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8.22 14:36수정 2007.08.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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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쓰면 되는 거지요?"
"글 쓰는 사람이 참 부러워요. 그래서 나도 해 보려고 하는데 막상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거 있죠."
내가 소위 '글쟁이'라는 것을 알고 주위에서 이렇게 말을 붙여오는 분들이 더러 있다. 정말 내게 글 쓰는 법에 대한 조언(?)을 구해서라기보다 그저 나에 대한 격려나 요전번 글 잘 읽었다는 치렛말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만, 개중에는 정말 '한 수 배우고 싶다'며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어느 유명 작가는 한 때 주위에서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쓰지 마세요, 아예 시작도 마세요'라고 말렸다는데, 그런 말이 설마 '흥, 니까짓게 무슨 글? 글 쓰는 일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글은 뭐 아무나 쓰는 줄 알아?' 하는 식의 고약한 맘보에서 나왔을 리는 없고, 한마디로 그 '형극'의 길에 애초 걸음을 떼놓지도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은 피를 짜내듯 글을 쓴다며 자못 '엄살'을 떨기도 하고, 혹자는 '문학'하는 일이 너무 대단해서 목숨을 걸었다고 까지 하니, 글쟁이들의 과장하는 습성을 감안하더라도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피를 쏟는 고통으로 '문학씩이나' 하는 것도 아닌 내가 '쓰지 마시라'며 대가의 흉내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 그보다는 나를 그런 '대가'의 반열에 놓고 글 쓰는 것에 대해 한마디 해보라고 했을 리는 없을 터. 그랬다면 마치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을 붙들고 감히 도레미파부터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니까.
결국 '나도 너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만만함에서 물어오는 것이니, 나 또한 "그냥 쓰세요, 저도 그냥 씁니다"라고 대꾸할 수밖에.
그러면 이번에는 도무지 뭐에 대해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남편이나, 시집 식구 흉을 보자니 좀 그렇고, 애들 이야기도 다 까발리긴 뭣하고, 직장이나 주변 사람 끌어들였다간 공연히 탈 날까 겁나서 이것저것 다 가리고 나면 나중엔 쓸 이야기도 없다며 고민을 한다. 그런데도 맘 속에 뭔가가 자꾸만 차오르니 그걸 좀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하소연인 것이다.
흔히들 '내 이야기는 소설로 몇 권, 아니면 아예 시리즈 대하소설'이라는 식의 신세 한탄도 실은 풀어내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통로를 찾지 못해 내지르는 아우성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껏 시난 고난 살아오면서 구비구비 고비를 넘겨온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말 설고 물 선 남의 나라에서 이만큼 먹고 살게 되니 이제는 돌아보며 성찰의 기회를 갖고 싶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앞만 보며 아등바등 달려온 이민 생활, 문득 고개를 들어본 순간, 형언할 수 없이 밀려드는 허전함과 허무함에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의 절규처럼 '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고 속울음을 삼켜야 하는 이는 왜 없겠는가.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일상이 순조롭고 일생이 그럭저럭 평탄하게 풀리는 사람은 내면의 아픈 소용돌이를 겪을 일이 적기 때문에 풀어낼 응어리나 한도 그만큼 덜하다는 말일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이 도무지 한 가지도 없을 때, 그럴 때 글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숨 쉴 통로를 마련하는 방편이다. 현실의 내 삶은 남루하고 초라하고 감추고 싶은 것들 투성이지만, 글을 통해 가만가만 풀어내고 있노라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게 느껴지면서 다시금 나를 다독여 일으켜 선연한 현실을 감내하게 하는 내적 힘을 경험케 한다.
힘들게 사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님에도 글에서는 그게 힘일 때가 많다. 등단 수필가 중에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고생 없이 살아서 도무지 글로 쓸 것이 없다고 진지하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의 겸손은 따로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겠지만, 많은 부분 수긍이 가는 말이다.
앞으로도 혹 글을 쓰고 싶다며 누군가 내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글은 아무나 쓰는 줄 아세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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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