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아세요?

필리핀 따가이따이 여행... 호수 속의 호수를 보다

등록 2007.08.24 11:56수정 2007.08.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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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따알 호수 속에 떠 있는 화산섬에서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따알 호수 속에 떠 있는 화산섬에서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 김연옥

한 달 예정의 중등 영어교사 국외 어학체험연수 생활도 벌써 2주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필리핀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면서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좀 더 알고 싶었다.

나는 지난 8월 4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볼 수 있는 따가이따이(Tagaytay)로 갔다.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호수 속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호수가 생겼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내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중 구조의 화산, 호수 속의 호수를 본다는 설렘으로 출발 전날 밤부터 나는 들뜬 기분이었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따가이따이는 이름난 휴양지로 필리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따가이따이로 들어서자 여느 곳과 달리 예쁘게 꾸민 집들이 눈길을 끌었다.

a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이 떠 있는 따알 호수.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이 떠 있는 따알 호수. ⓒ 김연옥

a 화산섬으로 가기 전 리조트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송 오브 인디아' 잎으로 음식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쫓아내는 광경도 인상적이었다.

화산섬으로 가기 전 리조트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송 오브 인디아' 잎으로 음식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쫓아내는 광경도 인상적이었다. ⓒ 김연옥

우리 일행은 먼저 따알 호수(Taal Lake)가 바라보이는 리조트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도 입에 맞고 곁들어 나온 파인애플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거라 환상적인 맛이었다. 게다가 차려 놓은 음식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송 오브 인디아(song of India)' 잎으로 쫓아내는 광경 또한 인상적이었다.

a 드디어 화산섬에 도착했다!

드디어 화산섬에 도착했다! ⓒ 김연옥

우리 일행은 따알 호수를 건너기 위해 방카를 타기 시작했다. 팍상한 폭포로 갈 때 탔던 것과는 또 다른 모양의 방카이다. 시원한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채 호수의 그림 같은 풍경에 젖어 있다 보니 어느새 화산섬에 도착했다.

a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부들. 그들은 화산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말들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부들. 그들은 화산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말들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 김연옥

많은 마부들이 말을 타고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퍽 이색적이었다. 마부들은 화산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도 보이고 어린 꼬마가 한둘 있을 것 같은 아줌마도 눈에 띄었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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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옥

말을 타고 화산섬 정상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나는 말을 처음 타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자꾸 몸이 흔들흔들했다. 떨어질 것만 같아 겁을 잔뜩 먹은 데다 말을 잡고 걸어가던 마부도 잠시 후 같이 말 등에 타게 되니 비탈진 언덕을 올라갈 때면 말이 너무 힘들어 보여 마음도 불편해졌다.


내 마부는 우리 중고등학생 나이로 보였다. 그곳에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우리말도 몇 개 외워서 알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는데, 갑자기 내 마부 옆으로 여자 아이가 바싹 붙더니 나보고 콜라를 사 주라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나중에 알아서 팁을 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마부가 그 콜라를 마시지 않을 거라는 짐작도 갔지만 모르는 척하고 그냥 1달러를 줬다.

a 호수 속의 호수!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호수 속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호수가 생겼다.

호수 속의 호수!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호수 속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호수가 생겼다. ⓒ 김연옥

a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 정상에서 따알 호수를 내려다본 경치가 아름다웠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 정상에서 따알 호수를 내려다본 경치가 아름다웠다. ⓒ 김연옥

나는 호수 속의 호수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활화산이지만 겉으로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문득 올라오면서 힘들어 배가 갑자기 고팠는지 어느새 풀을 뜯어 입에 물고 있던 말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열대 과일 코코넛을 파는 장사꾼도 있었다. 코코야자 나무의 열매인 코코넛(coconut)은 버릴 것이 없는 과일이다.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통째로 들고 마시거나 속의 하얀 코프라를 같이 넣어 부코 주스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부코(buko)는 코코넛을 뜻하는 따갈로그어(Tagalog)인데, 부코 주스는 갈증 해소도 되지만 위장에도 좋다고 한다. 처음 맛봤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점점 코코넛의 맛에 빠져들어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나는 코코넛 예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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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옥

말을 타고 되돌아가는 길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말을 잡고 같이 걸어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한번 그렇게 시도를 해 보기도 했는데 오가는 말들이 많아 먼지가 워낙 일어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내 어린 마부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하면서 방카를 타고 리조트로 다시 돌아갔다.

a 따가이따이에서 생산되는 원숭이 바나나.

따가이따이에서 생산되는 원숭이 바나나. ⓒ 김연옥

마침 일행이 흔히 원숭이 바나나(monkey banana)라고 부르는 시뇨리따 바나나(senorita banana)를 사 가지고 왔다. 원숭이 바나나는 파인애플과 함께 따가이따이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크기가 작지만 아주 맛이 있었다. 사실 한 달 동안 필리핀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먹은 과일이 바나나이다. 그래도 따가이따이에서 먹었던 원숭이 바나나 맛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다.

지금도 신비한 호수 속의 호수를 볼 수 있었던 따가이따이를 생각하면 풀을 입에 물고 힘들게 올라가던 말과 가난이 힘겨운 어린 마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필리핀 #따가이따이 #따알 호수 #바나나 #화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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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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