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액운은 다 물렀거라!

충북 진천 농다리 축제에서 국태민안과 소원성취를 축원하던 경신회원들

등록 2007.08.27 14:45수정 2007.08.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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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날이 시퍼런 칼 두개를 입에 물고, 양손에 든 칼로 협박했으니 온갖 액운이 물러났을 겁니다.

날이 시퍼런 칼 두개를 입에 물고, 양손에 든 칼로 협박했으니 온갖 액운이 물러났을 겁니다. ⓒ 임윤수

두 손 싹싹 빌고 울먹울먹 눈물 흘리며 애원도 해 보고, 꾸벅꾸벅 절을 올리며 지극정성을 다해 달래기도 합니다. 몸뚱이를 녹여낼 것 같은 폭양 아래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아랑곳하지 않고 지성을 올립니다. 그렇게 지성을 올려도 물러나지 않는 끈질긴 액운을 향해서는 겁도 주고 협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두 개의 칼을 입에 물더니 또다시 양손에 하나씩의 칼을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두릅니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병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는 구설수, 행여 관가의 부름을 받게 할지도 모를 관재수 모두 물러나라고 애원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진천 농다리축제에서 재현된 '제13회 소두머리 용신제'

지난 25일 오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가 있는 농다리 주변에서 개최되고 있는 농다리축제의 현장에서는 진천군 관내 경신회(무속인 모임) 회원들 20여 명이 '제13회 소두머리 용신제'를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a 25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농다리가 있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에서는  ‘제 13회 소두머리 용신제 재현’이 있었습니다.

25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농다리가 있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에서는 ‘제 13회 소두머리 용신제 재현’이 있었습니다. ⓒ 임윤수

깔끔하게 마련된 제단에는 제수 상이 마련되어 있고, 농악대의 풍물소리에 맞춰 제신을 모시는 신맞이를 시작합니다. 신장대를 앞세우고 농다리를 건넜다 돌아와서는 강신을 알리는 듯 한바탕의 굿판이 벌어집니다.

알록달록한 옷들이 제각각입니다. 행사를 위해 주문한 단체복이 아니고 평소 무녀 개개인이 굿을 할 때 입던 의복을 그대로 입은 것이니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곱게 눌러쓴 고깔, 나풀거리는 옷자락 사이로 희끗희끗 무녀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날라리소리에 바라가 춤을 춥니다. 바라가 웁니다. '쟁쟁' 소리를 내며 8월 허공에서 통곡을 합니다. 무녀들의 춤은 계속됩니다. 춤사위에 실린 무녀들의 한이 물결 속으로 배어듭니다.

무녀들의 춤사위에는 한만 있는 게 아니라 축원도 실렸고 염원도 담겼습니다. 무녀들의 발놀림에서 서러움이 묻어납니다. 남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무녀, 무녀들만의 아픔이라도 쏟아내려는 양 통곡을 하듯 강신의 춤이 이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있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가난한 자 부자 되게 해주고, 배고픈 자 배부르게 해주며, 병약한 자 건강하게 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농사를 짓는 자 풍년가를 부르게 해주고, 시험에 응시하는 자 합격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a 제 신과 제 장군들 모시는 듯한 영신과 강신의 춤이 있었습니다.

제 신과 제 장군들 모시는 듯한 영신과 강신의 춤이 있었습니다. ⓒ 임윤수

a 어떤 힘, 어떤 신명이 그 뜨거운 폭양아래서도 이들을 펄펄 뛰게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힘, 어떤 신명이 그 뜨거운 폭양아래서도 이들을 펄펄 뛰게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 임윤수

a 애원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이렇듯 호령도 하고 야단도 쳤습니다.

애원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이렇듯 호령도 하고 야단도 쳤습니다. ⓒ 임윤수

행여 운전이라도 하다 사고를 낼 수 있는 자 사고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이런저런 일로 관가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관재수를 막아달라고도 합니다. 자식을 못 낳아 후세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떡두꺼비 같은 자손 하나 점지해 주고,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에겐 사업번창의 운이 따라주기도 기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이런저런 행운, 사람 개개인마다 다른 하나하나의 소망들이 빠짐없이 이뤄지라고 축원을 합니다. 그렇게 간절한 모습으로 굿을 하던 무녀가 갑작스레 눈빛을 달리하며 도구들을 꺼내듭니다.

8월의 폭양보다도 더 무서운 표정, 더 뜨거운 열정

호령이라도 하듯 "물렀거라, 게 물렀거라"를 외치며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악귀를 쫓아냅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든 악귀들과 대항이라도 하듯 등골이 섬뜩해질 만큼 무서운 표정입니다. 날이 시퍼렇게 선 부엌칼을 두 개나 입에 무니 악귀마저도 오금이 저려져 올만큼 무서운 표정을 하고는 춤을 춥니다.

a 무대 한쪽에서는 날나리를 포함한 안기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무대 한쪽에서는 날나리를 포함한 안기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a 쭉쭉 찢어지는 천처럼 막혔던 일 술술 풀려나가라고 기원합니다.

쭉쭉 찢어지는 천처럼 막혔던 일 술술 풀려나가라고 기원합니다. ⓒ 임윤수

a 무녀와 구경꾼들의 마음이 모이면 모든 게 이뤄질 겁니다.

무녀와 구경꾼들의 마음이 모이면 모든 게 이뤄질 겁니다. ⓒ 임윤수

삼지창을 꺼내 휘두르더니 장검도 꺼내 휘두릅니다. 모골이 송송할 만큼 무서운 표정이지만 마냥 무섭기만한 표정만은 아닙니다. 전장에 나선 용사의 모습처럼 씩씩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광을 피우는 아이들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섬주섬, 또다시 한 개씩의 칼을 양손에 집어들더니 자해라도 하듯 자신의 배를 향해 푹푹 찔러댑니다.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를 이런저런 부정한 것들을 향한 듯 칼부림 같은 굿 춤이 계속됩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던, 춤을 추고 날나리를 불고 장구를 치고 있지만 혼연일체가 된 그들, 20여 명이 축원하는 그것은 국태민안과 소원성취였습니다. 뜨끔뜨끔 심장까지도 데일 만큼 뜨거운 폭양 속에서도 그들의 애절한 축원은 1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힘, 어떤 신명이 이 뜨거운 폭양 아래서도 그들이 지칠 줄 모르고 춤을 추게 하는지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짐작하는 것에 멈춰야 했습니다. 오방을 향해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리는 것으로 쏟아지는 폭양보다도 더 뜨거운 한바탕의 굿이 갈무리됩니다.

a 제가 끝나니 나눔의 시간입니다. 먹을 것을 나눠받은 사람들이 행복해 합니다.

제가 끝나니 나눔의 시간입니다. 먹을 것을 나눠받은 사람들이 행복해 합니다. ⓒ 임윤수

a 무섭고 섬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듯 박장대소하게 하는 웃음도 있었습니다.

무섭고 섬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듯 박장대소하게 하는 웃음도 있었습니다. ⓒ 임윤수

제단에 올렸던 온갖 제물들을 물리는 철상이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제수로 올렸던 과일과 떡이 남김없이 나눠집니다. 밤을 한 움큼 받은 아이가 좋아하고, 싱싱한 배를 받은 할머니가 좋아합니다. 진지하기만 했던 무대가 왁자지껄하며 시끄러워지니 예서 저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그녀들의 무시무시한 표정에 온갖 액운이 물러나고, 박장대소하게 하던 그들의 해학적인 모습에서 국태민안과 소원성취가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농다리 #강신 #액운 #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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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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