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드라마,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등록 2007.08.30 14:47수정 2007.08.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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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미국드라마 'CSI 라스베거스' / 일본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가 도래 했다. 드라마분야라고 예외일까? 컴퓨터에 인터넷만 접속하면 일본, 미국, 대만, 중국 등의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도 타국의 드라마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소수의 네티즌들 중엔 외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을 ‘일빠’, ‘미빠’라고 부르며, 매국노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최근 6개월 동안 나는 한국·일본·미국 드라마에 푹 빠져 살았다. 워낙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가르치는 여고생들의 추천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등학교 여학생들은 이미 일본 드라마, 미국 드라마를 섭렵하고 있었다). 물론 블로그도 이러한 영향력에 한 몫 했다.

한 번 외국 드라마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니, 그 전에 못 보던 드라마까지 보려고 밤을 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만큼 드라마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미국은 이제 할리우드 영화의 벽을 넘어 드라마 세계제패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에는 많은 자본력이 투입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 CSI > 나 <크리미널 마인드> <24> < ROME >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등의 작품들을 보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자동차를 부수고 비행기를 폭파시키고 로마시대를 재현하고 모조 시신을 만드는 일 등등 모두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그럴듯하게 해내니, 역시 미국의 자본력은 무서운 힘이다.

이외에 미국 드라마의 최대 장점은 탄탄한 스토리다. 미국 드라마 시스템 여건상 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런 작업은 다양한 스토리 생산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스핀오프(spin off) 드라마인 < CSI 뉴욕> < CSI 마이애미> < CSI 라스베이거스 >등이 생겨난 것이다.

미드는 시즌제도 잘 정착되어 있어, 오래도록 즐겨 볼 수 있는 특징도 지녔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일명 미드)에 빠진 사람은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다. 많은 시간을 드라마 보는데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서스펜스 기법도 잘 활용하는 편이다. 이러한 기술은 다음편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고, 드라마 시청자들을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예를 들면, 석호필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큰 사랑을 받았던 <프리즌 브레이크>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24>가 여기에 속한다 하겠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드라마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느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밖에 미드를 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미드에서는 안정된 가족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사회상을 아주 잘 표현한 것이다. 미국 드라마에서 가족은 거의 해체되어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지, 고아라든지, 형만 등장한다든지, 아예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든지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본 미드를 잘 생각해보면 온전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 드라마가 드물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다르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특히 주말 연속극이나 일일 연속극, 시트콤 등에서 가족은 드라마의 갈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MBC 일일 드라마 <아현동 마님>이나 KBS 일일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 얼마 전 시작된 MBC 주말 드라마 <깍두기>를 보면 한국 드라마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가족으로 인해 발생되는 갈등은 극으로 치달아 시청자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불륜, 출생의 비밀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을 낳기도 한다. 특히 김수현 작가가 선호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정상은 현대사회와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가족이 무척 중요한 존재다.

조금 보수적인 주말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에 반해 월·화 드라마, 수목·드라마는 조금은 사회상을 반영해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남장여자, 커피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20~3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MBC 월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은 신세대 사랑을 솔직하게 그리며, 동거나 혼전 임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어필한다. MBC 수목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한국형 느와르를 표방하며 국정원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벌어지는 복수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학교물도 인기다. 얼마 전 끝난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강남 지역의 학교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 많은 이슈를 불러 일으켰고, 양동근을 주인공으로 한 KBS <아이엠 샘>은 21세기 현대 학교를 솔직하게 그리겠다는 강한 포부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드라마적 리얼리티를 중요시한다. 너무 허무맹랑하다든지,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잘 가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재에 있어 제약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진지함이 사극을 잘 만들어 낸다든지, 다른 나라 드라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드라마와 달리 일본 드라마는 판타지를 무척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본 드라마(일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많다. 일드를 정말 사랑하는 팬이라면 만화와 드라마를 비교해보는 재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일드는 바로 학교물이다. <꽃보다 남자> <고쿠센> <아름다운 그대에게> 등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10대, 20대를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의 이런 드라마들에선 유치한 부분도 많이 엿보이지만 그래도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학교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자 개성이 뚜렷해 보는 즐거움이 꽤 크다. 나는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인 <아름다운 그대에게>서 나카츠 역을 맡고 있는 이쿠타 토마를 좋아한다. 잘생긴 얼굴과 어울리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보는 사람을 즐겁기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혼자 쇼를 많이 하는 나카츠의 순진한 행동을 보는 것도 좋다.



이외에도 연상연하 커플을 다룬 <너는 펫>과 <아네고>, 법정 이야기를 다룬 <히어로>, 오케스트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아카의 <노다메 칸타빌레> <노부타 프로듀스> <전차남> <쿠로사기> <1리터의 눈물> <드래곤 사쿠라> 등 일드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일드의 매력은 만화 같은 스토리를 전혀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 즉 스토리는 만화일지언정 드라마는 무척 리얼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 그래서 유치하다고 마냥 무시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마니아층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배우들을 클로즈업해서 연결하는 장면전환도 뛰어나고, 이야기 전개도 빨라 지루하지 않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꽃미남들도 많이 나오고, 또 같은 동양권이라는 사실 때문에 묘한 동질감이 생기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앞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드라마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한국은 드라마 홍수 속에 산다. 선택받은 드라마는 꾸준히 사랑을 받을 것이고, 선택받지 못한 드라마는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적 울타리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다.

나는 솔직히 한국, 미국, 일본 드라마가 많아져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어 즐겁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드라마들이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얼마나 많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지상파라는 안전구역에서, 한국 드라마라는 국가적 애국심에서 한국 드라마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그 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기 티뷰 기자단 응모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 블로그 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기 티뷰 기자단 응모
#한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 #미국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커피 프린스 1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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