회담까지 준비기간이 촉박하지 않겠나.
"1차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역사적인 자리여서 의전과 경호 문제부터 의제 조율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느라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차 회담은 장소(평양)도 같고 그 때 만들어 놓은 매뉴얼(지침서)과 행정기록들이 국정원과 통일부·청와대 경호실에 남아있어 절차상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의제 조율이 문제인데 우리 정부가 북측과 (의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교감하고 있지 않나 싶다."

- 김만복 국정원장이 밝힌 회담 추진 과정을 보면 북측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온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측에서 먼저 '노 대통령이 8월말 평양으로 오라'고 제안한 것으로 들었다. 2차 정상회담은 장소와 시기가 문제인데 내가 (정부에) 있을 때부터 저 쪽에서는 서울은 못 간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장소는 어차피 평양이나 '제3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평양에 가겠다고 장소 문제에 결단을 내려 시기 문제도 8월 하순으로 아슬아슬하게 (8월을 안 넘기고) 잘 되었다."

그러면서 임 특보는 "2차 정상회담 의제는 어떤 것이 될 것으로 예상하나"는 질문에 "1차 정상회담의 성과 위에서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평화체제 구축과 군사 문제에서 진전이 이뤄질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면서 "그래야 또 경제협력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이 북측의 최대 관심사"

기자는 세간의 우려를 전했다.

- 그런데 의제를 둘러싸고 저쪽에서 내밀 '카드'가 별로 없다는 걱정들이 있다.
"저 쪽은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경협 활성화를 원한다. 인도적 차원이 아니고 보다 높은 차원의 남북경협을 원한다. 지금은 남북간에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겨우 시작해 놓았는데 이것을 좀더 업그레이드 해서 철도·도로·전력·항만 같은 SOC(사회간접자본)를 확충하려는 기대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드러내 놓든 드러내지 않든 간에,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이 북측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런데 경제공동체가 되려면 군사적 보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군비통제 문제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북측은 사실 군축을 원한다. 그래야 경제협력도 한 차원 높은 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의 실현은 남북 경제공동체의 형성·발전과 서로 교호작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남북간에 철도·도로를 연결해 놓고도 군사적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핑계로 열차가 운행이 안 되고 있다. 따라서 군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그럴 명분을 없애야 한다. 그밖에도 의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a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오는 2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고 있다.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오는 2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임 특보는 2000년 4월 당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발표한 이후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5월 27일과 6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그리고 정상회담 개최 10일을 앞두고 의제를 최종 조율해 냈다.

- 당시 의제 조율은 어떻게 이뤄졌나.
"먼저 우리가 제안한 네 가지 의제 제의를 북측이 받아서 네 가지 의제에 대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6·15 남북공동선언에 그대로 다 담겼다. 네 가지 의제는 평화·통일·경제교류협력·기타 인도적 문제(이산가족) 등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공동선언에 ▲우리 민족의 자주적 해결 ▲통일 방안의 공통성 인정 ▲이산가족 상호방문 ▲경제협력을 통한 신뢰회복 ▲당국간 대화 정례화 등 5개항으로 반영되었다."

"지금부터 군축 협상 시작해야 한다"

지난 10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직'들이 제2차 정상회담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1차 정상회담의 주역들인 '전직'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봤다. 그러나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는 '전직'들 틈에 끼인 그의 표정은 밝았다.

"잘 될 것으로 본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경제협력을 활성화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발전시키면서 '군비통제'를 병행해 나가는 것이다. 군비통제의 실현은 남북 경제공동체의 형성·발전과 서로 교호작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다시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15일, 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정확히' 남북경제공동체 얘기를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목표를 제시하면서 "경제협력에 있어서는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을 위한 대화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뒤 "이제는 남북경협을 생산적 투자협력으로, 쌍방향 협력으로 발전시켜 우리에게는 투자의 기회가, 북한에게는 경제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에서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과 군비통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임 특보의 오랜 지론이다.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확대 발전을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남북관계 확대 발전의 핵심축은 경제와 군사 문제다. 이 두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경제협력 위주로 발동을 걸었는데 이제는 군사보장이 따라와야 한다.

오늘 노 대통령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생산적 투자협력'을 얘기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군비통제 해야 한다. 군사보장이 안되니까 철도 연결 같은 소소한 문제도 안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군비통제 협상이 시작되어야 한다. 군축협상은 지금 시작해도 수년이 걸릴 사안이다. 유럽에서는 성과를 내는 데 10년이 걸렸다. 우리도 2~3년 안에 될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협력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킬 수 있다."


임 특보는 북한 영변 핵시설 폐쇄 등 2·13합의 초기조치 이행이 최종 단계에 들어서고 6자회담에서 다음 단계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위한 로드맵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이 "6자회담과 조화를 이루고 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는 정상회담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조화병행론'을 전개해 그동안의 '종속론'에서 탈피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국제금융기관의 자금지원을 받으려 해도 미국의 테러지원국 블랙리스트 때문에 옴짝달싹 할 수 없었는데 2·13합의 이후 해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북한의 핵불능화 조처가 함께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4자 회담 성과내려면 남북이 먼저 입 맞춰야"

a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7일 가진 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7일 가진 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임 특보는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4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는 지적에는 "그게 다 평화체제의 문제이므로 우리 쪽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면서도 "4국 정상회담은 엉뚱한 얘기다, 외교적 수순이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일축했다.

- 이번 회담에서 종전 및 평화선언까지 나가는 데는 어렵겠죠?
"그게 다 평화체제의 문제이므로 우리 쪽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6자회담 합의서에 보면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언급돼 있지 않나. 합의문 4항에 보면, 6자가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하고 직접 당사자들이 한반도에서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적절한 별도의 포럼을 통해서 평화협정 체제를 협상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그러니 4개국 회담을 개최해 평화선언 하는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 왜 4자회담인가.
"4자회담에서 미·중은 교전 당사국으로서 종전협정 당사자이다. 남북한은 교전 당사국에다가 플러스를 해서 평화의 당사자이다. 한반도 평화는 남과 북이 유지하는 것이고 미국과 중국은 그것을 뒷받침할 뿐이지, 그들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 평화가 현상유지나 분단고착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4자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과 북이 입을 맞춰 통일 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4자회담이 되어야 한다. 2+4로 이뤄진 동서독 통일 사례에서 보듯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다. 4자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입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4자회담에서 우리끼리 싸우게 될 가능성이 있다."

-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잘 진행되면 4자회담이 올해 안에 가능한가.
"차관보급 4자 실무회담부터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게 너무 '인플레' 되어 4자 정상회담까지 너무 멀리 나갔다. 지금 북핵 6자회담을 하고 있지만 사실 (4자 정상회담까지 안해도) 4자 장관급회담까지 가면 문제가 끝나는 것이다."

- 얄타 정상회담처럼 50년 동안 한반도 짓눌러온 구체제를 깨뜨린다는 세리머니 차원에서 4자 정상회담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벤트성 만남은 가능하겠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1년여 임기 내에 뭔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런 기미가 안보인다. 연내에는 어렵다고 본다."

임 특보는 노 대통령이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노력할 생각"이라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에 다룰 의제들이 합의해도 현 대통령 임기 중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자세로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혀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공을 낙관했다.
#박지원 #임동원 #남북정상회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