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나의 외로움, 담배나 위스키와 함께

진지한 사오정의 영화읽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07.09.04 20:39최종업데이트07.09.0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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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포스터 ⓒ 아메리칸 조트로프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지 않다면 누구나 한번쯤 섹시한 원피스의 외국여자가 올드 팝을 부르는 호텔 바에 앉아서 위스키를 마시고 싶을 것이다. 열시 이후에 혼자 술을 마셔도 사연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거나 적당한 취기에 붉어지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 조명이 있다면 나는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두잔 째 위스키를 주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생이 그리 행복한 일들만 가득한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도 모르고 불행한 표정으로 자신을 드러낸들 달라지지 않을 세상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지니고 있을 자신만의 소외나 외로움. 현대인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할 것이다.

 

일본이라는 이국땅에서 자신이 결국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은 대단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내 가족과 나의 일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어서 미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차피 드물테니까. 이국땅이 아닌 곳에서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려고 사무치게 노력할 것이다.

 

미국인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은 광고 촬영을 위해 일본에 도착하고 남편의 일로 일본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샬롯(스칼렛 요한슨). 그들에게 이국땅의 낯선 사람들은 소외감과 외로움만을 안겨준다. 영화<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이야기다. 일본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호텔 창문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즐기는 샬롯과 빨강 원피스의 여인이 노래 부르는 바에서 술 마시기를 즐기는 밥은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그들의 관계는 이국땅에서 느끼는 소외나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최초의 친구로 발전한다.  영화배우를 동경하는 여자도, 나이어린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도 아닌 그저 이방인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대 사람으로. 오십대를 바라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배우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남편과 결혼했지만 그 곳에서 안정을 찾아가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자신을 깨닫는 여자는 만나서 술을 마신다.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음악인 친구들과 또 다른 시간을 보낸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서 눈길이 마주치는 밥과 샬롯의 사이에는 우정 이상의 감정이 숨어있었다. 술 취한 그녀를 안고 호텔방에 내려주는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을 것이고 빨강색원피스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그를 바라보며 샬롯은 마음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들의 감정을 눈치 채도록 내버려두지만 일상의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

람이 경험하게 되는 또 다른 감성으로 남겨둔다. 대부분 영화들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사랑을 그리겠지만 코폴라 감독은 무언가를 아는 사람 같았다.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든 그 안에서도 결국 또 다른 소외나 외로움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이 헤어지지만 그렇게 변하지 않는 우정으로 서로의 인생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호텔 바에서 무료함을 느끼는 샬롯 ⓒ 아메리칸 조트로프

영화는 외로움을 이겨내게 하는 낯선 타인과의 우정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섬
세한 사랑의 감정을 묘사하고 그것을 지켜내려는 조심스러운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남겨두는 영화가 세상에는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보다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한 침대에 누워 자신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얘기를 나누다가 잠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코폴라 감독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참으로 순수하게 담아냈다. 밥과 샬롯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을만큼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일부와 같은 담배나 위스키보다 몇 배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다 나의 것으로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 영화는 정중하게 다스려진 감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만 같다.

 

광고 촬영을 마치고 일본을 떠나게 되는 밥이 그녀의 뒷모습을 쫓아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알겠죠?"라고. 그러면 그녀는 대답한다. "알았어요." 라고. 때로는 말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가슴이 있기에. 통역이 필요하지도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그들의 언어는 그렇게 그들의 사이에 존재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는 키스와 포옹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만 그의 속삭임에 미소 짓는다.

 

영화는 숨 막히는 로맨스가 있지도 웃음을 주거나 울게 하는 색다른 감동도 없지만 그들의 모습이 가슴에 남는 여운이 되어서 소박하고 따뜻하게 자리한다. 사랑이 될 뻔한 우정. 우정으로 남아서 더없이 소중하게 간직될 그들의 모습이.

 

막이 내린 후 나는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가 없어도, 섹시한 빨강색 원피스의 여인이 없어도 좋으니 호텔 바에 앉아서 오로지 위스키만를 주문하고 싶어졌다. 인생이 항상 행복한 일들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느긋한 표정을 가지고.

 

호텔 바에서 만나는 두사람 ⓒ 아메리칸 조트로프

2007.09.04 20:39 ⓒ 2007 OhmyNews
호텔 바 우정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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